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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배우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방송 100주년 특집에서 누가 일등을 하건 이 두 배우는 부정할 수 없는 일등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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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보다 경쟁심이 충만한 배우가 널려 있지만 김혜자와 고두심은 수십 년간 부단히 연기력을 키워가는 희귀한 존재들이다.

이름 열매 서로 부호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다.
알려진 것과 실제의 상황이나 능력에 차이가 없다.

땅에 묻힌 지 50년도 넘은 미국 배우가 아침저녁으로 대한민국 TV 속을 서성거린다. 제임스 딘이다. 살아 있는 조인성의 어깨를 무심히 스치고 지나간다. 그를 끄집어낸 건 과학의 손이지만 그 중심엔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예술의 힘이 버티고 있다.


죽은 지 올해로 30년 된 엘비스 프레슬리. 들썩이는 무대(All Shook Up)에서 여전히 객석을 뜨겁게 달군다. 로맨틱이 클래식이 되는 과정은 발효와 닮았다. 그들은 이성의 사막에서 썩지 않고 감성의 바다에서 삭는다. 대중예술의 영웅은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기억되는 자다.

“드라마 속 어머니 하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주관식을 싫어하는 시청자도 이 물음엔 수월히 답한다. 만인의 연인은 때마다 바뀌어도 만인의 어머니는 좀체 달라지지 않는다. 확실히 설렘보다는 뭉클함이 오래간다.

3퍼센트의 구조조정 소문에도 냉기가 감도는 게 직장의 풍속도다. 칼바람 부는 대중문화계에서 오랜 세월 퇴출되지 않는 몇 사람. 연기자 김혜자도 그들 중 하나다. 그녀를 만나면 짓궂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고두심이 당신의 자리를 위협하는데…….”

자의식 강한 그녀는 뭐라고 답할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이게 그녀를 오랫동안 마주한 나의 예상 답안이다.

그녀에게 들은 말 중 가장 선연히 남는 게 ‘좋은 배우의 연기는 자연스럽다.’라는 평범한 명제다. 덧붙인다면 ‘자연스런 연기는 관객을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이야말로 부담감이 아닌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방송 80주년 특집 프로에서 시청자 천 명에게 물었더니 여성 연기자 부문은 고두심이 일 등, 김혜자가 이 등이었다. ‘고두심이 우리 시대 어머니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주최 측 해석이다. 아마 방송 70주년 프로에선 김혜자가 일 등이었을 것이다. 이보다 앞서 ‘더 퀸’이라는 외화 개봉을 앞두고 영국 여왕 자리에 어울리는 배우를 묻는 다소 엉뚱한 설문에선 김혜자가 1위, 고두심이 그 다음 순이었다.

실제론 딱 열 살 차이인 김혜자와 고두심은 ‘전원일기’에서 오랫동안 고부 사이였다. 세대교체의 논리라면 며느리에게 자리를 양보하슴 게 순리다. 사람들은 왜 순위에 이렇듯 연연할까. 우유라면 일 등급이면 충분한데도 사람은 반드시 일 등을 가려야 직성이 풀린다. 방송 100주년 특집에서 누가 일 등을 하건 이 두 배우는 부정할 수 없는 일 등급이다. 경쟁력보다 경쟁심이 충만한 배우가 널려 있지만 김혜자와 고두심은 수십 년간 부단히 연기력을 키워가는 희귀한 존재들이다.

이 봄엔 연기의 여왕을 무대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김혜자는 ‘의심’이라는 뜻을 지닌 연극 ‘다우트의 앙코르 공연’에서, 고두심은 제목만 들어도 안기고 싶은 연극 ‘친정엄마’로 관객을 맞는다. 유명무실이 판치고 무대 밖에서도 거짓 연극을 일삼는 세태에서 순정을 의심할 여지없는 두 배우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는 건 퍽이나 운 좋은 일이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이번 회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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