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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파피용』, 열린책들, 2007년 7월
쟝샤오위앤 저/홍상훈 역, 『별과 우주의 문화사』, 바다출판사, 2008년 6월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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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밝은 날조차도 도시에서는 밤에 하늘의 별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불빛과 대기의 오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주변에 불빛이 별로 없는 시골에 가서 밤하늘을 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하늘 가득히 땅으로 쏟아져 버릴 만큼 많은 수의 별들과 정말 우유를 뿌린 듯한 모습의 은하수도 보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의 하늘은 아마 우리의 선조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몇 천 년 전에는 관측할 수 있는 별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망원경도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매일 밤하늘이 펼치고 있는 예술의 세계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다만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밤하늘에서 보이는 별이나 달의 모습 속에 숨겨져 있는 자연의 진실을 알려고 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별의 모습에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많은 장비를 가지고 밤하늘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주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20세기 초에 드디어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대구의 대기권을 통과할 수 있었고,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볼 수도 있었습니다. 또 달에 발을 내딛게도 되었으며, 이제는 태양계를 지나 먼 우주로까지 우주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우주는 어떤 존재이고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를 위해 먼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SF 소설인
『파피용』(열린책들, 2007)을 읽어보면 우주는 우리에게 ‘도피처’란 존재임을 알 수 있고 또 우리의 미래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별과 우주의 문화사』(바다출판사, 2008)에서는 우리 인류의 선조들이 우주의 별들을 통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친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별이나 우주는 우리에게 미래를 알려주는 존재로 작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04)를 보겠습니다. 우주를 이야기하면 반드시 언급해주어야 할 책이죠. 칼 세이건이 독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우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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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우리는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들어온 별은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단위인 광년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으며. 광년의 시간만큼 과거에서 온 빛이다. 지구의 남반구에서 볼 수 있는 대마젤란은하는 16만 년 전에 그곳을 출발한 빛을 보는 것이다. 16만 년 전이면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 채집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우리가 매일 밤 볼 수 있는 별은 먼 과거에서 우리를 만나러 오는 빛인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미래를 볼 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에게 있어서 별은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도구였다. 별을 보고 개인과 왕, 또 국가의 미래를 점을 치곤 했다. 지금도 별과 우주에는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인간의 생명의 미래가 그곳에 있고, 또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체와 우리는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만날 것이다.
우주로 떠난 노아의 방주
높이 1천 미터, 직경 5백 미터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우주선에 14만4천 명의 사람을 태우고 지구를 떠난다. 사람만 태운 것이 아니라 지구의 각종 동물, 식물 및 물과 흙, 물도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 대목에서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묻지 말자. 이 책은 SF소설이기 때문이다. 아니 한 발 더 나가서 생각해보면 미래에 이런 일도 가능할 수도 있다.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조차 해내지 않았던가. 이 호기심으로 인해 인간의 지성은 넓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암울한 미래도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미래가 모두 들어있다.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생각했던 과학 기술의 발달은 삶의 편리함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우리 지구를 망가뜨리는 결과도 가져왔다. 지구는 오염되고 생태계는 파괴되어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놓일 가능성도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으로 말미암아 지구 전역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에게 미래는 있는 것일까. 일단의 사람들이 지구에서는 인간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주에서 지구를 닮은 행성을 찾아내 그곳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지구를 떠나기 위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우주선을 만들 계획을 한다. 그 우주선의 이름은 ‘나비’를 뜻하는 ‘파피용(Papillon)’이다. 이 우주선은 범선처럼 돛대를 가지고 있고, 이 돛대는 바람이 아니라 빛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움직이게 되어 있다. 이 돛대는 마치 나비가 날개의 움직임으로 날아갈 수 있듯이 돛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우주선을 만든 목적인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제작된 파피용 호에 14만4천 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을 태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2광년이다. 빛은 초속 30만 킬로미터다. 1광년을 계산하면 9조4천6백억 킬로미터고, 2광년은 거의 20조 킬로미터에 달한다. 과연 이 거리를 우주선으로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이들이 타고 가는 우주선의 속도는 시속 2백만 킬로미터다. 이 속도로 20조 킬로미터를 가자면 1천 년이 소요된다. 1천 년이 지난 후 확실한 생존자가 나올 수 있는 이상적인 탑승객 수를 계산해본 결과 14만4천 명을 계산해 냈다.
그런데 14만4천 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뽑을지가 궁금하다. 엄격한 선발절차를 통해 파피용호에 멍청이나 나쁜 놈이 승선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야만 다른 행성으로 가서도 과거에 지구에서 인간들이 실수한 것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선발기준이 재미있다.
1. 자율성: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일을 해결하는 능력
2. 사회성: 개인의 이익을 초월하여 집단과 공공의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
3. 동기부여: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바라는 의지
4. 건강
5. 젊음(20~50세 사이)
6. 가족이라는 구속 요소가 없을 것(독신자)
7. 탑승객들은 한 가지 전문분야, 즉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 (96~98쪽)
이렇게 선발된 사람을 태우고 그들은 1천 년이나 걸릴 여행이지만 지구를 닮은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삶을 건설하기 위해 출발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으로 사람을 선발했으니,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은 지배나 다툼이 없는 유토피아일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유토피아는 없었다. 정말 유토피아라는 말의 뜻 그대로 우주선 속에서의 1천 년 이상이나 되는 기간에 거의 모든 사람이 다툼으로 죽는다. 유토피아가 없는 이유는 인간은 유토피아를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아폴로 17호에서 찍은 지구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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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능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은 인간이 있는 곳이 어디일지라도 디스토피아로 만들어버린다. 최종적으로 새로운 행성에 들어간 사람은 두 사람이다. 그들은 아담과 이브처럼 그 행성에 인간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상황이다.
우주는 인간에게 미래를 약속하는 장소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보는 것 같이 인간은 오래지 않아 우주의 어느 곳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다 망가져 버린 지구를 살리는 것보다 새롭게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밤하늘에서 의미를 찾은 역사는 길다. 일단 밤하늘을 보고 국가나 개인의 운명을 점쳐보았을 것이고, 계절의 변화를 알아냈을 것이다. 이번에는 별을 탐구한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주를 점성학으로 읽어내다
천문학(Astronomy)과 점성학(Astrology)은 영어로 보면 ‘Astro’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 Astro는 ‘별’을 뜻한다. 당연히 두 단어는 별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은 천문학은 과학이고, 점성학은 사이비 과학으로 그 가치를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가 별을 관측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해석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목적은 점성학에 가까웠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천문학(天文學)이라는 단어에서 천문(天文)이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천문이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이미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경 易經』에는 이 단어의 원시적 용례가 남아 있으니, 『주역 周易』『단 彖』『분 賁』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늘의 무늬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살피며, 사람의 무늬를 보고 온 세상을 교화시킨다.
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9~10쪽)
천문이란 하늘의 무늬를 뜻하고, 인문이란 사람의 무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의 무늬를 보고는 먼저 전쟁의 승부나 농업의 풍흉에 대해서 판단했고, 수해나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 제왕의 안위 등 군사적 분야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었다. 이러한 기능을 ‘군국 점성학(Judical Astrology)’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또 개인의 출생 시에 나타나는 천문현상을 근거로 해서 개인적인 운명을 예언하는 기능도 있는데, 이를 ‘생신 점성학(Horoscope Astrology)’이라고 부른다.
지금 우리는 점성학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문에서 별점이 나오고 있으며, 이를 보는 사람도 많다. 이런 현상은 불안한 자신의 미래를 살펴보려는 개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나타낸 것이리라. 1999년 여름 전 세계는 하나의 천문 현상 때문에 떠들썩했다. 바로 개기일식 때문이었다. 대낮에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이 현상을 보기 위해 일식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위도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도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갔었다. 그때 유럽의 신문에서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라는 등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점성학이 비과학적이고 미신이라고 알고 있는 현대에도 사람들은 개기일식에서 뭔가 의미를 찾길 원했던 것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는 천문학자보다 점성술사가 10배 많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아마 중국의 천문학과 거의 비슷한 기능으로 천문을 연구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의 본기에 보면 일식과 같은 천문현상이 엄청나게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에는 서양의 점성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연대가 가장 오래된 군국 점성학 자료는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점성학의 주요한 목적은 풍년 여부를 미리 점친 것이라고 한다. 이어 아수르와 페르시아 제국을 거쳐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지고 중세에 이르기까지 점성학은 국가나 사람 개개인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별점을 치는 표(horoscop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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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학에서 시작된 별자리 연구에서 천문학이 탄생한다. 본문에서 표현되어 있는 부분을 보자.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 ?성학은 유럽에서 대대적으로 번성했고, 천문학도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양자는 여전히 서로 연계되어 있었다. 진정으로 천문학과 점성학을 분리시킨 공신으로는 아마 코페르니쿠스를 들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를 현대 천문학 내지 현대 과학의 탄생을 알리는 표지로 간주하곤 하는데,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는 선배들과는 달리 점성학을 거의 공부하지 않았고, 점성학 분야에 관한 저작이나 이론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천문학이 정식으로 점성학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길을 간’ 표지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인류는 천문학을 점성학에서 독립시키고 하늘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어 우주의 나이도 생각해내고 우주의 미래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빅뱅과 불랙홀 등 우리는 하늘과 우주에 대한 비밀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또 인간을 우주로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혹시 이 큰 우주에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이 우주에서 외로운 존재인지 아니면 우리 이외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칼 세이건을 만나야 한다.
우주를 아름답게 그려내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未知) 중의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로 이 책
『코스모스』는 시작된다.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방대한 양의 이 책에서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을 발견하고 있다. 인간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는 천문학에서 시작하여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 및 예술까지도 그의 담론 안에 포함을 시키고 있다.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서 짧은 글로 이 책을 다 소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이 책의 맛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남들에게 소개할 때 어느 부분을 말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결과는 바로 이 책의 열한 번째 장인 「미래로 띄운 편지」였다.
이 장에서 세이건은 이 우주 어딘가에 지적 생명체가 살아있으리라고 확신하면서 그들과 연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우주에 인간 이외에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많다. 어떤 학자는 확률로서 존재 가능성을 계산해내기도 하는데, 세이건은 고등한 지적 생물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행성이 은하수 은하에만 100만 개는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지적 생명체와 교신하는 방법을 말하기에 앞서서 세이건은 고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해준다. 고래는 7,000만 년 전까지는 육상에 살던 포유류지만 바다로 이주했다. 육상에서 포유류는 시각과 후각을 사용해서 생존과 생식을 위한 행동을 하지만, 바다에서는 청각이 더욱 중요하였기에 고래를 청각에 의존하게 진화했다. 그렇지만 바다에 상선과 군함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소음으로 인하여 고래는 상호 통신하기가 어려워졌다. 긴수염고래는 200년 전에는 최대 교신거리가 1만 킬로미터에 달했으나 지금은 수백 킬로미터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니 인간은 고래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지상에서는 새들이 사라지고 있는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의 유명한 책 제목)이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고래를 잡아 입술연지나 윤활유의 재료로 팔기 위해 고래를 멸종 위기에 이를 정도로 씨를 말리고 있다. 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세이건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 인류는 외계의 지적 생물과의 교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이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지적 생물과의 교신부터 먼저 진지하게 시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문화와 언어와 전통이 다른 민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침팬지, 돌고래 그리고 저 깊은 바다쟀 지적 지배자인 위대한 고래들과의 교신 또한 외계와의 교신에 우선돼야 할 인류의 과제인 것이다. (442쪽)
그러면서 세이건은 외계의 지적 생물체와의 교신으로 자신의 관심 범위를 확장한다. 그는 먼저 외계의 지적 생물체의 생김새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데, 그 지적 생물체가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을 가능성은 0퍼센트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김새는 진화의 우연이 만들어냈고 외계의 지적 생명체 또한 그곳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진화했기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면서 그 존재와 접촉하기를 원한다. 또 그 지적 존재가 우리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가 라디오나 텔레비전 전파, 레이더 전파 교신망에 접촉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파를 지구에서 쏘기 시작한 것이 몇 십 년에 불과하기에 아직 그들이 살고 있는 행성에는 도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 보이저호를 통해 외계로 보낸 골드 Reco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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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의 존재 여부를 알려줄 이러한 전파를 언젠가는 그들이 알아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게다가 보이저호를 통해 우리는 외계에 구리에 금박을 입힌 레코드판을 실어 보냈다. 혹시라도 외계의 지적 생물체가 그 레코드판을 본다면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도록 인간의 유전자, 사람의 두뇌, 우리의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기술해 놓았다고 한다. 지금도 우주를 계속 항진 중인 보이저호에 실려 있는 레코드판은 수명이 10억 년은 갈 것이라고 세이건은 말하고 있다. 아마 보이저호가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에 도달하는 데에도 몇 만 년은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외계의 지적 생물체가 존재한다면 이 레코드판으로 지구에 고등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코스모스』는 이런 문장으로 끝이 난다.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작은 존재였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되었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의 한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556쪽)
우주를 연구하는 학문인 천문학은 우리가 비과학이라고 생각하는 점성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SF문학도 우리 미래의 삶의 중심에 우주를 두고 있다. 또한 천문학이라는 과학을 통해서 바라본 우주나 별도 우리 인간의 기원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우주와 별을 통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보니, 그곳에는 온통 우리 인간만 보인다. 우주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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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의 경계를 허무는 독서>를 마치며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책을 같이 읽으며 그 안에 있는 의미를 읽어내고 싶다고 올 초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저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었습니다. 통섭을 몇 번이나 읽어보면서 지식을 통합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시점에서 가능한 부분을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2008년 5월 8일 ‘감각’이라는 주제로 채널예스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번에 ‘우주’를 마지막으로 15번에 걸쳐 글을 썼습니다.
7개월간에 걸친 작업이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1회에 4권의 책을 가지고 칼럼을 쓰게 되는데, 4권의 책을 선택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더군요. 과거에 읽은 책도 새로 봐야 했으며, 새로운 책은 선택하고 읽어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즐거움이 더 많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 능력이 부족해 항상 쓰고 나면 그 내용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쓴다는 데에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원고를 쓰는 데에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채널예스 담당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또 연재한 내용을 가지고 제게 조언을 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하고 싶습니다. 연재를 마치면서 든 생각은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과,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쉽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습니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칼럼으로 여러분들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럼 그동안 제 칼럼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2008년 한 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올 해 멋진 마무리하시길 바라며.
2008년 12월 11일
YES블로거 이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