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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책, 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먼저 꼽을 수 있는 책이라면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크리스마스 관련 책이겠고, 그다음으로는 아마 순백의 눈 덮인 배경 때문인지
『닥터 지바고』나
『까라마조프 형제들』 같은 러시아 문학이 겨울과 어울릴 듯합니다. 정확히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저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분들의 보편적 대답이라면 비슷한 뉘앙스일 거라고 짐작해 봅니다.
만약 지금 누가 제게 ‘겨울에 어울리는 책’을 다시 물어본다면, 저는
『레 미제라블』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레 미제라블』이 겨울만을 배경으로 하는 내용도 아니고, 다루는 시기가 특정 계절에 한정되지도 않을 뿐더러 딱히 겨울에 씌어진 책도 아닙니다만, 이상하게도 전체적인 뉘앙스가 겨울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이 다루는 이야기들, 주제부터 소재, 배경과 서사 하나하나가 차가움과 따뜻함이라는 냉온탕을 오가면서 관계의 온도를 무척이나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건 말 그대로 책 내용을 좀더 살펴보면서 풀어나가야 할 듯합니다.
‘레 미제라블’이라는 본제목보다 ‘장 발장’이라는 주인공 이름으로 국내에서는 더욱 유명한 이 소설은,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완성한 장편소설입니다. 소설이 완성된 1862년과, 소설이 다루고 있는 프랑스 혁명의 시기인 1700년대 후반에서 1800년대 초반 사이를 가로지르는 역사의 흐름을 살짝 살펴보는 것은 소설이 다루고 있는 시대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1776년에 미국 독립 선언이 발표되었고, 그보다 앞선 1600년대 말에 영국의 명예혁명이 완료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이 두 혁명의 영향을 받아 1789년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과 인권선언을 통해 오랜 시간의 진통을 시작했고,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인해 유럽 전 지역이 혁명과 전쟁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시기였습니다. 이후 나폴레옹 시대가 끝나며 다시 유럽의 왕정복고 열풍이 불어 닥친 빈 회의까지 유럽은 정신없는 시대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정신없는 변혁의 시대를 살아간 한 남자가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입니다. 장 발장이라는 이름의 이 사내는 익히 알려져 있는 대로, 일곱 아이를 키우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진열장 유리를 깨고 빵 한 덩이를 훔쳤다가 체포되어, 여러 번의 탈옥 실패 끝에 총 19년형의 징역을 살고 나온 40대 후반의 남자입니다.
소설이 그리는 장 발장의 과거는 산업혁명 이후의 프랑스 대도시 노동자의 삶을 언뜻 비춰 주고 있습니다. 농촌 형태의 대가족 구조가 도시로 고스란히 유입되면서 발생한 대규모의 기아, 그리고 그 모든 인구를 수용할 만큼의 산업발전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의 도시 노동자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장 발장과 그의 가족도 별반 다른 처지가 아니었으며, 이러한 현실은 결국 프랑스 혁명의 단초가 되는 ‘앙시엥 레짐(구제도의 모순)’으로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먹을 것의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삶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제도―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의 이유를 소멸시켰고, 합리라는 이름 하에 성립된 법률에 의해 장 발장은 징역을 살게 됩니다.
소설의 내용은 그렇게 전과자로 시작한 장 발장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려집니다. 많은 분들이 익히 알고 있듯이, 그 전과자 장 발장은 19년의 형기를 마쳤지만 전과자에 대해 냉혹한 사회?서 딱히 할 일을 찾을 수가 없었고, 모두가 외면하던 그를 홀로 따뜻하게 맞아 주던 ‘각하’ 비앵브뉘 주교만이 그를 편견 없이 맞이해 줍니다. 그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장 발장은 주교의 숙소에서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는 만행을 저지르고, 그를 수상히 여긴 경찰에 잡혀 다시 주교에게 돌아온 그에게 주교는 ‘은촛대도 줬는데 놓고 가느냐?’며 촛대까지 줘 버립니다.
소설의 도입부는 사실 장 발장이 아니라 바로 이 주교, ‘비앵브뉘 밀리에르’ 주교의 삶과 철학에 대부분의 묘사를 할애합니다.
『레 미제라블』이라는 분량 많은 장편소설이 다루는 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은 바로 이 주교의 모습에서 거의 다 그려져 있습니다.
성직자의 권위가 아직까지도 상당한 위세를 떨치던 시절, 주교 정도의 위치라면 누릴 수 있었던 모든 호사를 비앵브뉘 주교는 모두 던져버립니다. 훌륭하게 지어진 정원까지 딸린 거대한 주교 저택은 셋이서 쓰기에 너무 크다며 좁아터진 병원과 맞바꾸어 버리고, 주교 마차비를 주겠다는 시청의 지원은 고맙다고 받아서는 병원 침대 두 개를 더 사 버리기도 합니다. 세간에 악평이 가득 난 인물의 마지막 죽음을 기꺼이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19년 징역의 전과자 장 발장이 먹고 잘 곳이 없어 찾아오자 ‘왜 눈치보고 들어오느냐?’며 훈계까지 합니다.
“굳이 전과자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소.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집이오. 이 집을 찾아오는 이에게 나는 이름이나 경력을 묻지 않소. 단지 오는 이가 괴로운지, 아닌지를 물을 뿐이오. 당신이 괴롭고 목마르고 굶주렸다면 잘 찾아온 거요. 여기 있는 모든 것은 괴로워서 안식처를 구하는 당신의 것이고, 그래서 내 집에 당신을 맞은 것이 아니라 당신 집에 당신이 온 거요. 게다가 나는 당신이 말하기 전에 이미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소. 당신은 내 형제요.”
전과자에 험악한 외모, 누가 봐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장 발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환대, 그리고 그런 그가 ‘아니나다를까’ 주교의 믿음을 배신하고 은식기를 훔쳐 달아났음에도 불구하고 잡혀온 그에게 은촛대마저 내주어버리는 센스. 이것이 바로
『레 미제라블』의 주제인 인간에 대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론의 핵심입니다.
인간은 본래 장 발장과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살고, 이기적이며, 그 소중한 자신을 위해서는 배신과 배반도 밥 먹듯 하는 존재입니다. 장 발장은 절도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당장 주린 배를 해결하기 위해 빵을 훔쳤고, 지독한 감옥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수없는 탈옥을 시도했습니다. 그런 삶을 마치고 출옥한 뒤 냉혹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주교의 환대에 그는 ‘다시 일어서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주교가 가진 유일한 호화품인 은식기를 훔치고 맙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인 것이 바로 비앵브뉘 주교라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그런 것이고, 우리는 인간의 선한 면만을 보고 사랑할 것이 아닌, 그런 인간의 모든 모습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비앵브뉘 주교는 보여 줍니다. 그는 선과 악을 가려 사랑하지 않으며, 선과 악이 수시로 뒤바뀌는 인간 그 자체를 포용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원수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밀라던, 사실 아무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크리스트교의 대명제 ‘사랑’을 그는 온몸으로 실천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장 발장이라는 인간의 마음속은 크게 흔들립니다.
장발장은 이후 신분을 감추고 다 망해가는 마을에서 새로운 산업기술로 마을을 일으키고, 그로 얻은 생산력과 부를 통해 마을 사람들을 되살립니다. 일자리가 없던 마을은 누구나 쉽게 와서 넉넉한 급여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을의 가난한 이들이 사라집니다. 장 발장은 어린 아이 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른 미혼모 팡틴을 보살피며, 그녀가 죽은 뒤에는 홀로 남은 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신분이 밝혀질 것 같은 위기를 맞아 자수와 탈출을 번갈아 하며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1802~1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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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장발장을 끊임없이 쫓는 대립적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형사 자베르 경감입니다.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자베르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형사로, 장발장이 출옥 후 길가에서 동네 꼬마의 돈을 강탈한 혐의와 전과자로서의 편견을 덧씌워 그를 체포하고자 온 힘을 다합니다. 장발장이 동네 시장의 자리에 오르고도 자베르는 끊임없이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며 끝까지 추적하는 자베르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장발장과 대립합니다.
그렇다고 자베르가 반드시 악역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법과 질서의 수호자라는 경찰의 옷을 입고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그의 입장이 과연 냉혹하기만 한 것인지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립점은 범죄와 질서, 냉혹과 온화라는 선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가치와 가치의 충돌입니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는 법보다 자신의 생존이며, 남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를 막아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라는 집단을 관리하는 자의 목표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라, 그 대립과 갈등 자체가 인간성인 것입니다.
냉혹한으로 묘사되는 자베르도 그러나 서서히 변화합니다. 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파리로 이주한 장발장은 코제트의 연인이자 공화파 혁명론자인 청년 마리우스를 만납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코제트의 후견인인 장발장을 마리우스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마리우스가 혁명 와중에 크게 부상당하자 그를 파리의 하수도를 통해 탈출시키는 것은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마지막 순간에 추격하던 자베르는 끝내 두 사람을 체포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질서와 인간 개인이라는 두 가치가 대립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자베르는 그만 자살하고 맙니다.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변화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고정점인 서두의 비앵브뉘 주교가 뿜어낸 고결한 인간에 대한 사랑은 장발장을 변화시켰고, 변화한 장발장이 세상에 뿌린 빛은 마을 사람들과 자베르 경감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혁명가 마리우스 또한 끝까지 장발장을 의심하고 미워했지만 결국 그의 감화를 받고 맙니다. 비앵브뉘 주교로 상징되는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은 결국 근 20여 년간의 흐름 속에 하나하나 사람의 마음속을 파고들면서 개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서사시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성.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 그 복잡한 가치의 덩어리들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소설
『레 미제라블』은 보여 줍니다. 미처 웹상의 리뷰 한 편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아니 애초에 문자만으로는 쉽게 설명이 어려운 묵직한 주제이지만 저자는 20여 년에 가까운 긴 세월의 지구력과 혁명이라는 인간에 근거한 혼란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 묵직함을 독자에게 전달해 내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을 읽으면서 드는 육중한 무게감이란 바로 그 인간성의 무게입니다. 주인공 장 발장이 거구에 괴력을 지닌 ‘인간 기중기’로 묘사되는 것도, 전혀 무관한 작가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혁명기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묵직한 인간의 본성, 그리고 그 본성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인간의 본성. 선과 악이 불분명한 인간의 삶 앞에 매번 던져지는 선택과 판단의 문제, 그리고 그런 판단과 갈등마저도 넘어서는 인간애는 무게와 무게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마찰열을 통해 마침내 따스함을 만들어 냅니다. 서두에 굳이 ‘겨울’ 하면 떠오르는 책으로
『레 미제라블』을 꼽은 것도 바로 그런 따스함 때문입니다. 세상이 냉혹할수록 더 느껴지는 것이 따스함이고,
『레 미제라블』이 그려낸 세계 또한 차갑고 냉혹하지만 그 개인들이 만들어 내는 드라마는 결국 세상을 녹여내는 따스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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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