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음감을 갖는 분들이 음악을 하는 데 상대적으로 훨씬 더 우월하고 쉬운 건 사실인가요?
- 시작은 좋은데 결론적으로는 썩 좋은 것도 아니에요.
- 그래요?
- 예. 그분들의 문제는, 제가 시창 청음을 가르쳐 보면 고민이 없어요. 음과 음을 아니까 이 음에서 이 음으로 갈 때 어떤 느낌인지를 별로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음악은 느낌인데.
부천필 마에스트로 임헌정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그럴 수도 있겠다. 문학의 영역으로 옮겨와 본다 할 적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 재능이 없는 나도 활자와 활자를 모르므로. 그래서 이 활자에서 다음 활자로 이동할 때 심히 고민하므로.
히라노 게이치로.
1975년 6월 22일 아이치 현 출생. 명문 교토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1998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이 권두소설로 전재되었다. 스물세 살 적의 일이다. 그리고 다음 해 그 『일식』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이는 당시 최연소 수상 기록이었으며, 대학 재학생의 수상이라는 의미로만 볼 때 무라카미 류 이후 23년 만의 일이었다. (아쿠타가와상: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념하여 1935년에 분게이슌주文藝春秋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신인작가에게 준다.)
곁에 나란히 서서 걸으며, 나는 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잔뜩 굳은, 갑작스레 준엄한 표정으로 고쳐 지은 얼굴이었다. 스무 살 정도일까. 나보다는 많아 보였지만 그렇게 나이든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머리에는 벌써 상당한 백발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의 노력이 하도 가상해서 한동안 그 준엄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금세 어이가 없어져서 시선을 돌리자니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까지도 전혀 줄어들 줄 모르는 채 그에게서 퐁퐁 풍기는 포도주 냄새를 맡고 있노라니, 그의 자못 경건합네 하는 얼굴 곳곳에서 마치 어설프게 마감질한 술통이 줄줄 새듯이 곤혹스러움이 비어져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김진규.
1969년 12월 29일 오산읍 출생.
『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서른여덟 때의 일이다. 첫 기사가 한 신문의 인물난에 실렸다. 문화면도 아니고 북 섹션도 아닌 인물난에.
쪼그리고 앉아서,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스물세 살. 올곧게, 초지일관 박정하기만 한 나이를 지겨워하는 표정이었다. 손바닥으로 거울을 가렸다. 아니, 쓰다듬었다.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위로였을 수도, 응원일 수도 있겠지만. 누가 알랴, 늪의 가장자리에서 늪보다 더 질척이는 그녀가 제 겨드랑이를 열어 이미 퇴화된 날개라도 끄집어낼는지. 어쩌면 통 통 튀어나온 음표들이 아무래도 열리지 않는 그 겨드랑이를 간질여 주기라도 할는지. 하여 냅다 웃을 수도.
그의 나이 스물넷이던 1999년.
『달』이 나왔다.
마사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정열’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숙명적인 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병은, ‘참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위해서는, 천천히 나날을 쌓아가며 그 끝에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순간적 초월, 지속적이지 않은 단 하나의 순수한 앙양(昻揚), 일격에 생의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뒤 한번 안 돌아볼 치열한 충동의 체험을 갈구했다. 피는, 끓는 물처럼 소용돌이치지 않으면 금세 괴어 색이 변하고 응고하고 만다. 육신은, 고통스럽도록 거세게 움직이지 않으면 곧 뜨뜻미지근한 권태의 나락에 가라앉는다.
‘정열’은 뜨겁게 녹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한 덩이 유리이다. 그것을 생활에 쓰고자 한다면, 거기에 세상의 범용한 형태를 부여하고, 만만하게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식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식어버린 유리에 남겨진 빛은 가냘프기 짝이 없다. 이윽고 그 빛마저도 잃고 손때에 흐릿해져가서 마침내는 일상의 너무도 무의미한 순간에 뜻하지 않게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이다.
마사키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형태로 자신의 정열을 성취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각오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열을 따르기에는, 마사키는 지나치게 지적이었다.
‘정열’이 행동에 연결되려는 순간, 마사키는 그때마다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들이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로 지금 자신이 만지려 한 곳을 바라보고 만다. 그리고 궁리하는 것이다. 참으로 만져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만진 뒤의 일은 어떨지, 만지지 않았을 경우엔 어떨지. 그러는 동안에 ‘정열’은 시시각각 식어간다. 형태를 이루지 못한 채 식어가는 것이다. 차라리 사라져버린다면 좋았으리라. 그러나 허망하게도 ‘정열’이 있던 그 자리에는 반드시 둔중하기 짝이 없는 추괴한 덩어리가 남고 마는 것이었다.
마사키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둔중한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내 나이 스물넷이던 1993년. 딸아이가 나왔다.
늘 잠이 부족했다. 젖을 물고 있어야만 잠을 이어가는 아가를 위해 모로 누운 채 꼼짝 못하고 있다 보면 삭신이 고루고루 저렸다. 아가는 이유도 없이 울었다. 어린 엄마는 그 아가를 품에 숨기고 밖에서 함께 울었다. 참으로 무서운 시간들이었다.
허구한 날 몸살. 내 몸뚱이 내 손으로 잘라내 버려도 직성에 차지 않을 만큼 괴로워도 약을 먹지 못했다. 젖먹이는 엄마에게 허락된 약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있대도 차마 먹을 수 없었다. 누가 뜨거운 국물에 밥만 몇 끼 해줘도 살겠다, 속으로 엄마 언니 부르며 또 울었다.
때때로 모성이 식어갔다. 모성이 본능이 아니라 성격이면 어쩌나, 밤새 걱정도 했다. 어린 엄마는 참을 수 없었다. 엄마가 되기에는 참 보잘것없는 나이를 견딜 수 없었다.
2004년. 그의 나이 스물아홉.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원래 계기라는 것은 스키점핑대의 마지막 선과 같은 것이다. 사람을 날게 하는 것은 그 선이 아니라 긴 도움닫기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주위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이래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겉으로 그럴듯하고 적당히 때우기도 쉬운 ‘임시용 외관’에 매달리는 습관을 몸에 익혔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고, 평판이 나쁘지 않은 것 같으면 그것을 최대한 지속시키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던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일단 그러한 외관을 몸에 걸쳐버리면, 그것이 교묘하게 들어맞을수록 벗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벗는 순간 아마 그때까지 그것을 맨살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속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상상하며 항상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안에서도 가장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점점 더 깊이 틀어박히게 된 것이다.…….
1999년. 내 나이 스물아홉.
히라노 게이치로를 몰랐다. 고작 이따위 메모를 남겼을 뿐이었다.
사랑받고 싶니 아님 인정받길 원하니 혹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냐하면 사랑 없이 인정만 받아봐야 그 따위로 인해 무에 그리 뿌듯할 거며 인정 없는 사랑이란 건 허무맹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씨부렁거릴 가치도 없으니 하여간 그렇대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인정받는 쪽으로 손가락을 찌를 그 녀자는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그 언젠가를 희망하다가 파파로 늙어 죽었는데 사실 그 녀자 젊어서부텀 흰머리가 어찌나 많았던지 진즉 할머니였던 셈이지만 살아생전 시달리던 두통이 얼마나 오지고도 남았는지 귀신이 되고 나서도 이마에 뾰루지가 삼만 팔천 육백 오십 세 개나 되는 바람에 저승사자가 놀라 떨어뜨린 심장이 누구네 뒷마당 헛간 처마에 붙어있던 까치집을 박살을 냈는데 다행히 빈집이었단다.
드디어 그도 서른 줄. 2006년, 서른한 살.
『책을 읽는 방법』.
실제로 무슨 책을 읽어도 ‘지금까지의 자신’이라는 껍질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오로지 한 가지 감상밖에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이며, 언제까지나 그 좁은 우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2001년 나의 서른하나.
베란다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루 키큰창과 베란다를 가르는 문지방, 밟으면 안 된다던 그 희게 돌출된 부분을 당당하게 밟고 몸을 왼쪽으로 틀어 눈길 던지면 별것 없는 작은 언덕이 눈으로 들어왔다.
마루 키큰창과 베란다를 나누는 아까 그 문지방에 등을 동그랗게 말고, 두 팔을 무릎 위로 포개 얹어놓고 다리 저릴 때까지 웅크리고 앉아 그 언덕배기에 집중하다 보면 의외로 소리는 시골이었다.
뭔 일 났니, 까치 시끄럽다. 오늘도 여전하네, 두부랑 콩나물 사라고 종 흔드는 젊은 아낙. 유치원 결석한 사내 아이 놀이터 그네에 흙 뿌리며 울고. 젊은이도 노인네도 아닌 경비 아저씨 만날 하는 비질, 스억 스어억.
툭하면 볕 좋고 한가한 오후에, 혹은 젖은 빨래 널러갔다가. 그렇게 부스러기로 채우던 오감五感.
그리고 이제. 2008년 초겨울.
서른셋 그의 글을 서른아홉의 내가 읽는다. 이 부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언어란 작가와 타자라는 두 존재를 변수로 그려지는 이차함수의 포물선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한 가닥의 점근선으로서, 그와도, 타자와도 영원히 겹치지 않는다. 개개의 작품은 평면 위의 일정 범위에 지나지 않고, 등장인물 또한 좌표의 한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작가에게 ‘개성’이란 것이 있다면 기껏해야 그 변수의 차이다. 나머지는 얼마나 능숙하게 그 선을 그려내는가 하는 문제가 아닐까.
히라노 게이치로.
종이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도전을 한다.
김진규.
종이 앞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발괄을 드린다.
그는 영재고 나는 둔재다.
그럼에도 둘 다 작가로 불린다.
그게 세상이 웃기게 돌아간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