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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김동률의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에 「그녀를 잡아요(Featuring 서동욱, 김진표)」란 곡이 있다. 4분 25초짜리의 경쾌한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두 군데에서 랩이 나온다. 김진표의 몫이다.
먼저 앞, 외로워떤 투덜투덜대떤 니가 이런 행운을 받아들이든 말드은나.
뒤, 맑은 우씀 따사로운 가씀 나는 믿음 세쌍에는 그런 애 또 없쓰음마.
가슴에서 공명하는 미끈한 저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음과 격음의 조화. 지경이 넓어진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랩을 음악의 범주에 집어넣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후 MC 스나이퍼의
「Gloomy Sunday」(“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을 거치면서 나는 랩도 아주 훌륭한 음악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비의 날개 하나가 늪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막심도 슈비아르 씨도 그걸 보진 못했다. 모든 게 다 보이는 때가 있고, 아무 것도 보지 않는 때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은 생각은 시야를 가린다.
엉뚱한 것이 보일 때도 있다.
현재 일본은 대국으로 존립하는 데 필요한 요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 본토의 고급 인력과 충실한 자본, 조선에 존재하는 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만주국 영내의 풍부한 천연 자원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것은 아우타르기 체제로 재편성되기 시작한 지금의 시계 경제에서는 큰 강점이다 - 『상해공론(上海公論)』 1984년 2월호, 「일본의 해부: 경제편」에서
참 말도 안 되는 자료다. 1984년이면 두발자유화 3년차, 촌구석에서 명예욕 하나로 공부에 전념하던 내가 조회 시간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목 놓아 애국가 부르던 때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조선의 양질의 노동력이라니!
게다가,
아직 어떤 나라도 식민지에서 올림픽 대회를 개최한 적이 없다. 제25차 올림픽 대회를 게이조우에 유치함으로써 일본은 자신의 조선 통치가 성공적이었음을 온 세계에 대해 과시한 것이다. 일본은 1910년의 <일한 합병 조약>에 규정된 사항들을 충실히 이행하였고, 가난과 무지에 시달리던 조선 인민들은 일본의 선진국다운 온화하나 확고한 지도 아래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되었다. - 『뉴욕 타임즈』, 1987년 4월 7일자 사설 「조선에서의 올림픽 대회」에서
란다. 뻥도 범세계적이다.
알다시피
『碑銘을 찾아서』는 가상의 역사를 풀어놓은 소설이다. 8포인트쯤 되는 작은 명조체의 글씨들이 빡빡한 527쪽짜리 책(1990년, 17쇄다). 그 책에 열광한 건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그 가짜 역사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작가가 창조해 낸 각종 자료와 사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화제의 중요성은 상대적인 것이다. 관점, 그 순간의 기분, 개인적인 공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술자의 객관성은 근대의 발명품일 뿐이다. 우리 주 하느님이 당신의 책에서 그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만 생?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글줄에 관심 좀 있다는 이라면 아무래도 조금은 기죽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영특한 필력도 대단하지만, 내가 더 감탄한 건 해리포터 스쿨북이다. 그녀가 창작한 마법사들의 교과서다.
마침내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일정한 합의에 도달했다. 용과 번디먼을 포함한 스물일곱 종의 마법 동물을 머글 눈에 띄지 않도록 하고, 이러한 마법 동물이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환상을 심어 주기로 한 것이다.
몇 세기를 지나면서, 이 숫자는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마법사가 은폐술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1750년에는 국제 마법사 보안법에 73조항이 첨부되었고, 오늘날 전세계 마법부가 그 조항을 따르고 있다. - 『신비한 동물 사전』, 뉴트 스캐맨더
다음을 상상해보자.
(켄타우로스와 마찬가지로) ‘인류’로 분류되기를 거부하고 ‘짐승’의 범주에 남아있기를 원했으며, 가장 최초로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사이렌으로 알려져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셀키와 아일랜드의 매로우는 다른 지방의 그것에 비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며, 하지만 공통적으로 음악을 사랑하며.
뭘 두고 하는 소릴까? 마법부 등급 XXXX(위험군)에 해당하는 인어를 두고 하는 소리다. 그리고 『예언자 일보』의 리타 스키터 기자가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라고 평가한
『퀴디치의 역사』의 저자는 골동품 빗자루 수집이 취미인 퀴디치 전문가 케닐워디 위스프다. 뉴트 스캐캔더, 케닐워디 위스프. 지은이의 이름들조차 참으로 마법사적이다. 어쨌든 나는 그 두 권,
『퀴디치의 역사』와
『신비한 동물 사전』이 본 책보다도 더 흥미로웠다.
아닌 게 아니라, 주목할 만한 사건은 늘 더 주목할 만한 사건에 의해 묻혀 버리는 법이기는 하다.
중요한 것은 그 ‘주목할 만한 사건’의 기준을 내가 잡는다는 사실.
예의니 무례니를 떠나, 그것은 청춘(굳이 나이를 따질 필요는 없으리라)의 본능이요 권리다. 내가 괴테를 신앙인이라 부르건 위대한 이교도라 부르건, 혹은 표현주의자라든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그건 내 감정의 문제다. 내게 감동을 주는 일체의 예술을 신성하다고 일컫건, 표현주의라고 부르건, 그건 전적으로 내 권리인 것이다.
내 말이 그 말이다.
파블로 네루다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 27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문학의 진실과 감동, 시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교과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책 뒤표지에 자주색으로 쓰여 있는 석 줄짜리 카피다. 책을 만들면서 책 표지에 어떤 문구를 넣어야 하느냐의 문제, 가히 심각하다. 책의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으면서, 자랑이라는 걸 그다지 티내지 않으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 독자에게 시간 오래 끌지 않고 들이댈 수 있을 만큼 눈에 띄면서, 그러한 모든 ‘~면서’를 해결해야 하는 아주 적은 개수의 문자 조합하기. 한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감동’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교과서’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더군다나 저자 스카르메타가 네루다의 시적인 향기에 흠뻑 취한 작가였고, 그 자신이 고백하듯, 결코 네루다의 지인들 축에 끼어보지도 못했고, 시인과 세대 차이도 분명히 느꼈으며, 문학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네루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1985년 마침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단다.
그러니 번거로울 수밖에. 네루다란 인물에 대한 탐구와
<일 포스티노(Il Postino [The Postman], 1994)>라는 영화에 대한 검색은 당연했다.
만약 여러분이 가령 다음과 같이 대답하면 그들은 즐거워한다. 예전에는 연구를 하는 사람은 도서관에 가서 특정 주제에 관한 책 열권을 찾아서 읽었지만, 오늘날에는 자기 컴퓨터의 버튼 하나를 누르면 1만 권의 문헌 목록을 받게 되고, 그러면 포기하게 된다고 말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보의 양은 아연실색 수준이었다. 그래서 ‘파블로 네루다’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이에스 바소알토(Neftal Ricardo Reyes Basoalto)라는 아주 긴 본명을 가진 칠레의 국민적 영웅이자 민중 시인이며, 노벨상 수상 작가이고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거, 고 정도만 받아들이기로 해버렸다.
그리고 영화
<일 포스티노>. 인터넷 해외사이트까지 뒤져 포스터란 포스터는 다 본 듯싶은데, 내가 책 속에서 공들여 그려나간 이미지와 너무 달라 적잖이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 선정성을 어떤 식으로 얄궂게 표현을 했을까 시키지도 않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책으로만 볼 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비슷한 시기에 읽은 코엘료의
『11분』이 우울하고 심난한 선정성을 드러내 찜찜한 기분으로 할 말 잃게 한 소설임에 비해, 맑은 날 퍼지는 햇발만큼 경쾌했다. 역자의 ‘해학적’이란 표현이 제대로지 싶었다, 꼭 마당놀이 보는 듯한. 나름대로 야하다곤 하는데 보는 사람은 흥만 겨운. 물론 저자 스스로도 이 소설을 ‘19금’을 의식하고 써내려가진 않았을 게 분명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책을 읽은 시간보다 정보 검색에 시간이 더 들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현암사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 중
『우리 규방 문화』를 읽으면서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새로이 내가 혹한 건 詩였다. 물론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자수 작품과 공예품들은 화보 한 컷만으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고, 도대체 이걸 어찌 알고 계시나 할 만큼 꼼꼼한 설명들은 저자에게 존경을 바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이 자꾸만 시로 쏠리는 걸 어쩌랴! 내 호기심과 미련의 대상, 허난설헌의 것은 물론이고 꽤 많은 시들이 등장한다.
그중 한 수.
이웃집 다듬잇소리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잦아 가네
무던히 졸리기도 하련만
닭이 울어도 그대로 그치지 않네
의좋은 동서끼리
오는 날의 집안일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남편들의 겨울 옷 정성껏 짓는다며는
몸이 가쁜들 오죽이나 마음이 기쁘랴마는
혹시나 어려운 살림살이
저 입은 옷은 해어졌거나 헐벗거나
하기 싫은 품팔이 남의 비단 옷을
밤새껏 다듬지나 아니 하는가.
- 「다듬잇소리」, 양주동
지인 중에 깊은 산 중턱에서 덩그마니 살았던 가족이 있다. 겨울이면 황소바람이 칼을 들고 지나가는. 얼마나 추웠는지 그 집서 딱 하룻밤 묵고 온 남편이 굉장한 몸살감기를 앓았더랬다. 하여간 ‘~았던’이라고 말한 건 그게 꽤 오래 전의 일이기에 그러하다. 지금은 서로 왕래가 없다.
하여간 젊은 부부하고 딸 하나하고 개 두 마꺸하고 그렇게 사는데, 가난했다. 그래서 몇 푼 보태겠다고 안사람 되는 분이 뜨개질을 하는데, 밤새 앉아서 솜씨 좋게 떠서는 그걸 내다 판단다. 지금은 실 값도 만만치 않고 수제품이라고 가격도 꽤 세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좀 달라서 큰 벌이는 안 되었다 들었다. 하지만 공들여 한 땀 한 땀 떠서 가게에 내다 주고 몇 푼 받아오고, 뜨고 남은 실이랑 얻어온 실로 딸 거 만들고, 그거 작아지면 풀어 다른 실이랑 섞어 아빠 거 뜨고, 또 아빠 거 풀어 딸 거 만들고 그러면서 말이다. 나는 그녀의 뜨개질을 또 하나의 거룩한 규방 문화로 받아들이며 경외했다.
우리는 밤에 같은 침대에서 같은 책을 읽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각기 다른 데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결국 다른 책이었던 셈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원하던 것을 얻기도 했고, 길을 잃기도 했으며, 원수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뻔질나게 한눈도 팔았다. 하지만 ‘한눈을 버리다’가 아니라 ‘한눈을 팔다’ 아니겠는가. 팔았으니 벌어온 것이 당연히 있는 법. 그렇게 벌어온 것으로 나는 하루하루 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