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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산다는 것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 작품이 두 번째 장편영화인 나카무라 요시히로는 원작이 담고 있는 주제 의식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신 원작의 디테일한 묘사의 상당수는 제거하면서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110분짜리 장편영화로 표현해내고 있다.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산다는 것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 글은 필자의 YES24 채널예스 <소마의 DVD 라이프>의 마지막 DVD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무려 3년 가까운 기간 동안이나 저의 졸렬한 글들을 소중한 공간에 실을 수 있도록 해주신 YES24 관계자 여러분들과 그다지 발전의 기미가 없었던 저의 글들을 클릭해 읽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로 예정된 이 칼럼의 마지막 글은 DVD 리뷰가 아니라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연재했던 칼럼들에 대한 자평과 요즘 제가 느끼고 있는 생각들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비록 YES24에서의 연재는 끝을 맺지만, 글은 계속 써 나갈 생각입니다. 잘할 때까지요. 후후……. |
센다이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작은 아파트로 이사한 시나(하마다 가쿠나)는 박스를 정리하던 중 옆방에 있는 가와사키(에이타)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만나자마자 시나가 흥얼거리던 밥 딜런에 대해 이야기하고, 엉뚱하게도 ‘서점을 털자’며 모델 건을 보여주는 자, 가와사키. 시나는 이 남자에게 이끌려 그의 범죄에 휘말리게 되고, 2년 전에 있었던 가와사키와 부탄 남자 다르지 그리고 코토미(세키 메구미)라는 여성에게 벌어진 일들을 알아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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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구한 밥 딜런의 노래 ‘Blown' In The Wind’의 번역된 가사의 일부는 대략 이렇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 밥 딜런의 ‘Blown' In The Wind’는 원작 소설보다 한층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원작 소설이나 영화 속이나 밥 딜런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로 추앙받는다. 록 음악 역사상 가장 논란을 많이 일으켰으며 가장 복잡하고 반항적인 예술가적 자의식을 지녔던 밥 딜런의 목소리는 이렇게 이 영화에서 ’신‘의 위치를 차지하고, 엇갈리는 운명의 동아줄에 얽혀버린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소설에서는 ’Blown' In The Wind’ 외에도 밥 딜런 최고의 히트곡인 ‘Like a Rolling Stone’이 언급되지만, 영화 속에서는 오직 ’Blown' In The Wind’의 처연한 목소리만이 반복된다. 사실 이 노래는 이 영화뿐 아니라 우리 영화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생이 꼬여 있어 위악적인 대학 시간강사 호준은 입대가 곧 영창행인 바른 생활 여호와의 증인 청년 계상의 집에서 너무나도 순수하게 이 노래의 번안 버전을 부른다. ‘Blown' In The Wind’는 곧 삶의 고난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그 좌절의 연속을 통해 진행되는 역사의 진보를 담고 있는 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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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영화로 넘어오면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원작의 내용들을 취사선택하거나 압축했고 약간의 내용을 더했다. 가령, 소설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된 가와사키의 바람기에 대한 묘사는 영화에서는 몇몇 대사로 대치되었고 소설에서 레이코가 처음 등장하는 성희롱 사건은 영화의 주제를 좀 더 축약할 수 있는 사건으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카와사키와 시나의 대화 장면은 좀 더 자세히 묘사된다.
이 작품이 두 번째 장편영화인 나카무라 요시히로는 원작이 담고 있는 주제 의식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신 원작의 디테일한 묘사의 상당수는 제거하면서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110분짜리 장편영화로 표현해내고 있다. 원작 소설은 2년이라는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시나와 코토미라는 두 인물의 주관적 시점으로 그려지지만, 영화에서는 시나라는 인물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적절히 플래시백을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영화는 원작에 비해 디테일한 설정들이 빠진 탓인지 논리적 설명이 부족한 듯하지만 밥 딜런의 노래가 지닌 특유의 정서나 주제가 담고 있는 쓸쓸함이 마음에 잘 다가오는 편이다. 특히, 가와사키를 연기한 에이타가 팔을 뻗어 진실을 밝히는 시퀀스는 소설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서글픔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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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일본인들이 지닌 외국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소설에는 없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인도계 여성으로 보이는 여성이 자기 나라 말로 길을 묻자 버스 기사는 ‘일본에 왔으면 일본어로 말해야 할 것 아니야!’라고 말하고 매몰차게 버스의 문을 닫아버린다. 또 부탄인 다르지가 경찰에게 ‘애완동물 연쇄살인범’의 위치를 알려주는 장면에서도 일본인 경찰관은 임무 수행에 앞서 신기한 듯 다르지를 쳐다보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가와사키가 부탄의 문화와 일본의 도시 문화를 비교하며 힐난했던 일본인 특유의 외국인 차별 의식이 영화 속에서는 이런 몇몇의 장면 변화를 통해 대치된다. 영화는 소설에서 이미 제시된 결론을 향해 나아가기는 하지만, 좀 더 끔찍한 일을 겪은 외국인 남자의 서글픈 내면과 소외감에 좀 더 주목한다.
영화의 제목에 사용된 ‘집오리와 들오리’는 이 영화의 주제를 상기시킨다. 부탄에서 온 남자 다르지는 일본어에서 집오리와 들오리의 차이를 묻는다. 외국에서 온 오리와 일본의 오리라는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는 같은 오리인 것처럼 사실 사람도 그저 사람일 뿐인 것이다. ‘가이진’이라고 ‘외국인’을 부르는 일본인들. 영화는 그 편견이 낳는 사람들의 고통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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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관찰자이자 서술자인 시나는 관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레이코(오오츠카 네네)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사건에 끼어든’ 인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센다이에 도착하자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가 떠나자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매우 정서적이지만 마치 르포르타주처럼 범상한 인물인 시나가 일본 사회로부터 떠밀려버린 남자에게 진심으로 동감하게 되었는가를 다룬다.
현행법에서 사실 애완동물을 죽이는 행위는 큰 죄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실제로는 끔찍한 일에 무기력한 법 체계처럼, 우리의 무심함과 편견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어느덧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리라. 시나가, 그런 일반적인 편견을 넘어섰던 코토미가 했던 것처럼, ‘신의 목소리’인 밥 딜런의 목소리를 센다이역의 코인로커에 가두고,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Blown' In The Wind’를 틀어놓는 것은 그런 동감의 표시이자 영화 밖 사람들도 이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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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본 영화 DVD는 화사함이 덜한 건이 일반적이고 사실적인 영상을 선보인다고 한다. 그런 경향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SE>도 마찬가지다. 최신작이니만큼 과거 영화들에 비하면 좀 더 선명한 색감을 선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약간 먹먹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서는 실내 장면이나 야간 장면에서의 필름 그레인도 발견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안정된 영상 톤을 유지하며 인물 윤곽선 등의 표현은 정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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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 애호가들의 영향이 깊은 일본 영화 DVD 타이틀들은 웬만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아니고서는 스테레오 사운드를 지원한다. 이 영화의 DVD 역시 마찬가지다. 장르 전체적으로 강한 사운드 효과가 있는 편이 아닌 이 영화 역시 정확한 대사 표현 등 기본에 충실한 사운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적절하게 효과음이 배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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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먼트로는 일단 Disc 2에 수록된 메이킹 필름(34분 54초)이 일단 먼저 눈에 띈다.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와 주연배우들인 에이타, 세키 메구미, 하마다 가쿠나, 오오츠카 네네, 마츠다 류헤이 등의 인터뷰가 들어 있다. 차분히 자신의 배역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이타와 촬영 당시의 슬픈 감정을 이기지 못한 채 인터뷰에 응한 하마다 가쿠나의 상반된 태도가 인상적이다. 나카무라 감독 롱 인터뷰(26분 30초)는 말 그대로 감독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자신의 연출 의도와, 원작과 영화의 차이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미공개 장면(16분 34초)은 촬영하였으나 최종 편집에서 잘려 나간 장면들을 볼 수 있다. 로케지 지도는 영화 촬영이 이루어진 센다이에서 사용된 9개의 실제 장소에서의 촬영 장면을 볼 수 있는 메뉴다. 그리고 무대 인사(16분 57초)는 일본 개봉 당시의 무대 인사 모습을 담고 있다. 본편이 수록된 첫 번째 디스크에는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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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출연: 에이타, 세키메구미, 오오츠카 네네, 마츠다 류헤이21,500원(15%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