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다시 보고 싶은 책
꿈과 모험,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드라마 - 『보물섬』
바다와 낭만을 다룬 대영제국 시대의 영국 문학 중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바다 낭만을 구현한 책은 아마도 스티븐슨의 『보물섬』이겠습니다. 보물 지도, 해적, 외다리, 앵무새, 머나먼 보물섬, 수수께끼, 음모, 배신, 모험……
인간의 이성이 꿈꾸고 동경하는 공간은 언제나 감각이 닿지 않는 저 너머의 세상입니다. 지구의 거죽이라는, 인간이 딛고 사는 세계의 상당 부분이 밝혀지면서 이제 인간의 상상은 우주를 향하고 있습니다. 저 머나먼 암흑 너머 어딘가에 있을 듯한 또 다른 생명과 그 생명이 만드는 이야기에 대한 동경은 과학이라는 시대의 옷을 입고 SF라는 장르로 등장하고, 지금 손에 닿지 않는 마법과 전설의 틀 안에서는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런 걸 낭만이라고 부르겠지요.
그 낭만은 지금보다 세계가 덜 밝혀졌던 시기에는 보다 강렬했습니다. 바다, 인간이 거쳐갈 수는 있지만 영원히 머무르긴 어려웠던 그 넓고 푸른, 가득한 무언가의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사람들은 꿈꾸었습니다.
염원이었던 바다는 그러나 단순한 염원에 머무르지 않고 장벽으로 존재했기에 더욱 드라마틱했습니다. 걸핏하면 탐험가들을 집어삼키고 포악성을 드러냈던 포세이돈의 모습, 그리고 그 모든 난관을 넘어 새로운 땅을 찾아내고 새로운 상품과 금을 한가득 실어 오던 대항해시대의 추억은 서구인들의 사고 깊숙한 곳에 바다에 대한 낭만을 만들어 냅니다.
서구의 사고와 서사가 전 지구적으로 보편화된 지금은 그래서 그 대항해시대와 유럽의 세계 진출에 맞물려 축적된 바다와 모험, 낭만에 관한 컨텐츠가 상당합니다. 『오디세이아』를 필두로 한 바다 모험 이야기는 『걸리버 여행기』『로빈슨 크루소』『15소년 표류기』『파리대왕』 같은 소설뿐 아니라 실제로 페루에서 폴리네시아까지 뗏목을 타고 간 논픽션 『콘티키』까지 다채롭습니다.
바다와 낭만을 다룬 대영제국 시대의 영국 문학 중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바다 낭만을 구현한 책은 아마도 스티븐슨의 『보물섬』이겠습니다. 보물 지도, 해적, 외다리, 앵무새, 머나먼 보물섬, 수수께끼, 음모, 배신, 모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해적과 보물찾기 이야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스티븐슨의 모험소설 『보물섬』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 가졌던 꿈과 낭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모험 이야기입니다.
『보물섬』의 줄거리는 한 문단으로 요약될 정도로 단순합니다. 어머니의 여관 일을 도우며 살아가던 소년 짐은 어느 날 술 취한 손님이 죽으며 남긴 보물지도 한 장을 얻게 되고, 이 보물지도를 기초로 짐이 살던 항구마을 사람들은 보물을 찾기 위한 항해를 준비합니다. 항해를 위해 고용한 선원들은 그러나 출항 이후 전직 해적인 외다리 실버와 함께 마을사람들을 죽이고 보물을 자기들끼리 나눠 갖기로 논의하고, 이를 짐은 엿듣습니다. 섬에 상륙하여 마을사람들과 해적패는 갈라서고, 보물을 찾던 중 이미 보물은 벤 건이라는 섬에 고립된 남자가 숨겨두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벤 건과 함께 귀환하여 보물을 나눠 갖고, 실버는 그 와중에 살짝 붙어 자기 몫의 보물을 챙겨 도망친다는 내용입니다.
원작 소설 『보물섬』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많고, 대부분의 『보물섬』 컨텐츠가 한국에서는 TV애니메이션으캷 알려졌기에 원작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보물은 지도상의 위치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파내어 다른 곳에 옮겨 두는 등 후반부의 모습은 원작소설보다 각색된 애니메이션 버전이 좀더 숨 막히는 모험을 보여 줍니다.
『보물섬』의 재미를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소설이 씌어진 당시의 해양 문화와 해적 문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물섬이 출판된 해는 1883년으로, 당시의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아래 해양 제국으로서의 대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16세기 있었던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의 주요 세력들이 대양을 넘어 진출하면서 시작된 대항해시대는 이후 18세기 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막대한 부와 재화의 유통을 창출합니다. 개량된 조선술에 의해 기존보다 방대한 양의 화물들이 더 빠른 속도로 수송될 수 있었고, 농지 독점과 인구 폭증, 도시화를 통해 항구도시로 유입된 저숙련 노동력들은 선원의 공급량을 늘려 항해 단가를 낮추었습니다. 게다가 간간이 들려오는 여러 탐험가들의 보물 발굴 소식은 사회 전체를 통틀어 ‘한몫 잡는 항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바다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물량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이윤도 막대해지면서 이른바 ‘해적’이라는 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육지와 달리 치안권의 확보가 애매한 바다라는 공간에서 서식하며 수송선들을 약탈해 먹고 사는 해적들은 해상 무역로가 확대되는 것과 그 발전을 같이합니다.
이때 유럽의 중심이었던 몇몇 열강들의 다툼이라는 제국주의의 흐름은 해적과 맞물리면서 사략선Privateer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사략선이란, 국가의 허가를 받아 무장한 채 적국의 함선을 자유롭게 약탈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배를 가리키는데, 영국의 경우 경쟁국 무역의 방해를 위해 이름난 해적들에게 영국 국왕의 사략 허가서를 발행한 바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16세기)의 유명한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사략 해적들이 번성했던 16~17세기에는 특히 그 모험에 대한 열광이 높았고, 그만큼 세간에 떠도는 루머들도 방대했습니다. 이는 이후 산업화에 의해 해양 진출이 귀족, 탐험가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인들도 참여 가능한 형태로 바뀌면서 모든 이들에게 바다 로또의 꿈을 심어 주게 됩니다.
일반인의 해양 진출이라는 개념은 주식회사가 보편화되면서부터입니다. 배 한 척을 띄우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돈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개념이 보급되면서 일반인들은 가장 많은 돈을 내는 선주에게 일종의 투자금을 지불하면서 그 배가 얻어오는 무역, 또는 약탈의 수입을 투자지분만큼 획득하는 형태로 해양 사업에 참여하게 되는데, 소설 『보물섬』에 나오는 마을 부자 트릴로니와 항해에 직접 가담하는 의사 리브지 등이 바로 좋은 예입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글/<노먼 프라이스> 그림/<김영선> 옮김11,700원(10% + 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보물섬』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더불어 우리에게 많이 소개되어 왔습니다. 『보물섬』의 주인공 짐 호킨스가 펼치는 극적이고 파란만장한 모험을 아직도 어린 시절의 설레임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출판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