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에겐 부엌에서 보내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요리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고백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에 초콜릿 한 판을 넣고 끓인다. 이때 물의 양은 초콜릿을 담을 컵보다 조금 많게 한다. 물이 처음으로 끓기 시작하면 불에서 내려 초콜릿을 완전히 녹인다. 초콜릿이 물과 충분히 섞일 때까지 소형 제분기로 잘 저어준다. 그리고 다시 불에 올려놓는다. 다시 끓어 넘치려 하면 불에서 내린다. 그리고 얼른 다시 불 위에 올려 세 번째로 끓인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불에서 내려 잘 저어준다. 작은 주전자에 반을 덜어내고 나머지를 잘 저어서 섞어준다. 그러고 나서 윗부분이 거품이 덮인 상태로 내놓는다. 물 대신 우유를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유를 넣었을 때 경우에는 한 번만 끓여준다. 두 번째로 불에 올려놓을 때에는 초콜릿이 너무 걸쭉해지지 않도록 잘 저어준다. 물을 넣어서 끓인 초콜릿이 우유를 넣은 것보다 훨씬 소화가 잘 된다.
혁명과 저항이 반복되는 불안한 시기였던 20세기 초의 멕시코. 미국과 국경지대인 리오 그란데에 큰 농장을 소유한 마마 엘레나의 세 딸 중 막내딸인 티타는 막내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시집도 못 가고 보살펴드려야 한다는 집안의 악습에 따라 사랑하는 페드로가 큰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사랑하는 그녀 옆에 있기 위해서 언니와 결혼했다는, 약하고 우유부단한 그와의 사랑은 참으로 질기게 평생토록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아프고 괴롭고 사랑하는 순간을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그 요리로 그녀의 끈끈한 마음을 전하며 살아간다. 어머니와 언니가 핍박하는 것도 견뎠지만 자신의 아이처럼, 젖까지 먹여가며 키웠던 페드로의 아들이 죽어버리자 거의 실성한 그녀는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을 강요했던 어머니에게 반항하고 집을 떠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녀를 보살펴 준 사람은 다정다감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의사인 존 브라운.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그와 약혼까지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다시 페드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모든 우여곡절을 겪고 난 다음 둘만 남은 그들은 이제 서로만 생각하고 살기로 하지만, 첫날 밤 페드로가 절정의 순간 심장마비로 죽어버린다. 티타는 ‘사람은 누구나 몸속에 성냥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을 생각하며 성냥을 하나하나 씹어 삼키기 시작한다. 페드로와의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들을 상상하자 티타에게 불이 붙고 둘은 그렇게 같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라진다.
책보다 영화가 더 유명한 라우라 에스키벨의 첫 장편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여성의 삶, 사랑, 남자의 소극적인 본성, 그리고 재료들의 상태와 익어가는 과정, 먹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표현되는 관능적인 이미지들과 은유들. 밤새워 설움을 달래려 넓은 농장을 다 뒤덮어버릴 만큼 떠버린 뜨개질과 많은 양의 저장식품 만들기 같은 반복적인 노동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모습까지. 이 책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물론 멕시코의 요리를 소재로 한 이야기이니만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히타나 나초가 아닌,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도 힘든 재료들이 잔뜩 들어가는 멕시코 요리들도 등장한다. 책이나 영화를 본 모든 이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요리는 아마도 장미꽃잎을 넣은 메추라기 요리가 아닐까?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1992)>
페드로가 선물한 장미를 꼭 끌어안은 탓에 피가 스며들어 붉어진 꽃잎으로 요리를 만들고, 그녀가 만든 요리가 그의 입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는 무척이나 에로틱한 장면. 요리를 통해 서로의 사랑을 말하고 육체적으로도 느끼게 할 수 있는, 티타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마법 같은 요리였다. 실제로 요리로 마음을 완전하게 전달하는 것은, 요리를 만들고, 먹는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교감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이 책에서 티타가 만드는 요리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다기보다는 마법에 걸렸다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마녀들은 실제로 빗자루만큼이나 솥하고도 친하니까)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오와하카(Oxaca) 요리인 에스토파도(Mole Estofado)를 연상시키는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몰레(mole)도 장미 요리만큼이나 관능적이다. 볶은 아몬드와 참깨를 맷돌 위에서 으깨는 티타의 엎드린 자세와 그녀의 가슴을 훔쳐보는 페드로의 눈길에 대한 묘사라니. 연인들의 사랑의 농도와 깨 볶는 고소한 냄새는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후각 키워드인지도.
티타가 자신의 조카딸 결혼식을 위해 신경 써 준비한 마지막 요리인, 그릴에 구운 다음 고기와 말린 과일로 속을 채운 포블라노(Poblano), 고추에 아몬드, 호두소스를 듬뿍 뿌리고 석류로 장식한 칠레스 엔 노가다(chiles en nogada)도 시장에서도 잔칫집에서도, 멕시코 어딜 가도 맛볼 수 있는, 푸에블라(puebla) 지역이 원조인 요리. 초록의 고추와 흰 견과소스에 석류까지. 멕시코의 국기 색을 나타낸다고는 하지만 그 요리들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수많은 재료들이 과연 멕시코만의 것일까? 멕시코 요리와 문화는 스페인에서 전해진 유럽 문화와 자신들의 인디언 문화가 촘촘하고 복잡하게 섞여있다. 견과류부터 절인 과일, 중동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것이 분명한 향신료들이 가득 들어간다.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고 섞는 그 모든 역사들이 멕시코 자체다. 실은 이 책 안에도 사랑 이야기 안쪽에 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질문이 계속 깔려있다.
멕시코 오와하카Oaxaca의 핫 초콜릿.
책 제목을 왜 ‘초콜릿을 위한 물처럼(Como agua para chocolate, 영어 제목은 Like water for chocolate)’이라고 붙였는지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책에는 이 초콜릿을 위한 뜨거운 물이 그녀의 부글부글 끓는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난 그렇게 중요한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요리가 왜 더 자주 책에 언급되지 않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녀의 그 복잡하고 억울하며 서글픈 심정을 ‘외상값 못 받은 주모 속이 국밥같이 끓는다.’ 정도로 간단히 표현하기에는 더 깊은 뜻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가지고 있던 궁금증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올 4월, 멕시코 오와하카Oaxaca의 한 재래시장 좌판에 앉아 뜨거운 초콜릿 한 사발을 시키려고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보다가 문득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갑자기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해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납득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16세기에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기 전까지 우유나 치즈, 밀가루는 멕시코의 식재료가 아니었다. 초콜릿은 물에 타서 마셨고 또르띠야는 100% 옥수수 가루로만 만들어질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의 자리를 우유가 밀어내고, 소설 속의 배경인 리오 그란데와 같은 국경 지역에서는 흰 밀가루 또르띠야를 사용하고 치즈를 뿌린 타코 같은 음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오래된 것들은 변해서 살아남거나 아니면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너무나 오랫동안 뒤섞여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티타는 한 사람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페드로였다. 티타와 약혼한 닥터 브라운은 스페인 말과 영어를 동시에 쓰는, 초콜릿에 섞이는 우유와 같은 존재였다. 그와 결혼함으로써 힘들었던 그녀가 평안을 찾고 안정되길 그녀 스스로도 바라지만, 미리 정해진 운명 같은 사랑은 그렇게 그녀가 다른 이를 받아들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티타는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도망칠 용기도 없는 우유부단한 첫사랑을 다시 마음을 주고 사랑하게 된다.
‘초콜렛을 위한 물(Como agua para chocolate)’은 원래 정해진 사랑에게로, 넓게는 그녀에게 가장 편한 부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그녀의 운명을 나타내는 상징이 아니었을까.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올바른 선택이고 아니고를 떠나, 세상에는 바뀔 수 없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니까. 초콜릿은 원래 마시는 음료수였고, 만들기 위해서는 따듯한 물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멕시칸 초콜릿. 원형은 미국의 델리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Ibarra. 사각형은 오와하카를 대표하는 초콜릿 공장 Mayordomo의 classic flavor.
무엇보다 티타에게 요리는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늘 복종만을 강요당하는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며 때로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환경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한 그녀만의 무기이기도 했다. 멕시코 요리들은 거의 대부분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하고 스스로를 위한 패스트푸드가 아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요리들이다. 길거리에서 언제든지 사먹을 수 있는 간단한 타코도 옥수수를 갈아 또띠야를 만들고, 양념해 둔 고기를 푹 삶아 다시 잘게 다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 그런 멕시코의 요리법, 부엌과 전통은 끊이지 않고 연결되어 왔다. 이 이야기의 첫 시작도 본인들이 아닌, 손녀딸이 엄마에게 받은, 불 속으로 사라져버린 집에 유일하게 타지 않고 남은 요리책을 보고 시작하니까. “우리 엄마……”로 시작하는 요리 자랑은 멕시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번 “우리 엄마가, 우리 할머니가……”라고 시작하는 요리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계속 이어지며, 변하지 않는다.
또 부엌만큼 보수적이고 여성적이며 이야기가 많은 공간이 또 있을까? 부엌 안에서 여자들은 속박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 마음먹은 대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여자의 고통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솥들”로 가득한 부엌에서 보내는 일생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에겐 부엌에서 보내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요리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고백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제법 달콤하고 마음이 살짝 기름진 다크초콜릿 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아직은 윤기 나게 초콜릿을 끓여낼 마음의 불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 언제쯤 어느 누군가 편하게 녹아들 수 있는 물 같은 존재가 되어, 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려나.
1.
미리 잘 섞어 둔 시나몬가루과 물, 다크 코코아 가루를 냄비에 넣고 끓인다. (미리 물병에 넣어 힘껏 흔들어 섞어두면 더 잘 녹는다.) 펄펄 끓이기보다는 냄비 가장 자리로 부글부글하면서 김이 올라오는 정도까지만 끓인다. 계속 잘 저어줄 것.
2.
물이 끓으면 불을 끄고 잘게 다져놓은 초콜릿을 넣고 덩어리가 다 녹도록 저어준다. 초콜릿을 빨리 녹이려 불을 켜 놓고 상태에서 넣어주면 초콜릿의 향이 반감되니 되도록 천천히 시간을 들여 녹인다. 향과 질감을 살려주는 필수 과정. 다 녹으면 뚜껑을 덮고 최소한 몇 시간 또는 밤새 놓아둔다. 시나몬 향을 진하게 만들고 싶으면 시나몬 스틱 약간을 넣어 밤새 향을 낼 것.
3.
마시기 전에, 원하는 만큼의 양을 덜어 끓이지 말고 따끈할 정도로만 데워 마신다. 카페오레 그릇 같이, 옆으로 넓은 그릇에 마실 때 초콜릿 향을 더 많이 맡을 수 있다.
# 보관할 때 냉장고보다는 실온에 두는 것이 좋다.
# 우유로 만들 때는 물의 양에서 500ml를 우유로 바꾼다. 그리고 물을 끓일 때보다 훨씬 낮은 온도로 우유를 데울 것.
차유진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손녀딸'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친숙하다. 이 닉네임의 기원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PC통신이 처음 전파될 무렵 국내 치초로 생긴 무라카미 하루키 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그녀는 하루키의 소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 "분홍 옷을 즐겨 입고 요리를 잘하고 얼굴이 예쁘고 영리한 뚱뚱한 손녀딸"에서 자신의 닉네임을 따왔다.
경원대학교 섬..
1910년부터 1933년 무렵의 멕시코 시골에 사는 데 라 가르사 가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티타는 엄하고 강압적인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세 딸 중 막내딸인데, 데 라 가르사 가문의 전통에 따르면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