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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에게 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놀이를 허하라!

놀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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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게 함께 놀 친구와 놀 곳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은 무척 씁쓸하다. 그러나 학과성적을 높이기 위한 줄넘기 연습은 노는 게 아니다. 놀이 ‘학원’에서 배우는 강습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놀이세계에도 금전이 필수요소가 된 게 참으로 안타깝다.

놀이를 주제로 한 신간 두 권을 눈여겨보긴 했다. 하지만 어느 신문기사가 뇌관 역할을 할 때까지 약간 뜸을 들였다.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돈으로 놀이를 사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한겨레> 2008년 8월 5일자 9면)

요즘 아이들에게 함께 놀 친구와 놀 곳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은 무척 씁쓸하다. 그러나 학과성적을 높이기 위한 줄넘기 연습은 노는 게 아니다. 놀이 ‘학원’에서 배우는 강습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놀이세계에도 금전이 필수요소가 된 게 참으로 안타깝다. 공기놀이를 돈 주고 배우다니, 돈 내고 하다니.

‘놀이학’의 고전인 요한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김윤수 옮김, 까치, 1981)나, 로제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1994)은 건너뛴다. 굳이 놀이를 다룬 고전적 저작을 거론하지 않아도 될 만큼, 놀이를 주제로 한 신간 두 권은 알차다. 읽는 재미와 깊이 있는 내용을 두루 갖췄다.

아니나 다를까! 스티븐 나흐마노비치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Free Play)』(이상원 옮김, 에코의서재, 2008)에서 우리를 처음 맞는 것은 호이징가의 인용문이다. “놀이는 무언가의 이미지를 마음속에서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나흐마노비치의 호이징가에 대한 ‘오마주’는 본문을 펼치자 또 나온다.

“놀이를 아는 것은 마음을 아는 것이다. 놀이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흐마노비치의 책에서 놀이는 핵심주제에 연루된다. 따라 들어온다. “이 책은 그 순간적인 창조의 내적 원천을 탐구함으로써 예술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보려 한다.” 또 그는 “즉흥성의 내적 차원을 탐험하려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즉흥작업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무의식에서 나오는 원재료를 가지고 의식이 한바탕 자유로운 놀이를 벌인다는 것이다.” 하여 나흐마노비치의 ‘놀이관’에 앞서 그의 ‘즉흥작업에 대한 생각’을 먼저 살피는 게 자연스런 순서일 것 같다.

바이올린연주와 작곡이 본업인 나흐마노비치에게 “모든 예술은 즉흥연주다.” 그는 예술의 시간은 둘로 나뉜다고 한다. ‘필’이 떠오르는 순간과 ‘필’을 구현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고통의 시간”이 그것. 반면, 즉흥작업에선 하나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실시간이라 부르는.” 그리고 그것은 “일시성과 영원성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자아의 반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즉흥작업은 동양의 서예와도 닮았다.” 또한 사전에 정해지진 않았어도 어떤 규칙이 있는 “즉흥작업은 행동하는 직관이다.” 여기서 직관은 “느낌과 사고를 모두 포함하면서 그 어느 것도 아닌, 더 심오한 무언가”를 말한다.

즉흥작업은 우리가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마음과 원시의 심성을 회복시켜준다. “위대한 예술적 창조는 잘 훈련 받은 성인 예술가가 어린아이의 순수한 놀이 의식으로 돌아갈 때 얻어진다. 이러한 놀이 의식이 안겨주는 독특한 느낌은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이는 ‘끊임없이 즐거운 듯 흘러가는 물 위에 공을 던지는 느낌’이라고도 표현된다.”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은 창조와 상상력의 원천인 놀이를 탐구한다. “놀이는 창조성의 시작점이자 삶의 근본 형태다. 놀이가 없다면 학습이나 진화는 불가능하다. 놀이는 독창적인 예술이 꽃피도록 하는 뿌리이며 예술가가 새로운 기법을 만들고 익히기 위한 원재료다.” 놀이의 핵심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에 있다. 놀이는 사회적 위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놀이는 우리를 속박에서 해방하고 행동 영역을 넓혀준다. 놀이를 통해 반응이 풍부해지고 유연한 적응력도 길러준다. 이는 놀이의 진화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현실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음으로써 우리는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난다. 놀이는 자신의 능력을 재확인시키고 전례 없는 방식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도록 한다.”

나흐마노비치는 놀이를 정의내릴 수 없다 면서도, 슬며시 이런다. “놀이는 게임과는 다르다. 놀이는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고 행하는 것이다. 게임은 일정한 규칙하에 이루어지는 활동, 예를 들어 배구, 시 짓기, 교향곡 연주, 외교外敎 같은 것이다. 놀이는 태도이자 행동의 방식이지만 게임은 규칙과 참여자가 정해진 활동이다.”

놀이에는 이유가 없다. 그 자체로 존재한다. “놀이는 언제나 보상을 안겨주지만 비용은 필요치 않다. 놀이에 값을 매기기 시작하면 그건 곧 놀이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예술가 또한 먹고살아야 하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유로운 놀이로서의 예술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

한편, 바이올린연주자로서 나흐마노비치의 깨달음은 미묘하다. “단번에 그렇게 급상승하는 바이올린리스트는 없으며 순간적으로 소리의 높낮이를 판단해 조정해나가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손가락은 단번에 목표지점에 도착해 멈추는 것이 아니다. 미세하게 위아래로 미끄러지며 귀가 듣고 싶어 하는 그 정확한 높낮이를 찾는다. 민감한 귀와 유연한 손가락을 통한 끊임없는 피드백 과정을 거쳐 제대로 슬라이딩을 하는 것이다.”

아동심리학자 데이빗 엘킨드의 『놀이의 힘(The Power of Play)』(이주혜 옮김, 한스미디어, 2008)은 ‘완곡한 놀이론’다. 이 책은 읽히는 힘이 있다. 그 바탕이 되는 편안한 문투와 차분한 내용 전개는 저자의 자제력과 편집자의 조력에 크게 힘입는다.

“그녀의 점잖으면서도 비평적인 편집 덕분에 나 역시 지나침이 없도록 자제할 수 있었다. 그녀의 노력으로 더 안정적이고 초점이 분명하며 가독성이 좋은 책이 나왔다.”

오늘날 아이들 세계에서 놀이의 부재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호기심과 상상력, 환상을 피워 올리기 위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나온 기질이다. 이 놀이가 우리 손으로 창조해낸 첨단과학과 상업주의 시대에 이르러 침체를 겪고 있다.”

엘킨드는 “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놀이의 부재가 가져온 심리적인 문제” 또한 우려할 만하다고 덧붙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조직해주지 않아도 안전하게 놀 수 있다. 사실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 계속해서 그래 왔다.”

프로이트의 동기 지향적 접근법과 장 피아제의 인지 이론을 통합한 “인지-동기 지향적 놀이발달 이론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엘킨드는 “부모와 교육자들이 함께 아이들의 삶 속에 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놀이를 되돌려주자는 제안”으로 프롤로그를 마무리한다.

엘킨드는 주요 발달 단계를 놀이, 사랑, 일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기술한다. 먼저, “대략 생후 2년까지의 유아기에는 놀이, 사랑, 일이 거의 구분이 안 되는 상태에서 놀이가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데, “이 연령기 아동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학습 방법은 바로 놀이다.”

만 6세에서 12세까지 “아이들에게 놀이는 이전 단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아동들은 규칙을 지닌 게임을 주된 놀이 형태로 삼고, 놀이 상대나 동료로 부모보다는 친구들을 더 선호한다.”

청소년기에는 놀이, 사랑, 일, 이 세 가지 기질 사이의 우선순위에 변화가 온다. 엘킨드는, 현명한 사회라면, ‘중학교 1학년 학력부진 현상’이 뒤따르는 중 1과정을 아예 없애고 청소년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할 거라고 주장한다. 성인기에 들어서면 세 기질은 완전히 나뉘고 “놀이는 이제 주로 일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오락 수단이 된다.”

엘킨드는 장난감의 오?남용을 비판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긍정적인 자기평가를 얻기 위해 장난감을 이용하게 되면 뜻하지 않았던 결과가 생긴다. 바로 순응주의가 고양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그의 형제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신경 썼지만 원하는 것에는 무심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요즘은 자기 자녀의 자아존중감이 다칠까 봐 우려하는 부모들의 걱정이 지나치고 장난감의 과대광고도 심해져 아이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해내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공공장소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를 혼내는 이에게 ‘우리 아이 기죽이지 말라’며 부모가 반발하는 것은 오히려 자녀의 자아존중감을 해치는 행위다.

장난감을 다룬 대목에서 바비 인형의 파워는 내 상상력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바비는 매년 약 백 벌 정도의 새 옷을 선보이며 패션업계를 주도하는 패션계의 리더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그녀의 옷을 디자인한다.

“1959년부터 지금까지 바비의 옷을 만드는 데 들어간 옷감은 무려 9천6백만 미터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장난감 제조업체인 마텔 사는 거대한 양의 옷감 소비자가 되었고 미국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여성복’ 제조업체에 등극했다.”

엘킨드는 영상매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하지만 “화면 역시 우리 시대의 산물이자 주위 환경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에 적응해야 한다”며 다소 신중하게 다가선다. “취학 전 아동과 학령기 아동은 컴퓨터를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오락적 기능뿐 아니라 교육적 기능까지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BBC가 제작한 유아용 텔레비전 프로그램 <텔레토비>에 대한 평가절하가 예고하듯이 엘킨드는 틈나는 대로 화면매체와 영상물, 그리고 컴퓨터 게임의 폐해를 지적한다. 예컨대 9개월에서 24개월 사이의 유아용으로 출시된 컴퓨터 프로그램 <점프스타트 베이비>는 딸랑이만도 못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유아들이 배우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너 자신의 학습 능력을 믿지 말고 부모나 상업적인 장치를 통해 배우라!”(133-134쪽)

“이 자연세계에 비하면 아이들이 비디오나 컴퓨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얕고 척박해 보일 뿐이다.”(176쪽)

“경험이 풍부하고 흥미롭고 다양할수록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다.”(186쪽)

“이 모두가 전자오락을 즐기는 동안에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다.”(220쪽)

‘완곡한 놀이론’과 ‘창조와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놀이 탐구’는 몇 가지 견해가 일치한다. 열정을 예찬하는 두 사람은 백번 지켜보느니 한번 직접 해보는 게 훨씬 낫다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나흐마노비치에 따르면, “악기 연주는 전적으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는 것이다. 올바른 연주법을 가르쳐주는 이론은 아무 소용없다. 반복 연습을 통해 자신의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또, “직접 해보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배움의 방법이다.”

엘킨드는 “배우는 사람의 요구와 흥미,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지켜보기 식(Watch Me)’ 학습이론의 핵심이라고 본다. “이 이론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할 때도 별다른 소용이 없으며 당연히 유아와 아동들에게도 전혀 효과가 없다.” 쓸모없기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식(Look Harder)’ 학습이론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점에서 창조력이 번득이는 순간, 일과 놀이는 하나가 된다.”(나흐마노비치) “아이들도 어른들도 행복하고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놀이와 사랑과 일이 통합되어야만 한다.”(엘킨드)

앞에서 보듯이 나흐마노비치는 놀이가 없다면 학습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엘킨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이들은 주로 놀이를 통해 학습한다. 그 기회를 앗아간다면 자기 창조적인 학습 경험 자체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 신체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마음의 운동까지 가능하게 해주는 게 바로 놀이가 지닌 힘 아니던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놀이 백가지』(최재용?이철수 지음, 현암사, 1999)는 우리 놀이 교범이다. 우리 놀이 백과다. 담방구, 오징어, 진도리 만도리(진돌이 만돌이) 같은 활동적이고 ‘비정규적인’ 놀이는 제외된 게 약간 아쉽다. 그런데도 ‘놀잇감’은 매우 풍부하다. 만들기, 종이접기, 그 외 여러 가지 놀이의 놀이 도구 제작법과 놀이하는 방법을 담았다. ‘학’을 접는 방식이 내가 아는 것과 아주 약간 다르다.

표지는 방패연과 실패가 절반을 차지한다. 나는 연을 제대로 날려본 적은 없다. 그래도 연날리기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우리는 길쭉한 종이에 소원을 적어 연줄 위에 살짝 붙여 미끄러져 올라가게 했다. 천천히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소원을 적은 종이는 위로 올라가 연에 닿았다.”(『놀이의 힘』 에필로그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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