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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추악함을 그린 영화 작가 김기영 <김기영 컬렉션>

썩은 생선 내장처럼 진동하는 인간들의 비린내! 김기영의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위와 같은 비유가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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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컬렉션>리뷰

인간의 추악함을 그린 영화 작가 김기영, <김기영 컬렉션>

<고려장> 나이 칠십이 되면 산봉우리에 올라가 죽는 관습이 있는 산악 마을, 하나 남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여인(주증녀)은 이 마을에 시집을 온다. 하지만 시집간 집안 자식들의 흉계로 친아들 구룡이는 절름발이가 되고 집을 나온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십 형제와 구룡이(김진규)의 갈등은 계속 이어진다.

<충녀>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술집 종업원이 된 명자는 동식(남궁원)에게 강간을 당한 후 첩이 되기를 고집한다. 경제권을 지니고 있는 동식의 본부인(전계현)으로부터 용돈을 타 쓰며 하루의 절반을 동식을 점유할 권리를 가지게 된 명자. 하지만 그녀의 집에선 계속 나쁜 일들이 벌어지며 점차 명자도 미쳐간다.

<육체의 약속> 남자들에게 계속 배반을 당하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효순(김지미)이 투옥 중 자살을 거듭 시도하자 이를 불쌍하게 여긴 교도관(박정자)은 특별 휴가를 얻어 함께 성묘를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여수로 간다. 그러던 중 그녀의 삶에 ‘희망을 주라’는 부탁을 받은 청년(이정길)은 효순에게 갑작스럽게 ‘결혼’을 제안하는데…….

<이어도> ‘이어도’라는 이름의 호텔을 짓기 위해 행사를 벌이던 직원 선우현(김정철)은 ‘이어도’라는 이름의 사용이 제주도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신문 기자 천남석(최윤석)을 만나게 된다. 선상(船上)에서 갑자기 사라진 천남석의 살인 혐의를 받게 된 선우현은 진실을 밝히겠다며 천남석의 고향인 ‘해녀섬’으로 가는데…….

<고려장>(1963) 가장 정치적인 김기영 영화!

썩은 생선 내장처럼 진동하는 인간들의 비린내!

김기영의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위와 같은 비유가 적절할 것이다. 김기영의 영화에서 ‘인간’이란 향긋함 대신 비린내만 풍기는 추악함으로 가득한 존재다. 인간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고려장>), 여자들은 공존하기보다 파멸을 향해 나아가며 (<충녀>), 남자들은 여자들을 육체적으로 농락하고 훈계하려고만 하며(<육체의 약속>), 욕망과 미신으로 가득 찬 공동체는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이어도>)

김기영의 영화들은 90년대 들어서 ‘재발견’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흥행 감독’이기도 했던 김기영은 80년대 들어서 완전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었고 괴팍하게만 느껴졌던 그의 후기작들의 독특한 개성들은 생경하게만 다가왔다. 당연하게도 그의 후기작들은 대중들로부터 유리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대중으로부터 외면되었던 그의 후기들은 비디오를 통해 영화광들로부터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곧 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하녀>는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걸작’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충녀>(1972) 붕괴되는 가족, 신경질적인 가부장제 파멸극

DVD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장 반가운 현상 중 하나는 ‘클래식’ 영화들이 복원되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디지털 포맷인 DVD는 리마스터링 과정을 통해 화질 복원이 한층 쉬워졌고 그에 따라 거의 완벽하게 원본의 색감과 화질을 되찾은 영화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공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아쉽게도 협소한 DVD 시장과 복원에 요구되는 막대한 자본 문제 때문에 국내 영화들의 완벽한 디지털 복원은 요원한 일이기는 하지만 <로보트 태권 V>의 리마스터링 버전 같은 경우는 기적적으로 필름을 발견해 비교적 훌륭하게 원본 영화를 복원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김기영 컬렉션>은 아쉽게도 그렇게 리마스터링되어 출시된 타이틀은 아니지만 일부러 상암동에 위치한 ‘영상자료원’을 찾지 않는 이상 거의 찾아보기 힘든 김기영의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다행히 그의 대표적인 <하녀>만은 디지털 복원되어 공개 후 DVD로 출시될 예정이라니 기대가 크다. 비록 대표작인 <하녀>가 빠지기는 했지만, 각기 개성이 강한 4편의 영화가 수록된 <김기영 컬렉션>은 김기영의 영화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언뜻 당대 유행하던 사극 장르에 편승한 것처럼 보이는 <고려장>은 아마도 김기영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 알레고리로 가득한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고려장’이라는 풍습에 얽힌 멜로적인 요소들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속’으로 대변되는 권력의 문제와 그로 인한 인간 사이의 파멸을 묘사한다. 이 영화에서의 어머니는 단순히 풍습에 순응하기만 하는 순종적인 고전 어머니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끝내는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을 파멸로 몬 직접적 대상뿐 아니라 그 이면의 권력까지도 붕괴시킨다. 이는 분명히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로 이어지는 좌절된 민주화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육체의 약속>(1975), 이만희의 <만추>의 김기영식 변주.

<충녀><하녀> <화녀> 등으로 이어지는 김기영의 ‘여’ 시리즈의 한 편으로 1984년에는 <육식동물>이라는 이름으로 감독 스스로에 의해서 다시 한 번 더 만들어진 바 있다. 한 남자를 점유하기 위해 1층과 2층으로 공간을 나뉘어 가진 하녀와 본부인의 무시무시한 쟁투를 다룬 <하녀><화녀> 시리즈와 달리 <충녀>는 첩과 본부인이 ‘시간’을 나누어서 남자를 점유한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는데, 김기영의 다른 ‘여’ 시리즈처럼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강력한 여성 둘이 대립하고 무력한 남성이 등장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김기영 영화의 중요한 여배우 중이라고 할 수 있는 윤여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후반부 ‘괴연(怪演)’을 펼친다. 특히 판타지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후반부의 설정들이 현재의 관점에서도 파격적이고, 이 영화에서 ‘아기’를 묘사하는 방식은 영화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충격적이다.

필름이 유실되어 현재는 볼 수 없는 한국 영화사의 걸작 이만희의 <만추>를 김기영 식으로 다시 만든 <육체의 약속> 역시 ‘멜로’ 장르를 온전히 자기 스타일로 다시 만들어내는 감독의 괴이한 연출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다. 줄거리만 요약하면 서정적인 영화에 가깝지만 <육체의 약속>의 관계는 통상적인 멜로적 설정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여자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남자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며, 남자 역시 여자에게 온전한 감정적인 배려를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둘의 관계는 폭력적이며 김기영 영화의 주요 코드라고 할 수 있는 ‘번식’이나 ‘욕망’ 외에는 설명되기 어려운 관계로,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영화의 제목처럼 오직 ‘육체적 관계’뿐이다. 마치 세기말의 마지막 열차를 타는 듯한 기분을 주는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관계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어도>(1977), 전통과 문명의 충돌에 대한 김기영식 우화.

이청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어도>는 ‘원작의 30%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감독의 말처럼 소설의 모티프만을 사용한 채 김기영적인 광기로 돌진하는 영화다. 외면상 남성들이 살아갈 수 없는 여자들만의 섬 속에서 죽어버린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원시적인 무속이 지배하는 사회와 ‘공해’로 대변되는 근대화가 충돌되는 현장을 감독의 스타일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괴이할 정도로 죽은 남자에게 집착하는 여자들의 심리, 공해로 대변되는 파괴되어가는 인간성 등 딱히 줄거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광기들이 영화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혼을 싹 빼놓는다. 특히 아마도 당대의 검열 시스템하에서는 볼 수 없을 듯한 후반부의 19금 장면은 보는 사람들을 얼얼하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김기영 컬렉션>의 영상 퀄리티는 최근작일수록 좋다. <이어도>의 이화시.

<김기영 컬렉션>의 영상 퀄리티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4장의 DVD 영상은 별도의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필름들을 DVD로 고스란히 옮겨놓는 정도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과거 한국 영화들의 보관 상태는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그건 김기영의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따져보면 연대적으로 최근작일수록 화질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고려장>의 경우에는 아예 원본 필름에서 20분 정도의 영상을 볼 수 없고 암전 상태로 사운드만 들리는 분분이 있고 <충녀>의 경우에는 필름에 붙박이로 붙어있는 스페인어 자막과 함께 영화를 감상해야 하며 퇴색되고 훼손된 부분이 곳곳에 존재한다. <육체의 약속>은 색이 많이 뭉개지고 필름 스크래치가 많은 편이나 앞의 두 영화에 비하면 나은 편이고 비교적 깔끔한 색감의 <이어도>가 가장 화질이 좋은 편이다.

<김기영 컬렉션>의 음향 퀄리티는 오래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정도.

음향 퀄리티 역시 논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전편 모두 원본 필름의 모노 트랙을 지원하는데, 특별히 손상된 부분이 별로 없다는 점에 감사해야 할 정도다. 옛 한국 영화의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대사 전달이 뚜렷하지 못한 부분도 있으므로 자막을 켜 놓고 감상해도 좋을 듯.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에 등장하는 박찬욱 감독(좌)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에 등장하는 봉준호 감독(우)

사망 전인 1997년에 인터뷰 중인 김기영 감독(좌)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열릴 당시(우)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김기영 감독(좌)

평생의 반려자인 부인과 함께 영화제에 참석한 김기영 감독(우)

<김기영 컬렉션>의 서플먼트만큼은 합격점에 가깝다. 일단 박스 세트 안에 별도의 안내 책자가 제공되고 있어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한 가이드 노릇을 하고 있다. 선배 감독에 대한 애정어린 후배 감독들과 평론가들이 참여한 서플먼트의 면면 역시 화려한데, <고려장>에는 영화평론가이자 김기영 감독에 관한 저서를 펴낸 이연호 평론가와 김대승 감독이, <충녀>에는 김영진 평론가와 봉준호 감독이, 또 <육체의 약속>에는 정성일 평론가가 특유의 톤으로 음성 해설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이어도>에는 김영진 평론가와 오승욱 감독이 걸쭉한 입담을 자랑한다. 그 외에도 <고려장> 디스크에는 김홍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48분)가, <충녀> 디스크에는 김기영 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된 <김기영이 김기영을 말하다>(35분)가, 마지막으로 <육체의 약속> 디스크에는 <김기영 감독 다큐멘터리>(51분)가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는 각 디스크별로 각 영화의 사진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김기영 컬렉션>

감독 : 김기영

주연 : 김진규, 주증녀, 남궁원, 윤여정, 김지미, 이화시

Spec

화면 2.3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음향 돌비 디지털모노

더빙 한국어

자막 한국어, 영어, 일본어

상영시간 110분, 115분, 105분, 111분

지역코드 DualLayer / Region All

제작년도 2008년
                                        출시일자 2008년 7월 3일

Special Features

<고려장>
- 코멘터리 이연호 영화평론가, 김대승 영화감독
-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 (48분)
- 사진자료 모음
<충녀>
- 코멘터리 김영진 영화평론가, 봉준호 영화감독
- 김기영이 김기영을 말하다 (35분)
- 사진자료 모음
<육체의 약속>
- 코멘터리 정성일 영화평론가
- 김기영 감독 다큐멘터리 (51분)
- 사진자료 모음
<이어도>
- 코멘터리 김영진 영화평론가, 오승욱 영화감독
- 사진자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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