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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의 샌드위치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무라카미 하루키
1985년, 소설이 나오던 해에 열일곱 살이었던 분홍 옷의 ‘손녀딸’은 지금 마흔이 되었다. 그녀가 의식 없는 ‘나’를 냉동시켰다 다시 살려 깨워 내, 다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엉뚱한 질문을 연달아 하고 마침내 같이 잤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멋있는 핑크빛의 투피스에 하얀 스카프를 감고 있었다. 살집이 좋은 양 귓불에는 직사각형의 금귀고리가 달려있어, 그녀의 걸음걸이에 따라 마치 등불신호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전체적으로 보아 그녀의 몸놀림은 살이 찐 것치고는 가볍게 보였다. 물론 팽팽한 속옷 혹은 또 다른 무언가로 보기 좋게 조여 매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율동적인 허리 움직임은 팽팽하고 경쾌했다.
(중략)
“어때, 샌드위치가 정말 맛있지?”
“네. 정말 맛있네요.” 하고 나는 칭찬했다.
정말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나는 소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샌드위치에 대해서도 평가가 상당히 인색한 편이지만, 그 샌드위치는 내가 나름대로 정한 맛있는 샌드위치의 기준을 가뿐하게 넘고 있었다. 빵은 신선했고, 부드러웠고, 게다가 잘 드는 청결한 칼로 자른 것이었다. 자칫하면 그냥 넘어가기 쉬운 일이지만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려면 좋은 칼을 꼭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갖추었다고 해도 칼이 나쁘면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 수 없다. 겨자도 고급이었고, 양상추도 싱싱했고, 마요네즈도 직접 만든 것이거나 그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만큼 잘 만든 샌드위치를 먹어 본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건 내 손녀가 만들었네. 자네한테 고맙다는 마음의 표시라고 하면서 말이네. 그 아이는 샌드위치를 잘 만든다고 자신 있어 하지.”라고 노박사가 말했다.
“참 맛있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지는 못할 거예요.”
두뇌 속에 집어넣은 정보를 암호화한 다음 다시 풀어내는 계산사인 ‘나’는 서른다섯의 이혼남이다. 계산사들에게 금지되어 있는 세뇌방법인 샤프링 시스템을 이용한 작업을 의뢰한 ‘노박사’의 연구실로 가 작업을 하며 ‘노박사’의 ‘손녀딸’과 만난다. ‘나’는 의식 속에 ‘노박사’가 실험을 위해 편집해 놓은, 완전히 다른 의식의 핵을 삽입해 넣은 후, 자신이 소속된 조직과는 다른, ‘기호사’들의 습격을 받고,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야미쿠로’와의 정보전쟁에 휘말려 노박사의 ‘손녀딸’과 함께 세계를 구하기 위해 도쿄의 지하와 수로를 넘나든다. 하지만 본래의 의식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료를 도둑맞아 전문가인 ‘노박사’도 손 쓸 수 없이, 30여 시간 뒤에 ‘나’의 의식은 소멸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 세계의 끝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사람들과 이별한 다음, 세계의 끝으로 의식을 떠나보낸다.
다른 의식으로 바뀌어 자아를 잃게 되는 이야기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자아를 잃고 세계의 끝으로 들어간 자가 그곳에서 벽을 넘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꿈꾸는 ‘세계의 끝’ 두 개의 이야기가 겹쳐 얽혀 있는 난해하고 실험적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위의 줄거리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나 여러 단편들, 『해변의 카프카』보다 훨씬 중요한 그의 초기작(1985년)이자, 이 소설 이후의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이나 자아에 관한 대명제를 잡아놓은 소설이다. 하루키 이후의 작품들에서 이 소설에서 세워놓은 기준과 표현, 은유들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고, 90년대의 한국작가들의 작품들도 이 소설의 형식과 주제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1997년, 파란 PC통신에서 만난 ‘하루키 소모임’에서 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닉네임을 얻게 됐다. 하루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말머리로 붙여 동호회 내의 애칭으로 삼았는데, 다들 ‘쥐’, ‘양사나이’, ‘유키’, ‘제이’, ‘와타나베’, ‘그림자’ 등의 이름을 붙였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언제든지 날렵하게 한 상 차려줄 수 있다며 『상실의 시대』의 ‘미도리’가 어울리는 것 같다고 슬그머니 우겼지만 그녀의 장점 중 하나가 어린아이처럼 얇은 허리였기 때문인지, 모두들 나에게 손녀딸을 추천했다. ‘분홍 옷을 즐겨 입고 뚱뚱하지만 얼굴이 예쁘고 요리를 잘하며 남자에게 관심 많은 노박사의 손녀딸’. 혼자 요리를 독학한 미도리에 미련이 남긴 했지만, 손녀딸 앞에 생략된 부분을 설명하느라(심지어 몇 가지는 나와 해당이 없다!) 매번 바쁘긴 했어도 손녀딸이란 닉네임을 10년 동안 사용한 걸 보면 나도 은근히 마음에 들어 했었나 보다. 그리고 이제 손녀딸은 나 스스로를 대표하는 상표가 되어버렸다.
십 년 전, 그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술을 마시며 보냈다. 다들 되는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들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줄도 모른 채 막연하게 우울해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볍게 관계를 이끌어 나가면서 느끼는 고독감을 패션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모두 하루키처럼 스파게티를 먹고 재즈를 들으면 소박한 일상을 독특하게 느끼게 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술을 마시고 마구 사랑에 빠졌다. 나 또한 친구와 연인을 죽음으로 이별한 와타나베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하고자 하는 일과 연애 등등이 고통스럽게 뒤틀린 이십 대를 보내며, 하루키의 글들을 읽어대는 것으로 살아가는 허무함과 뒤따르는 절망감을 정당화했었다. 존재 이유는 있지만 찾기 힘들고 자아 찾기는 불가능하며 또한 허무하다는 그의 글들에 동감하면서. 어쨌든 나와 주변인들의 90년대 후반은 그랬었다. 크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신해줄 수 없는 아픔과 소외감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아나가야만 했으니까.
하루키의 소설에는 참 많은 음식들이 나온다. 두부부터 술안주, 친구와 사먹는 피자와 백화점 도시락, 스파게티나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일본식 반찬들까지. 재즈 카페를 운영하고 한때 부인 대신 가사일을 책임지는 일도 맡았던 터라 그는 음식에 관해 언급할 때 만드는 과정과 더불어 스스로가 생각하는 ‘잘 만든 요리’에 관한 의견을 넣기도 한다. 하루키와 요리는 많은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고,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내용이었지만 『내 부엌으로 하루키가 걸어 들어 왔다』라는 책이 일본에서 제작되고, 국내에도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 안에 들어있는 맛있는 음식들에 대해 궁금해 하고 먹어보고 싶어 한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도 수많은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 미소 된장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소시지를 구워 위 확장증인 도서관 사서와 나눠 먹거나 ‘손녀딸’과 ‘나’가 같이 사먹는 치즈 버거, 그리고 의식이 소멸되기 전에 도서관 그녀와 함께 먹는 무시무시한 양의 이탈리아 요리들, 그리고 맥주.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요리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손녀딸’이 ‘노박사’를 도와 브레인 워시를 하는 ‘나’를 위해 만든 샌드위치다. 손녀딸은 다른 요리도 곧잘 하지만 샌드위치만큼은 누구보다 잘 만드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자르기 위해서는 아주 잘 드는 칼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1988년 작 『댄스 댄스 댄스』의 샌드위치를 아주 잘 만드는 외팔이 시인, 딕 노스의 입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재료의 신선함과 맛을 내기 위한 비율, 게다가 잘 드는 칼을 이용해 말끔하게 썰어내기까지 해야 하는 샌드위치는 결코, 쉬운 요리가 아니다. 쉽게 쓱쓱 만들어낼 순 있지만 제 맛을 내긴 힘들며 내용물이 흐트러지지 않고 빵의 가장자리가 회처럼 깨끗이 잘려야 완벽에 가까운 샌드위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1985년, 소설이 나오던 해에 열일곱 살이었던 분홍 옷의 ‘손녀딸’은 지금 마흔이 되었다. 그녀가 의식 없는 ‘나’를 냉동시켰다 다시 살려 깨워 내, 다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엉뚱한 질문을 연달아 하고 마침내 같이 잤는지, 알 수 없다. 책에서 그녀를 만난 지 십 년이 지난, 서른 중반의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미리 절망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관계(특히 남녀관계)를 잘 해내는 것이 자아를 찾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홍색 옷은 절대 입지 않고 남자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며 사람들을 위해 꽤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곤 한다. 물론 잘 드는 칼로 단칼에 잘라서.
그리고 ‘내가 들어 있는’ 이 복잡하고 매력적인 소설을 가끔씩 꺼내어보며 두 가지 세상을 모두 꿈꾼다. 남기고 싶은 지식과 마음을 기호화시켜 두뇌에 집어넣고 세뇌된 채로 살든가, 자아와 감정, 마음을 잃고 일각수가 지키는 벽 안에서 나오지 않고 그냥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기만 하며 살든가. 선택해봤으면 좋겠다고. 사실은, 그 두 세계에 모두 발을 걸치고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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