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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5천 미터 상공에서도 삶은 존재한다 - 『토성 맨션』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공간이 어떻게 바뀌든 삶은 존재한다. 이와오카 히사에의 『토성 맨션』의 사람들은 모두 우주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공간이 어떻게 바뀌든 삶은 존재한다. 이와오카 히사에의 『토성 맨션』의 사람들은 모두 우주에서 살고 있다. 지구 전체가 환경 보호 구역으로 설정되어 사람이 살지 못하고, 인간은 3만5천 미터 상공 위에 만들어진 링 모양의 인공 구조물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사회 구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훨씬 억압적이다. 구조물은 상중하 세 개 층으로 나뉘어 있고, 중간층은 공유 지역이지만 상층과 하층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하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릴 때 중간층에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곳에 머무를 수는 없다. 상층은커녕 중간층에 머무르는 직업을 선택할 수도 없다. 미래의 세계는 엄격한 계급 사회다.
그렇다고 해서 지독한 폭력이나 억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층의 식물을 정원에서 뽑아내면 바로 경찰이 달려오는 정도의 경찰 사회다. 아마도 그건,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에너지나 자원 등도 제한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취해진 사회제도라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특별한 능력을 가지거나 배경이 없는 사람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철저하게 폭력적이라 해도,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그 제도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지도자가 그런 사회를 제안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계급사회가 정착되었는지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주로 하층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서 그런 사회 제도가 삶에 끼치는 영향을 다소 쓸쓸하게 느낄 수 있다.
『토성 맨션』의 주인공은 막 학교를 졸업하고 우주에 나가 거대한 구조물의 창을 닦아주는 일을 하게 된 미쓰라는 소년, 혹은 청년이다. 미쓰의 아버지도 같은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을 하다가 사라져버렸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미쓰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간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하고, 아버지가 사라진 곳의 창을 닦게 되었을 때 미쓰는 알게 된다. 결코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었음을. 또한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구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라도 찾아갈 만큼 매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마음도 알게 된다. 아버지를 이해하면서 어른의 길로 한 걸음 진입한 미쓰는 하층민으로서, 자신의 삶을 견고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
미쓰처럼, 미쓰의 주변 사람들도 나름대로 진지하고 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때로는 심술궂기도 하고, 때로는 폭력도 난무하지만 그들에게는 각자의 가치관이 있다. 노동으로 살아가는 하층민에게도, 그들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거칠고 몽매해 보여도, 그들의 일상은 유쾌하고 정겹다. 슬프면서도 따뜻하다. 일본에는 시타마치(下町)라는 것이 있다. 중세 시대 봉건 영주들의 성이 있으면, 그 안에는 어느 정도 권력이 있거나 직위가 있는 사람들만이 살 수 있었다. 성 아래의 마을에는 별 볼 일 없는 평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마을을 시타마치라고 불렀다. 평민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마을이자 거리. 시타마치에는 평민들이 일하는 집은 물론 소규모 공장과 가게들이 어우러져 복잡하면서도 활기찬 기운을 자아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의 배경과 정서가 딱 시타마치의 그것이었다.
『토성 맨션』의 정서 역시 그렇다. 크게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지만 그들은 결코 기죽지 않는다. 사는 것은 힘들지만, 고뇌에 파묻혀 음울하게 떠돌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 깊이 뿌리를 박고, 주변 사람들과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이지만, 『토성 맨션』은 거창한 미래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이 사는 삶의 모양은 크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그것이 더 흥미롭다. 우리와는 다른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희로애락은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아니 똑같다. 창을 닦는 첨단 로봇을 만들려고 아무리 연구를 해도, 경험을 쌓은 인간이 하는 것만큼의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행동을, 이론과 논리만으로 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토성 맨션』은 우리 모두 알고 있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인간의 감정과 인간관계를 따스하게 그려낸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아니, 사실은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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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오지은> 역7,200원(10% + 5%)
지상 35,000미터에서 소년이 성장을 시작한다! 지구 전체가 환경 보호 구역으로 설정되어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된 시대.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5,000미터 상공에 토성의 고리처럼 또 있는 구조물이다. 창문닦이들은 의뢰를 받아 이 구조물의 외벽 창을 닦는 일을 한다. 사라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구조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