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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니즈 블록버스터 - <연의 황후>
결과적으로 <연의 황후>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물론 광활한 대륙을 충분히 활용한 아름다운 촬영과 여전히 호쾌한 액션 시퀀스들의 존재가 이 영화의 가치를 많이 올려놓기는 한다.
차이니즈 블록버스터, <연의 황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는 조나라와 3대에 걸쳐 전쟁 중이다. 전투 중 치명상을 입은 황제는 용맹하고 충성심 깊은 대장군 설호(견자단)에게 연나라와 공주 연비아(진혜림)를 맡기려 한다. 하지만 황제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우바(곽소동)가 황제를 살해하여 엉겁결에 연비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황제로서 필수적인 무사 수행을 받게 된 연비아는 어느 날, 우바가 보낸 자객들에게 쫓기게 되고 의사인 난천(여명)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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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전 중국 무협 영화의 팬들이나 제작진에게 ‘중국 대륙’은 일종의 판타지였다. 홍콩 반환 이전에는 이데올로기의 차이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의 촬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광활한 대륙이 스크린 안에서는 그저 답답한 스튜디오나 ‘한국’이나 ‘일본’을 ‘중국’이라고 가정한 채 표현되고는 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고 관객들 역시 바뀌었다. 2000년에 개봉된 이안의 <와호장룡> 이후 꿈으로만 여겼던 대륙에서의 무협 활극이 가능해진 것이다. 더구나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 관계로 더 많은 중국산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졌는데, 오우삼이 오랜만에 선보인 신작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 영화는 2부작 중 1부다)이 순항 중이고, 상반기에는 진가신의 <명장>과 이인항의 <삼국지: 용의 부활> 그리고 할리우드 프로젝트였던 <포비든 킹덤>이 있었다. 이런 ‘중국산 블록버스터’들이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개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중국 대륙에서 이 영화들은 흥행이 늘 보장된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복제물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일상화된 중국인들에게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당연히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영화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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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황후>의 원제는 <江山美人>으로, 이 영화의 연출자인 정소동은 올드팬들에게는 <천녀유혼> 시리즈의 연출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장예모의 <영웅>과 <연인> 그리고 <황후화>로 이어지는 영화들의 무술감독으로서 우아한 와이어 액션 안무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의 실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비교적 역사적 고증에서 자유로운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연의 황후>는 정소동이라는 당대 최고 수준의 무술 안무가와 견자단이라는 역시 최고의 무술 배우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어 일견 무협 영화로서의 면면이 두드러져 보이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무협이 가미된 멜러 드라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에서 파악되는 것처럼 여성인 연비아이며, 그녀를 사이에 두고 은둔 무사인 난천과 과묵하고 충직한 설호가 느슨한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이들 바깥에 존재하는 갈등인 조나라와의 전투와 쿠데타 세력과의 갈등이 추가되면서 영화는 전쟁 무협의 요소가 섞여들어 가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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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영화의 연출자인 정소동의 전작이 그러했듯 연비아와 난천의 멜러 라인은 상영 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선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급습을 받아 부상을 입은 연비아는 난천의 치료를 받으며 본의 아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장난스러운 연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전반부에서 진행되던 이야기를 정지시켜 놓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물론 둘이 같이 열기구를 타는 장면처럼 낭만적으로 표현된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 멜러 라인이 전반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정소동 감독은 전쟁이 지속되는 지옥 같은 현실과 두 연인이 보내는 무릉도원을 대비시키려는 의도로 영화를 구성한 것으로 보이나 서로의 세계가 별도의 간섭 없이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전체적인 영화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주인공인 연비아라는 인물에만 집중해서 보면 이 캐릭터는 2000년 전 인물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현대적인 여성으로,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려는 능동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연의 황후>는 외양상으로는 훨씬 거친 진가신의 <명장>에서 방청운(이연걸)과 서정뢰의 불륜 관계가 담고 있는 비극적인 멜러 라인이나 풍소강의 <야연>이나 장예모의 <황후화>에서 만날 수 있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들에 비하면 깊이가 얕은 것 역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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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멜러 라인은 <연의 황후>가 가질 수 있었던 다른 장점 즉, 정소동 특유의 경이로운 무술 안무조차도 그리 두드러지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데, 아쉽게도 <연의 황후>에는 대결을 향해 벼랑까지 달려가 버리는 <생사결>이나 <천녀유혼> 같은 초기작에서 선보였던, 리듬감 있는 액션 안무를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하늘을 나르며 급습해 오는 자객들의 시퀀스나 영화 후반부에서 견자단이 펼치는 1대 다수의 액션 시퀀스 등 강렬하게 표현될 수 있는 시퀀스들이 묻혀버린 듯하다. 또 상영 시간 내내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스코어들은 관객들의 감정을 조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거슬릴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연의 황후>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정소동이라는 인물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연출자이고 그런 장점을 충분히 살렸을 경우 꽤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연의 황후>는 정소동의 연출이 지닌 단점들 때문에 그런 장점들도 잘 보이지 않는 편이다. 물론 광활한 대륙을 충분히 활용한 아름다운 촬영과 여전히 호쾌한 액션 시퀀스들의 존재가 이 영화의 가치를 많이 올려놓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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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으로 출시된 <연의 황후> DVD의 영상 퀄리티는 최신작답게 깔끔한 편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자연미를 많이 내세우는 편인데 그에 따라 푸르른 나뭇잎의 색감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편이다. 최근의 무협 영화치고는 밝고 경쾌한 느낌의 영상인데, 무늬가 화려한 고대의 갑옷이나 얼굴들의 표현 역시 별 무리가 없는 편이다. 조명이 많이 쓰인 듯 다소 평면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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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와 돌비 디지털 포맷을 모두 지원하는 DVD의 음향 표현력 역시 뛰어난 편이다. 특히 금속 무기들이 충돌할 때 자아내는 마찰음의 표현들이 인상적이고 무기들이 신체를 관통할 때 나는 음향 효과음 역시 잘 표현되어 전쟁 장면에서 생생함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 주관적으로는 음악이 좀 과도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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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먼트는 매우 단촐한 편이다. 메이킹 필름(12분 53초)은 영화 촬영 장면을 담고 있는 것으로, 무척이나 고단해 보이는 촬영 현장의 여러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 메이킹 필름이 일정한 형식을 지니지 않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쉬운데, 메이킹 필름 외에는 극장용 예고편만이 DVD에 수록된 서플먼트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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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동>,<진혜림>,<여명>,<견자단>4,400원(33%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