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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이어주는 음악의 힘 <어거스트 러쉬>
촉망받는 첼리스트 라일라(케리 러셀)와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루이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각자 음악을 연주하던 중 뭔지 모를 감정에 이끌려 하룻밤의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운명을 이어주는 음악의 힘, <어거스트 러쉬>
촉망받는 첼리스트 라일라(케리 러셀)와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루이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각자 음악을 연주하던 중 뭔지 모를 감정에 이끌려 하룻밤의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하지만 서로를 운명적인 사랑으로 여겼으면서도 헤어져,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에서 음악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두 사람.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인 에반(프레디 하이모어)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한편 딸의 성공에 눈이 먼 라일라의 아버지의 거짓말로 인해 고아원에서 살아가는 에반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반드시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뉴욕을 찾은 에반. 에반은 거리의 아이들의 대장이자 아이들을 착취하는 위저드(로빈 윌리엄스)를 만나 ‘어거스트 러쉬’라는 이름을 얻고 자신의 음악적 천재성에 눈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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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라비앙 로즈> <칼라스 포에버> <말할 수 없는 비밀> <비투스> <아임 낫 데어> 등 유난히 음악 영화가 많이 개봉한 작년과 올해의 극장가에서도 약 200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큰 성공을 거둔 <어거스트 러쉬>는 ‘음악’이라는 키워드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을 넘어 영화적 논리를 만들어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타의 할리우드 상업 영화들이 대부분 이야기 자체의 상식적인 논리 구조를 우선하는 데 비해 <어거스트 러쉬>는 ‘운명’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믿음과 ‘음악’이라는 요소를 결합시켜 특유의 영화적 논리를 밀고 나간다. 가령 ‘뮤즈의 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에반이 ‘부모와의 만남’에 대한 확신은 ‘믿으면 이해할 수 있다’는 중세적 종교 신념에 비견될 수 있을만한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이런 ‘막연한 믿음이 과현 실현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영화의 중심이 쏠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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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관계의 초월성은 라일라와 루이스의 관계에서도 보이는데, 에반의 부모이기도 한 이들은 서로 자신의 공연장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서로를 갈망하며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캐릭터들 간의 운명적 힘과 불가사의한 간극은 영화 속에서 음악이라는 요소로 채워진다. 이렇게 <어거스트 러쉬>는 다양한 ‘음악’으로 메워진 영화다. 더구나 줄리어드 출신의 엘리트 클래식 첼로 연주자인 라일라, 록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의 보컬리스트 루이스, 또 거리의 음악가에서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거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곡 작곡과 지휘에 이르는 에반이 거치는 거대한 음악적 여정 등 이 영화는 도저히 ‘음악’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말하자면 <어거스트 러쉬>는 음악 동화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에반/어거스트 러쉬는 가장 뛰어난 아역 연기자 중 하나인 프레디 하이모어의 뛰어난 연기력 위에 세워져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 소년은 간절히 어머니를 원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현대판 성자와 같은 인물이다. 소년은 상당히 불분명한 확신 하나를 가지고 세상에 나오고 그로 인해 고난을 겪지만 의연하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의 현대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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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양극화가 지배하던 산업 혁명 시대의 런던을 살아가던 소년 올리버가 장의사에 팔려나갔다가 도둑 패거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에반은 소년, 소녀들로 구성된, 착취당하는 거리의 음악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 또 『올리버 트위스트』의 소년 도둑떼의 두목 패긴은 <어거스트 러쉬>에서는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하는 혼돈스러운 인물 위저드로 변형·계승되어 있다. 물론 『올리버 트위스트』의 주인공인 올리버가 순수함을 제외하면 별다른 생존 수단이 없는 데 비하면 <어거스트 러쉬>의 에반은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사실은 특별한 신분을 지니고 있다는 점까지 올리버 트위스트와 어거스트 러쉬는 닮은꼴이며 두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순수한 영혼을 지닌 소년이 거친 도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게 된다는 성장담이다. 물론 『올리버 트위스트』에 반영된 당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어거스트 러쉬>에는 없다. 대신 <어거스트 러쉬>에는 운명적인 인연을 이어주는 음악과 몽환적인 영상이 그 빈자리를 메운다. 말하자면 『올리버 트위스트』가 리얼리즘 소설이었다면 <어거스트 러쉬>는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판타지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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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1989)<아버지의 이름으로>(1993)의 짐 쉐리단 감독의 딸이자 아버지의 연출작 <천사의 아이들>(2002)의 각본가 그리고 고국 아일랜드에서 자신의 연출작을 발표한 바 있는 커스틴 쉐리단은 아일랜드 출신다운 풍부한 감성을 극대화해 <어거스트 러쉬>를 연출했다. 문제는 이 영화의 이런 감성적인 연출이 다소 지나쳐 보인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인물들로부터 ‘진짜’라는 감정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생생하기보다는 어디까지나 동화 속의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소년의 천재적인 능력이 감탄하기는 하지만, 소년의 인간적인 갈등이나 고뇌에 동감하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세 가족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올림푸스산 위에 살고 있는 ‘음악의 신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런 약점은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의 반응에서 보듯 뛰어난 음악적 장면들을 통해 어느 정도 상쇄되기도 하다. 미국 개봉 당시 썰렁했던 평론가들의 평가와 달리,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com의 평균 평점 7.5라는 이 영화에 대한 후한 평가는 <타잔><나쁜 녀석들>에서 뛰어난 음악 감각을 선보인 바 있는 마크 맨시나가 담당한 이 영화 속 음악에 상당히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적어도 어거스트 러쉬가 기타를 두드리며 천재성을 표현하는 장면만큼은 인상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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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구성된 <어거스트 러쉬> DVD의 영상 퀄리티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최신작이라고 보기에는 필름 입자가 다소 거칠게 표현되는 편이다. 특히 어두운 장면에서는 필름 입자의 거친 질감이 더 드러나 보인다. 이는 2.35: 1 화면비의 이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아나몰픽 렌즈를 사용한 촬영 방식 대신 국내에서 시네마스코프 사이즈 화면비의 영화를 찍을 때 많이 이용되는 슈퍼 35mm 필름으로 촬영된 것에도 어느 정도의 연유가 있는 듯하다. 이런 촬영 방식으로 촬영한 필름의 경우에는 촬영 당시부터 아나몰픽 렌즈를 사용하는 방식에 비해 화질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이유는 이 영화의 제작비 자체가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저예산에 속하는 3,000만 불 정도라는 점도 작용했을 듯 싶다. 물론 이런 기준은 어디까지나 할리우드의 레퍼런스 급 타이틀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고, 기본 이상의 해상도와 표현력은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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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불만스러운 음향 부분에 비해 DTS와 돌비 디지털 포맷을 모두 지원하는 음향은 한층 만족스럽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 에반이 음악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위의 생활 음들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직접 부른 록 넘버들은 하루 동안 녹음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구현된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공연 장면의 표현력 역시 훌륭한 편이다. 공연장의 현장감을 좀 더 잘 살리는 사운드 디자인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오케스트라 장면의 경우에는 인물들 사이를 이어주는 느낌이 더 강한 편이라 이런 사운드 디자인 역시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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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먼트는 너무 단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감독 및 배우들의 인터뷰와 촬영 과정이 담겨 있는‘리듬을 따라’(18분 08초)라는 제목의 메이킹 필름과 ‘예고편’이 전부다. 다행히 메이킹 필름에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프레디 하이모어, 로빈 윌리엄스,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케리 러셀 등 주요 배우들의 인터뷰와 영화 속에 사용된 음악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아쉬울 서플먼트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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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틴 쉐리단>,<프레디 하이모어>,<조나단 마이어스>,<케리 러셀>,<로빈 윌리엄스>9,900원(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