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U턴 현상으로 살아나는 일본 경제
전 세계 제조업체들이 정부의 규제, 고(高)임금, 친디아라는 신흥 시장 개척 등을 이유로 본국을 떠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간판급 기업들은 오히려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U턴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 : Wall Street Journal)>은 2007년 6월 12일 자 신문에서 신흥시장 개척과 저임금에 끌려 중국, 중남미 등으로 앞다투어 해외진출을 추진해 온 일본 제조업체들이 최근 일본 본토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지금껏 일본보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더 많이 팔았던 도요타(Toyota)는 최근 3년간 북미에 비해 일본에 3배나 많은 투자를 했고, 혼다(Honda)자동차 역시 거의 30년 만에 일본에 첫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샤프(Sharp)는 일본에 액정디스플레이 공장 건립을 새로 추진 중이며, 캐논(Canon) 역시 해외 생산품이 2006년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9%를 기록해 2004년의 42%에서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통해 일본 기업의 U턴 현상을 짚어보겠습니다. 일본 기업은 2006년 총 1,782건의 공장건립을 등록했습니다. 이 같은 수치는 4년 전 844건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14년 만에 가장 많은 편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 기업의 해외등록 건수는 2006년 182개로 4년 전 434개의 반 토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세계적 명성을 갖춘 일본 기업이 갑자기 왜 해외보다는 국내로 눈길을 돌릴까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일본에 공장을 세우는 것이 일본 내 숙련노동자를 활용해 첨단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제조업체들이 일본 공장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가 숙련 노동인력이며, 이는 일본 공장이 갖춘 최대 장점 중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두 번째는 해외시장 진출을 줄이면 일본이 보유한 첨단기술의 유출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가격경쟁력과 품질개선 노력을 주무기로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등 해외에 공장을 세울 경우 첨단기술을 고스란히 노출시킬 위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 샤프는 평판TV를 중국과 멕시코 등 전 세계 공장 다섯 군데에서 만들어내지만 핵심 부품인 LCD 패널만은 일본 공장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근로자 임금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일본은 거품붕괴 뒤 10년 불황과 구조조정을 거치며 노동시장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에 따라 10년 전 5명당 1명꼴이던 비정규직이 지금은 3명당 1명꼴로 급증했고, 제조업 생산직노동자의 시간당 임금도 2005년 21.76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7.3% 감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수도권지역에 대해서도 투자제한을 다 풀어주는 등 철저한 기업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규제 모델로 삼은 ‘대규모 회사의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도 지난 2002년 기업경쟁력을 저해시킨다며 철폐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대기업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를 선보이고, 국내투자를 늘리는 일본 기업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고 사업여건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종합하자면 일본 내 제조환경이 개선되고 경쟁력 향상을 도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데에는 결국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U턴 현상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값싼 노동력을 찾아 글로벌 아웃소싱에 나섰던 선진국 기업들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일본은 어떻게 고령자를 성장동력으로 만들었을까?인구 고령화가 세계적 현상이 되면서 고령자들의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령자를 귀찮은 존재로 취급해 푸대접을 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근 고령자를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는 훌륭한 나라가 있어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은 2006년 4월 ‘고령자고용안정법’을 실시해 고령화 인구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서는 종업원의 정년을 기존의 60세에서 65세까지로 연장하도록 의무화하는 한편 기업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계속 고용(재고용) 등 3가지 중에서 반드시 한 가지를 도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70을 바라보는 고령자가 ‘생생한’ 20~30대처럼 빠릿빠릿하게 일을 하거나 신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은 나이가 많지만 풍부한 경륜을 갖춘 고령자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시아의 전통적인 경로사상(敬老思想)을 적극 활용한 현명한 결정입니다.
사실 일본 기업은 오래전부터 직원의 고용안정을 위한 제도를 실시해 왔습니다. 일본 후생 노동성에 따르면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 약 1만 2,000개 업체 중 96%가 이미 고용안정제도를 도입한 상태라고 합니다. 고용안정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에는 고용보험으로부터 고령자 고용계속급부금이 지원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정년 전 임금의 약 70%를 지급하면서도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평균 40%의 임금삭감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최강인 도요타자동차입니다. 도요타자동차는 고용안정제도를 통해 2006년 한 해 정년 대상자 중 890명을 재고용하였습니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한 기업도 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 이온(AEON)과 일본 IBM은 정년을 65세로 연장했고, 일본 맥도널드는 아예 정년을 폐지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2007년부터 기업의 70세 정년제도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이 거의 90세에 육박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새 고용제도 확대를 통해 안정적인 고용환경을 유지해 나갈 방침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노령자를 ‘자르려고’ 요리조리 머리를 쓰고 있는데, 왜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은 오히려 고령자를 적극 활용할까요? 일본이 이처럼 고용제도에 변화를 가져온 표면적 이유는, 2007년부터 정년이 본격화되는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에 출생한 약 680만 명)의 대량퇴직(약 214만 명)으로 인한 인력부족이 기업 생산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요컨대 대거 퇴직에 따른 기업 생산성 공백과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어로 ‘뭉치, 덩어리’를 뜻하는 단카이는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의 소설 『단카이 세대』(1976년)에서 유래된 표현이며, 단카이세대는 1948년을 전후해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960~7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고도성장기에 기업에 입사해 지금은 장년층으로 일본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2007년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줄잡아도 약 7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한때 일본 사회를 주도하였으나 지금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된 늙은 남편을 일컫는 ‘젖은 낙엽’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고, 일본의 주부들은 ‘은퇴 남편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정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왔던 가부장적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여 집에 들어앉게 되면서 일본 주부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카이 세대를 암울한 계층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비록 은퇴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가정과 수입이 있어 향후 일본 소비와 투자를 이끌어갈 계층이니까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단카이 세대의 ‘쓰고(Spend) 즐기고(Enjoy) 돈을 굴리는(Run Money)’ 이른바 SER 시장을 잡으려는 여행사와 유통업체, 금융회사 간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합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사회공헌 역할강화’라는 인식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일본은 공무원과 기업 인력 모두 이른바 적정인력을 약 25% 초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위적인 인력감축을 실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25%에 달하는 ‘잉여인력’으로 기업 생산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이들의 생활안정과 소비시장 확대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공헌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제일 목표는 이익추구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수치상의 이익보다 일본 특유의 정서인 ‘와(和)’를 더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단카이 세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주로 1947~49년 태어났으며 1960~7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냈다. 2007년부터 이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며, 일본 사회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2007년 문제’라고까지 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란 말은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사카이야 다이치의 소설 『단카이 세대』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