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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슈퍼히어로만화의 등장 - 『트레이스』
『트레이스』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들과 싸우는 악당들도 등장한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단골 주제인, 정체성 문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트레이스』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스티 캣의 『트레이스』는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만화다. 한국형 히어로만화. 아랍에서도 슈퍼히어로 만화가 나오는 판이니, 이제야 『트레이스』가 나온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트레이스』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들과 싸우는 악당들도 등장한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단골 주제인, 정체성 문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트레이스』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국적’이란 것은 단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한국의 정서와 가치관을 부여한 슈퍼히어로 만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은 슈퍼히어로이지만, 어디에서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슈퍼히어로의 정체성 그 자체가 변한다.
『트레이스』의 설정은 <엑스맨> 그리고 <히어로즈>와 유사한 점이 있다.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다수가 동시에 등장하고, 이면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트레이스』만의 독특한 점도 있다. 『트레이스』의 설정은 ‘트레이스’라고 불리는 초능력자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트러블’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다. 30년 전, 갑자기 트러블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인간을 살육하기 시작하자 역시 난데없이 트레이스들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트러블이 무엇인지는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인간의 변형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존재인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트레이스가 인간의 변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태어나면서 트레이스가 되는 경우도 있고, 성인이 되어서 트레이스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트레이스』를 보면서 계속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트러블과 트레이스의 정체다. 왜 트러블이 우리들의 세계에 등장한 것일까? 그렇다면 트레이스는 트러블의 존재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일단 1, 2권에서는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트러블과 트레이스의 정체가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따라서 『트레이스』라는 작품의 가치가 결정될 것은 분명하다. 슈피히어로 만화는 단지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보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는다. 슈퍼히어로가 어떤 탄생신화를 지니고 있고, 어떻게 싸워나가는지를 결정하는 ‘세계관’이 가장 중요하다. 초능력은 단지 싸움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트러블이 무엇인지, 트레이스가 무엇인지.
웹툰으로 연재되었다가 최근 1, 2권이 출간된 『트레이스』에는 1부와 2부의 일부가 실려 있다. 1부는 트레이스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사강권이 성장하는 이야기다. 사강권은 동년배인 한태은과 그녀의 아버지에게 발견되어 함께 살게 된다. 사강권은 자신이 트레이스라는 것을 숨기려 한다. 트레이스라는 것이 밝혀지면, 트레이스들만 다니는 교육기관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버림받기 싫었던 사강권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한다. 처음으로 ‘가족’을 느낀 사강권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지키려 한다. 학원 코믹액션물의 요소를 끌어들여 사강권과 한태은의 미묘한 감정을 그린 1부는, 그다지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를 지켜주려고 했다, 는 설정은 장르물의 일반적인 공식이다. 『트레이스』 1부는 익숙한 설정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지는 못했다.
반면 2부의 설정은 흥미롭다. 모든 것이 나름 완벽하다고 생각하던 가장이 트레이스인 것을 알게 된다. 직장도, 가족도 모두 바뀌어버린다. 보통의 슈퍼히어로만화라면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보여준다. <엑스맨>의 경우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능력이 정해진다. <히어로즈>는 『트레이스』와 비슷하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언젠가부터 깨닫게 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능력을 알게 된 후에는, 그 개인에게 모든 결정권이 주어진다. 조직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국가 전체를 장악한 정도는 아니다. 반면 『트레이스』는 좀 더 가혹하다. 국가에는 이미 트레이스를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존재하고, 김윤성은 무조건 따라가야만 한다. 변이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외부의 힘에 마구 끌려가며 흐트러지는 것이다. 아직 『트레이스』의 2부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른다. 웹툰에서는 이미 2부가 끝났지만, 아직 책으로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일단은 다른 트레이스들을 만나고 일종의 팀을 이루게 된다는 것 정도만 이야기하자.
『트레이스』는 <엑스맨>과 <히어로즈>와 비슷하면서도,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전진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적 슈퍼히어로만화의 당연한 장점일 것이다. 또한 『트레이스』의 액션 장면은 멋지다. 각각 독특한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슈퍼히어로 만화의 가장 재미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컬러로 그려진 『트레이스』는 미국만화나 일본만화와는 다른 자신만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웹툰을 책으로 이식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이 너무 작고 컷 연결이 식상하다. 스크롤로 내려 볼 때의 감흥도 살아나지 않는다. 책으로 보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고, 한편으론 지루하기도 하다. 또한 지나치게 주제는 심각하고, 유머 대신에 개그에 의존하는 덕에 무거워진다는 점도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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