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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의외다

그래서 나는 ‘뜻밖에’나 ‘의외로’ 같은 단어가 좋다. 때때로 친밀감마저 들곤 한다. 그럴 것 같은 것이 안 그럴 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닐 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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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의외의 것들로 북적인다.

나이 마흔에, 이미 오 남매를 둔 한 아낙이 있었다. 한데 그녀, 언젠가부터 속이 좋질 않았다. 혹시 병일까? 별의별 처방을 다 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새 생명의 기척이었다.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그녀, 알 거 다 알 나이인 큰아들에게 민망했고,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아기는 고집스럽게 버텨냈고, 온전한 몸으로 세상을 움켜쥘 수 있었다. 척박했을 게 분명한 그곳에서 운 좋게도 살아남은 그 새 생명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뜻밖에’나 ‘의외로’ 같은 단어가 좋다. 때때로 친밀감마저 들곤 한다. 그럴 것 같은 것이 안 그럴 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닐 때, 재미있다.

책을 읽을 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읽어 ‘치우기'와 읽어 ‘버리기’

길이가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서둘러서 읽는다. 다만 끝을 보려는 것이다. 그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읽은 책은 ‘읽기만 한 책’으로 허무함이 ‘막대하게’ 남겨진다. 다음이 읽어 ‘두기’

언젠가는 써먹고 아는 체하기 위한, 일종의 저축 개념의 책 읽기. 허영심에, 혹은 보상을 바라고 읽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옵션으로 얼마간의 죄의식이 따라 붙는다.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만큼은 아니지만, 어쩐지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는, 딱 그만큼의 죄의식 말이다.

마지막으로 읽어 ‘내기’

과정이다, 해내는 과정. 착실하게 공을 들이고, 시간도 아끼지 않고 투자한다. 보약을 먹을 때, 약을 짓고 달이는 이와 더불어 먹는 이의 정성도 따지듯이 성심으로 읽는다. 영향을 받고, 변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외는 존재한다. 읽어 ‘버리기’로 시작했다가 읽어 ‘내기’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거꾸로 읽어 ‘두기’로 맘을 먹었는데 읽어 ‘치우기’로 끝이 나기도 한다. 물론 이 방법들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났을 뿐이어서 보편성 같은 것은 없다. 어쨌든.

존 스타인벡
그런 의미에서 아주 오래전에 내가 읽은 존 스타인벡은 읽어 ‘내기’에 속했다. 물론 처음엔 읽어 ‘두기’를 염두에 두고 접근했다. 세계문학 섭렵이라는 발칙한 명분이 있었다.

제일 처음은 『분노의 포도』였다. 연합고사가 끝나고 언니 집에서 두문불출하던 때로 기억한다.

1930년대 당시의 이주노동자와 빈민의 삶이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풀어져 있다. ―스타인벡은 1902년에 태어나 1968년에 죽은,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사람이다.―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나서 무척 심란했다. 도저히 읽어 ‘두기’만 하는 것으로는 그를, 그의 책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점점 더 몰두했고, 나를 이입했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아기를 사산한 로저샨이 목화농장에서 병을 얻어 굶어 죽게 생긴 한 사내를 살리기 위해 젖을 물리던 모습이었다.

『분노의 포도』를 발설한 적이 있었다. 나는 밖에서 책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으므로 그 또한 뜻밖이었다.

대학 새내기시절이었다. 내가 과에서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택한 모임은 과지 편집부였다. 활자에 대한 집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심정으로 얼떨결에 들어간 모임이 하나 더 있었으니, 문학학회였다. 의식 있는 바람직한 청년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나 할까?

첫 모임의 주제가 황석영의 『객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론 중간 즈음에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노의 포도』를 자연스럽게 언급했다는 것도. 아마도 시공을 초월한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어쩌고저쩌고 꽤 진지했을 것이다.

사실, 나의 대학 1학년과 2학년은 공포의 시기였다. 중무장한 채 사열해 있는 전경들의 앞을 지나면서는 심리적인 공포를, 일주일이 멀다 하고 날아드는 최루가스에 매운 눈물을 흘리면서는 육체적인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의 포도』의 존 스타인벡은 조금 과장을 보태 나의 팍팍했던 그 시절의 첫 단추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의 또 다른 책이 나타났다. 무려 이십 년만이다. 물론 없던 책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나와의 만남이 늦어졌을 뿐이지. 그 주인공은 『통조림공장 골목』『달콤한 목요일』. 한데 두 책을 연달아 읽는 동안, 도돌이표로 내 두개골 속을 부산히 움직인 한 문장이 있었다. ‘존 스타인벡이 이렇게 재미있는 작가였었나?’

사실 존 스타인벡, 하면 여태껏 내겐 『분노의 포도』『에덴의 동쪽』, 그리고 『불만의 겨울』 그 세 가지가 다였다. 그나마 『에덴의 동쪽』은 영화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한 탓에 지금은 활자에서 느꼈던 감정을 기억해낼 수조차 없다. 하면 남는 것은 『분노의 포도』『불만의 겨울』인데, 아무래도 『분노의 포도』가 준 충격이 가장 힘이 셌다. 하니 내가 시종일관 유쾌한―유쾌함과 가벼움은 같은 말이 아니다― 『통조림공장 골목』『달콤한 목요일』을 두고 얼마나 놀랐는지는 나 자신만이 안다. 세상의 모든 진지함과 엄숙함은 죄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그에게서 카리스마 대신 그런 유머라니.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은 만고의 진리인 셈이다. 나도 그렇다. 고작 종군기자를 지냈다는 이력과 책 두세 권에 그를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한 나의 착각이야말로 참으로 뻔뻔하다. 그러니 의외의 것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독자로서 늘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복습한 것이다.

책은 한 사내의 식료품점을 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통조림공장 골목』『달콤한 목요일』 중 어떤 책이냐는 문제는 중요하지도 않고 상관도 없다. 두 책은 한 권으로 읽힌다.

리청의 식료품점은 깔끔함에서 모범을 보인달 수는 없지만, 구색 면에서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작고 혼잡한 가게였지만, 그 하나밖에 없는 매장에서 옷이며, 신선한 것이든 통조림에 담긴 것이든 이런저런 식품이든, 술, 담배, 낚시 장비, 기계, 배, 음식, 밧줄, 모자, 돼지고기 토막 등 사는 데, 또 행복해지는 데 필요하거나 아쉬운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왜 있잖은가.

학교 앞 문구점은 조그만 가게, 가게는 조그매도 물건은 많아
간판에 간판엔 커다란 글씨, 문방구 일체 세계문구점

하는 동요.

몇 평 안 되는 공간 속에 들어찬 우주를 경험한 것은 그나 나나 매한가지인데, 나타나는 수준의 차이라니. 어디에나 예외는 있게 마련이라는 진리가 슬프다.

언제처럼 그의 이야기 안에는 질투심이 날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들 천지다.

먼저 리청이 있다. 어떤 사람인고 하니,

리청은 중국인 식료품상 이상의 존재이다. 틀림없다. 어쩌면 그는 악하게 균형이 잡힌 사람이며 선에 의해 허공에 매달린 상태를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노자(老子)의 인력 때문에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주판과 금전등록기의 원심력 때문에 노자로부터 거리를 두는 아시아의 행성인 셈이었다. 리청은 그렇게 허공에 매달린 상태에서 자전을 하며 식료품과 유령들 사이를 공전한다.

백 쉰 개의 문자로 한 사람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늘의 질서가 한 사내를 통하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어졌다. 행여 리청이 저 상태로 이야기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해도 나는 그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있다.

누가 어떤 질문을 하면, 답을 알고 싶어서 물어본다고 생각하고, 알고 싶지 않으면 절대 묻지 않으며, 따라서 알고 싶지 않으면서 물어보는 뇌를 떠올릴 수 없는 정신적 습관을 가진 닥. 그리고 질문 받는 것을 싫어하는 헤이즐. 왜냐하면 질문을 받으면 답을 찾아 자신의 마음속을 두리번거려야 하는데, 마음속을 두리번거리는 일은 혼자서 텅 빈 박물관, 그것도 분류가 되지 않은 전시물로 꽉 메워진 박물관을 배회하는 것과 같았다는 정서적 경험 때문이었다.

질문은 성가신 두려움이라는 데서 두 사람의 맥은 닿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또 하나의 의외다. 헤이즐은 닥을 우러르지만, 덕을 누리는 쪽은 닥이다. 그건 헤이즐이 어떤 것도 잊지는 않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기억을 정리한 적이 없어서였다.

닥은 오래전에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헤이즐, 난 너와 같이 앉아 있는 게 좋아. 넌 우물이거든, 진정한 우물 말이야. 심각한 비밀이라도 네게는 안심하고 털어놓을 수 있어. 넌 듣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으니까. 혹시 그런다고 해도 역시 별 차이는 없지. 넌 신경을 쓰지 않거든. 아니, 넌 우물보다 나아.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까. 그러면서도 듣지는 않지. 넌 벌을 내리지 않는 신부님이자 진단하지 않는 분석가야.”

우물이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우물은 언제나 고요했다. 공돌 안의 순환은 정직했고 돌과 돌 사이의 틈을 흐르는 호흡은 단순했다. 물은 어김없이 재생되었고, 소일 삼아 우물 속으로 질러댄 소리가 먹먹하게 받아쳐질 때마다 식솔들은 그 파동의 습기에 마음을 놓았다. 우물은 땅의 드러난 눈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고요하여 자신의 저 깊은 데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우물 벽에 매달려, 사람들은 마치 안정된 눈동자를 가진 사람 앞에서처럼 조금씩 기가 죽곤 했다.

오늘 본 우물의 물은 어제의 물이 아닐 것이고, 또 내일 마실 우물물도 오늘의 물이 아닐 것이니, 그 정직한 순환에 마음을 맡길 뿐이다. 그러므로 닥은 나와도 닿아 있으며, 더불어 존 스타인벡과도 맞물린다. 고맙게도.

책에서 내가 건진 최고의 문장은 이것이었다.

“그럴 여유만 있다면 속는 사람이 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닥은 이를 기억했고, 역시 그런 여유를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는 영리해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허영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쾌한 중에도 슬픈 구석이 있었다.

『통조림공장 골목』에서 가장 슬픈 부분은 이 부분이었고,

나한테는 늘 이상해 보였어. 우리가 존경하는 미덕들, 즉 친절이나 관용, 개방성, 정직성, 이해와 공감 같은 것들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실패에 따르는 것들이야. 우리가 혐오하는 특징들, 탐욕, 집착, 비열, 자기중심, 이기주의가 성공의 특징들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앞의 자질을 존중하면서도 뒤의 결과물을 사랑한단 말이야.

『달콤한 목요일』에서는 여기였다.

친구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식에도 불구하고 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변해갔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새벽에 커튼을 부스럭거리는 작은 바람처럼, 풀밭 속에 숨은 야생화의 비밀스런 향기처럼, 변화는 그렇게 찾아온다. 변화는 작은 통증을 통해 자신을 예고하기도 해서 사람들은 그저 감기에 걸렸다고만 생각하고 만다.

참, 『통조림공장 골목』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달콤한 목요일』. 그래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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