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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사춘기 소녀를 어른의 세계로 이끌다 -『클로디아의 비밀』

성장 소설 중에서도 유독 특이하고, 센스 넘치고, 발랄하면서도 충분히 모험스럽고, 그러면서도 딱딱한 교훈 따위를 크게 담으려 하지 않는 소설 한 편을 같이 읽어 봅니다. E. L 커닉스버그 원작의 동화,『클로디아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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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드라마 같은 류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가출이 있습니다. 한참 자의식이 성숙해져 갈 시기의 가출이란 어른들의 그것과는 여러모로 의미가 다릅니다. 독립에의 열망, 어른으로서의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이 어른들의 가출에 비해 더해지며, 그렇기에 청소년기의 가출은 사뭇 매력적인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성장기라는, 한 인간에게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시점을 다루는 성장 소설에서 가출은 위와 같은 이유로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100% 보호라는 테두리 속에서 살아온 여린 영혼이 울타리를 벗어나 겪는 사건과 모험을 통해 어린 영혼은 어른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갑니다.

이러한 성장 소설 중에서도 유독 특이하고, 센스 넘치고, 발랄하면서도 충분히 모험스럽고, 그러면서도 딱딱한 교훈 따위를 크게 담으려 하지 않는 소설 한 편을 같이 읽어 봅니다. E. L 커닉스버그 원작의 동화(라고 불러야 할지, 청소년 소설일지는 애매합니다), 『클로디아의 비밀』입니다. (원제는 'from the mixed-up files of Mrs. Basil E. Frankweiler'이고, 정식 라이센스 번역판이 나오기 전에는 과거 모 해적판 문고본에서 ‘집 나간 아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소설입니다.)

뉴욕 근교의 작은 도시에 사는 주인공 클로디아는 많아야 14살 안팎의 소녀로, 네 명의 형제·자매 중 맏딸입니다.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 평범하게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클로디아는 그러나 맏딸이라는 나름의 위치와, 집안에서 혼자서만 일을 한다는 차별감을 느낍니다.

클로디아는 그맘때의 다른 아이들처럼 나름의 허영심과 자부심을 가진 아이입니다. 쿨한 성인여성으로의 동경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세련된 선택은 사소한 반항이 아니라 가출입니다. 뭔가 자신의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집안에 전달할 수도 있고, 도도한 자신만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당하지도 않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어른의 위치로 격상시킬 수도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기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열망과 도전정신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런 클로디아의 성격이기에 그녀의 가출은 계획부터 남다릅니다. 계획 없이 어둡고 험한 밤거리를 헤맬 작정 따위는 애초에 없습니다. 클로디아의 가출 계획은 역대 가출계획 중 가장 고품격을 자랑하는데, 그녀의 숙소는 바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입니다. 사전 소풍을 통해 클로디아는 메트로폴리탄 내부의 구석구석을 답사하고, 숨을 곳과 이동경로 등을 조사해 두었습니다.

복잡하고 방대한 구조 덕택에 숨을 곳 많고, 전 세계 유물들이 모여 있어 볼 것도 많고, 이집트 여왕의 침대와 유럽 바로크 시대의 침대를 숙소로 정할 만큼 안락하기까지 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야말로 럭셔리한 가출장소로 최적입니다. 그러나 단지 장소만으로는 클로디아의 위대한 가출 계획이 완벽해질 순 없습니다.

클로디아는 재정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생 중 최고의 갑부인 막내 제이미를 포섭합니다. 학교에서 카드 도박과 속임수로 이름을 날리는 '어린이 노름꾼' 제이미는 단순히 받은 용돈을 아끼는 수준을 넘어서 이미 열 살의 나이에 자기 돈을 굴릴 줄 아는 타고난 재테크 전문가입니다. 클로디아는 막내 제이미를 꼬드겨 가출계획의 재무담당자 직책을 주고 그의 돈을 노립니다. 이로써 그녀의 럭셔리 가출 계획은 큰 그림을 끝마칩니다.

마침내 학교 가는 스쿨버스에서 탈출해 두 사람은 메트로폴리탄에 잠입합니다. 수학여행 온 아이들 대열에 살짝 끼면서 주요 포인트를 모두 체크한 두 아이는 폐관 직전 화장실에서의 독특한 트릭을 통해 경비원과 청소부의 눈을 피하고, 미리 정해둔 오래된 침대를 숙소로 잡아 둡니다. 아무도 없는 미술관의 밤을 신나게 휘젓고 다니는 두 사람에게 박물관은 새로운 모험의 장소이자 아늑한 집입니다.

꼼꼼한 계획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고품격 클로디아의 성격상 가출은 그냥 가출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매일 미술관을 견학하며 하루에 한 가지씩 이상은 배우자는 목표를 세웁니다. (물론 재무담당 제이미는 따분해합니다. 대부분의 재무담당자가 그렇듯이…) 경비원들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날마다 몰려오는 학교 단체 관광객 틈에 슬쩍 섞여 두 사람은 박물관 구석구석을 구경합니다.

한낮의 견학과 관람이 끝나면 휴식을 위해 또다시 화장실에 숨고, 박물관에 적막이 찾아오면 다시 그들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단순히 목욕을 위해 찾아간 분수대에서 두 사람은 동전을 주우며 새로운 수입원을 발굴해 내고, 이를 통해 두 사람의 가출은 좀 더 긴 스케줄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박물관의 미스터리는 바로 미켈란젤로 천사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단돈 200여 달러에 박물관이 사들인 미켈란젤로의 천사 조각상에 관해서는 그 진위가 크게 논란이 되고 있었습니다. 학구적이고 호기심 많은 클로디아가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밤마다 그녀는 미켈란젤로 상을 탐구하고, 마침내 넘치는 호기심에 그녀는 애초에 이 물건을 얼토당토않은 값에 박물관에 넘기며 이슈의 시작을 알렸던 프랭크와일러 부인을 찾아가기에 이릅니다.

사실 이 전반적인 이야기의 화자는 바로 프랭크와일러 부인입니다. 소설의 서두는 영어 원제처럼, 화자인 프랭크와일러 부인이 자신이 알게 된 클로디아라는 소녀의 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유언 담당 변호사에게 전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처음 만난 클로디아와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초반부터 강렬한 기 싸움을 펼칩니다.

두 여자는 서로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상호 간의 공통점에 대한 끌림과 동시에 묘한 경쟁심마저 갖습니다. 서로 들고 있는 각자의 ‘비밀’은 상대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클로디아와 프랭크와일러 부인 모두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단돈 200달러에 진위가 불분명한 미켈란젤로 작품을 미술관에 넘겨버린 채 함구하고 있는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비밀은 클로디아의 가출이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목표가 되어버렸고, 도대체 어떻게 조그만 아이 둘이서 그 조각상의 비밀에 이렇게 가깝게 다가왔는지가 궁금한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마침내 두 비밀 간의 대협상을 시도합니다. 그 비밀의 협상이 끝나면서 소설은 나름의 감동과 함께 결말을 보여 줍니다.

『클로디아의 비밀』이라는 한국판 제목은 상당히 그럴싸한 선정이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소설의 주제가 ‘비밀’에 상당히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화자인 프랭크와일러 부인이 바로 그 케이스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녀가 박물관에 단돈 200달러에 조각상을 넘긴 이유 자체가 바로 비밀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비밀은 누구에게나 삶의 짜릿한 한 공간입니다. 남몰래 숨겨 둔 서랍 속 초코바 하나가 주는 끊임없는 상상에의 몰입은 세상 무엇보다도 달콤하다는 것을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한편 이제 막 인간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클로디아는 프랭크와일러 부인처럼 명백하게 비밀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행동이 비밀을 만들고 즐기는 것과 매우 유사하게 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남몰래 가출 계획을 세웠고, 자신의 행선지를 아무도 모르게 만들었고, 미술관 직원들 아무도 모르게 그 비밀이 가득한 공간을 혼자 점유하면서 얻은 즐거움이 결국 비밀이라는 근원에 닿아 있음을 클로디아는 서서히 알아 갑니다. 프랭크와일러 부인과의 대면에서, 그리고 그 비밀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클로디아는 펑펑 눈물을 흘립니다. 아마도, 비밀을 알았다는 기쁨보다는 비밀이라는 개념을 체득하며 한 단계 성장해버린 자신을 느껴서이겠죠.

유독 사춘기 시절에는 그 비밀이란 것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모양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그렇고, 『클로디아의 비밀』에 나오는 나이보다 분명 조숙해 보이는 정신세계를 가진 ‘고고한 클로디아 양’의 모습에서도 그런 모습은 느껴집니다.

애초에 거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수하고 어린 영혼들에게 이 세상은 그 존재 자체로 이미 비밀투성이입니다. 알려진 것이 없기에 생소하고 두렵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궁금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미가 있습니다. 이미 사회인이라고 불리는 나이의 많은 독자들 또한 그 비밀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스스로가 한 단계 성장했음을 느끼실 것이고, 지금 그 단계에 막 들어서는 나이 대의 분들은 이제 막 비밀의 단맛을 느끼고 계시겠습니다.

『클로디아의 비밀』은 어린이 도서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5학년 이상 내지는 중학생 정도 수준에서 보다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주제 자체가 사춘기와 성장이라는 청소년 급을 건드리고 있고, 글의 분량이나 단어 선택도 아주 어린이 급은 아닙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그 나이대를 벗어나서 읽는 경우라면 화자인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입장에 대해 매우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성격과 입장이면서도 단지 나이대만 달리 한 클로디아와 같은 캐릭터를 보다 동일시하게 되는 시점이라면 어른들도 읽으면서 나름의 재미와 감동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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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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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의 비밀

<E.L. 코닉스버그> 글,그림/<햇살과나무꾼> 역11,700원(10% + 5%)

자기가 우수한 모범생인것도 지겹고 동생과 싸우는 것도 지겹고 딸이라고 차별받는것도 지겨워 새로운 세계를 찾기위해 가출한 평범한 아이 '클로디아'의 이야기로 '클로디아'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험이 바로 '비밀'임을 깨닫는다. 1967년 미국에서 뉴베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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