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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혹은 이면

글이나 그림, 음악으로 입신한 이들이 정치적인 행보나 사생활에서 드러내는 문제점은 그들의 작품에 영혼까지 휘둘려본 사람에게는 거의 재앙이다. 나도 수많은 실망을 경험했고, 그러면서 받은 상처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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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엄격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역시 엄격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자기 능력과 타협하면서 ‘인생이란 뭐 이런 거 아니겠어?’ 하고 여유를 갖고 어깨에 힘을 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주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규범이나 도덕과 거리가 먼 사람도 비위에 거슬린다. 주위 사람에 대해서도 자신의 엄격한 관점을 적용하기 때문에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이래서는 주위 사람들이 마음 놓고 숨을 쉴 수가 없으리라.

본디 자기에게 엄격한 사람이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을 느끼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는 목표물을 공격하듯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엄격한 관점을 적용하여 차츰차츰 모두를 긴장시키는 것이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감시의 눈이 늘 곁에 있는 듯이 느껴져서 숨이 막힌다. 이 사람 자신도 꽤나 무리하면서 살고 있지만 주위 사람에게도 무리한 긴장감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주의에는 항상 허점이 있다. 사람은 아무리 완벽을 추구해도 완벽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완벽주의자는 불평불만만 가득한 투덜이가 되기 싶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서는 불만이 생겨나고 푸념을 늘어놓게 되어 불만에 가득 찬 사람이 되는 것이다.


쯧쯧, 어쩌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고 싶은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짜증을 내고 또 노여워한다. 그러곤 결국 자학에 이른다. 한데 자학이란 상태가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한 대가라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으니, 난감이다. 나의 무의식 속에 그러한 교만이 있는 거라면, 정말 그렇다면, 그건 참 몹쓸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의식하는 나의 자학은 결핍에서 온다.

나는 머리가 나쁜 편에 속한다. 기억력이나 암기력 같은 일차원의 문제를 아울러 이해력, 분석력 그리고 통찰력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그러하다. 그로 인한 자격지심이 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은 지능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랄까. 그렇다 해도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불편하다. 또한 그 사실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화수분이 하나 있으면 어떨까, 할 때가 있다. ‘아주 드물게’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럴 리가 없다고 정의 내린 것들이 너무도 많은 재미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배시시 웃어볼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날개 없이 하늘을 날고, 아가미 없이도 바다 속에서 숨을 쉬는 무한 상상을 간혹 하기 때문이다.

그 단지 생긴다면 귀하게 모셔놓고 몇 날에 한 번씩 반나절 동안 내 머리통 집어넣고 있겠다. ‘그랬더니 결국엔 머리통만 여럿 굴러 나오더라.’ 하는 엽기공포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저 그러고 있는 동안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 얘깃거리, 까먹은 숫자,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던 단어, 그런 것들이 다시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그것이 바로 나다.

어머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얼굴도 정신도 심지어 영혼도 여럿이었다.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이 꼬리는 진짜, 저 꼬리는 가짜, 하지 않듯이 그 모두가 어머님이었다. 개별적으로 성장해온 감성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아니 스스로를 설득시키기 위해 글로 떠들고 있었다.

투실투실한 내 꼬리 중의 하나라는 거다.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감수성, 신경질적인 예민함, 비겁한 소심함, 열등한 피해의식 등등의 성질들이 또 다른 꼬리가 되어 척추 끄트머리에서 논다. 하나,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늙고 병든 아버지의 책장엔 낡은 책들로 가득했다. 텁텁한 질감의, 누렇게 바랜 종이들에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해독이 불가능한 문자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 세계가 언제나 막연하고 두려우면서도 욕심이 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그것이 문학을 향한 첫 걸음이자 첫 좌절이었다.

그리고 두발자유화의 처음과 교복자율화의 마지막을 업은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시에 눈을 떴다. 1941년에 발간된 서정주의 『화사집』에 실린 「귀촉도」와 학교 방송에서 들었던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통해서였다. 교과서에서 익히 들어온 이름이었지만 내 정서의 영역에서 멀리 있던 그들이었기에, 갑자기 친근한 척하면서 피부를 침투해 들어오는 시의 힘에 나는 어쩔 줄 몰랐었다. 문학을 향한 두 번째 걸음이자 첫 발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훌쩍 크고 나서 알게 된 그네들의 친일 행적으로 적잖이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충격은 힘이 셌고, 나는 문학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로 인해 내게 일어났던 일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귀여운 캐릭터를 달고 있어도 압정의 뒤는 뾰족하다. 그것이 세상의 이면이라고 나는 이해했고, 일제 시대에 젊은 날을 보내지 않아도 된 내 나이를 다행스러워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도 그 예는 허다하다. 드라마 <이산>이 종방을 향해 달려가는 때이니만큼, 기왕이면 그쪽에서 찾아볼까?

『북학의北學議』는 국사 시간에도 배웠듯이 18세기 후반 박제가가 사회적 위기에 직면한 조선을 개혁하려는 의도에서 쓴 글이다. 북학은 백성과 생활에 직결된 학문으로 통한다. 하여 북학파는 폐쇄적인 사회의 문을 활짝 열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을 통한 백성들의 생활안정과 부국富國을 강조한 학파로써, 사농공상으로 서열화된 직업의 귀천을 최대한 배제하고 상공업의 중흥을 강조했다. 하면 박제가는 누구인가. 서자였지만 정조로부터 왕안석에 비유될 정도로 신임을 받은 북학파의 선구적 학자다. 박지원, 홍대용, 이덕무 등과 함께 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을 지나치게 선망했을 뿐더러 나아가 조선을 부정하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박제가는 북학에 대한 확신범처럼 일생을 살았다. 중국의 선진문화를 동경하면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보잘것없는’ 조선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가 『북학의北學議』곳곳에 나타나 있다. 박제가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적인 혜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의 문물, 제도에 대해서는 부정으로 일관했다. 변화와 발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후진성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켜야 했던 것일까? 자질, 능력과 함께 주체성, 책임감을 겸비해야 참다운 지성이 아닌가 싶다.

하면, 외국은?

결혼행진곡으로 잘 알려진 바그너의 음악은 이스라엘에서는 들을 수 없다. 그가 극렬한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문화 자체를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자연스럽게도 그를 열렬히 추종한 히틀러에 의해 나치의 공식적인 음악이 되었다. 지금도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친나치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인물이기 때문에, 엄격히 따지면 친나치라는 평가는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그는 유대인들에게 금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니엘 바렌보임과 주빈 메타와 같은 유명한 지휘자가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해 위험을 초래한 적이 있다. 그들도 유대인이었기에 적잖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바그너를 연주했다. 바그너가 자신들의 민족 자체를 부정한 원흉이었음에도 차마 그의 음악까지는 홀대하지 못했던 그네들의 심정을 나는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지식인의 두 얼굴』이라는 책이 있다. 손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669쪽짜리 책이다. 그 표지에 이렇게 써있다. ‘위대한 명성 뒤에 가려진 지식인의 이중성’이라고. 다루어진 인물들의 면면도 무척 화려하다. 한데 그 앞에 붙는 수식어가 꽤 모질다.

1. ‘위대한 정신병자’ 루소 2. ‘냉혹한 사상’ 퍼시 비시 셀리 3. ‘저주받은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 4. ‘거짓 유형의 창조자’ 헨릭 입센 5. ‘하느님의 큰형’ 레프 톨스토이 6. ‘위선과 허위의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7. ‘이념의 꼭두각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8. ‘시시한 논쟁’ 버트런드 러셀 9. ‘행동하지 않는 지성’ 장 폴 사르트르 10. ‘구원받은 변절자’ 에드먼드 윌슨 11. ‘고뇌하는 양심’ 빅터 골란츠 12. ‘뻔뻔한 거짓말’ 릴리언 헬먼 13. ‘이성의 몰락’ 조지 오웰에서 노엄 촘스키까지

가벼운 예를 몇 가지만 들자면,

- 루소처럼 셀리는 보편적인 인류는 사랑했지만 주변의 개개인에게는 잔인한 경우가 잦았다. 그는 맹렬한 사랑으로 불타올랐지만 그 사랑은 관념적인 불꽃일 뿐이었고, 그 화염에 가까이 다가선 사람들은 시꺼멓게 그을리기 일쑤였다. 인류에게 사상을 제시한 그의 인생은 사상이 얼마나 냉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 그(입센)는 과시적인 행동을 향해서건 도덕률에 위배되는 행동을 향해서건 기분 내키는 대로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화내는 데는 전문가였다. 그가 터뜨리는 분노는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 그(윌슨)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는 능력이 부족했던 듯하다. 그의 저서들은 스스로 진화하면서 생장했다.
- 근본적으로 그녀(메리 매카시)는 사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관심이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정의에 따른다면, 그녀는 자식인의 여자에 훨씬 가까웠지, 그녀 자신이 지식인은 아니었다.


등등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내 눈에 띄는 인물은 아무래도 톨스토이다. 자신의 영혼이 이루 가늠하지 못할 만큼 위대하다고 느끼고,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을 지상에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열정적인 사회개혁가. 그러면서 수많은 독자들을 홀린 대문호. 하지만 그는 인내심이나 끈기, 지구력이 없는 인물이었으며 매춘부들의 단골이었다. 게다가 농노나 일반 여자들을 포함한 혼외정사로 얻은 자식들의 권리는 끝내 부인한 매정하고 비정한 아버지였다. 또한 가족 간에도 시기와 앙심, 앙갚음, 속임수, 배반, 야비함 같은 저열한 것들로 늘 분쟁했다. 하물며 그의 역사의식도 문제투성이여서 『전쟁과 평화』에 나타나는 역사관이 순전한 협잡에 불과하다는 평가까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많은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표명하는 역사이론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역사이론에도 불구하고 읽는다.

글이나 그림, 음악으로 입신한 이들이 정치적인 행보나 사생활에서 드러내는 문제점은 그들의 작품에 영혼까지 휘둘려본 사람에게는 거의 재앙이다. 나도 수많은 실망을 경험했고, 그러면서 받은 상처도 컸다.

그럼에도 내겐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경외하는 작가가 있으며, 이름만 가지고도 환장하고야 마는 화가와 음악가가 있다. 여기서 그들이 지식인의 범주에 드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분야를 달리 해도 마찬가지다. 백기완과 앨빈 토플러에 열광했던 청년 시절이 있었고, 얼마 전에는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사파티스타 국민해방군 지도자의 발언을 지지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모든 경우에, 나는 언제나 그들이 틀리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나 같은 이들을 위해서일까, 『지식인의 두 얼굴』의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지식인들을 사례별로 연구할 때 뚜렷이 나타나는 특징 하나는 그들이 진실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류를 위해 수행해야 하는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진실”을 증진시키고 초월하기를 원하지만, 자신들의 주장에 걸림돌이 되는 객관적 사실로 나타나는 평범하고 일상적 진실은 참지 못한다. 자신들이 대가로 인정받는 전문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공공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데 아무런 논리적 모순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인류의 운명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무고한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을 목격한 우리의 비극적인 20세기가 남긴 중요한 교훈은 지식인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뜨겁다. 아니, 절절 끓는다. 나는 어떤 가치관과 생각으로 이 뜨거운 세상을 견뎌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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