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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재발견

이를 거의 볼 수 없게 된 요즘에는 이런 민요가 참 생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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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이의 생김새를 보게 된다면 이 민요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이를 잘 묘사하고 있는지 감탄하게 될 것이다.


주둥이는 삐쭉해도 / 말 한마디 못해보고
등걸이 넓적해도 / 뒷동산에 성 쌓는데 흙 한 짐을 못 져보고
배때기에 먹통 한 짐 짊어졌어도 / 편지 한 장 못써보고
발이발이 육발이라도 / 육십 리 한 번을 못 걸었네


이 노래는 <이 타령>이라는 민요로, 디딜방아를 찧을 때 불렀다고 한다. 이를 거의 볼 수 없게 된 요즘에는 이런 민요가 참 생소하기만 하다. 그러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이의 생김새를 보게 된다면 이 민요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이를 잘 묘사하고 있는지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의 생김새 입은 삐쭉하고 등은 납작하며 배가 까맣고 발은 여섯 개로, 생김새가 민요 그대로이다.

사진에서 보듯 이의 입은 뾰쪽하게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물론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 위한 것이겠지만 이 노래에서는 이에 대한 못마땅함을 실어 말도 못하는 입이라는 비아냥거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등은 길쭉하면서도 넓적하다. 투명한 배는 빨아먹은 피가 고여 있어서 그런지 푸르스름하기도 하고 까맣기도 하다.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중요한 쓰임새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등은 넓적해도 짐을 져 나를 수 없고, 배때기에 먹통을 가지고 다녀도 글을 쓸 수가 없다. 그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얄미운 존재이다.

가장 압권은 마지막 구절이다. 육발이라니! 정말로 이의 다리는 여섯 개, 육발이다. 평균 0.2~0.3센티미터 정도인 이를 보고서, 그것도 사람에게 그리 이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를 보고서, 그것의 다리가 여섯인 것까지 알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노래 가사로 정리하여 디딜방아를 찧으면서 심심풀이로 불렀다고 하니 미물을 대하는 선인들의 마음씀씀이가 대단하다. ‘그렇게 잘나 보이는 생김새이건만, 정작 세상에 이로운 일은 한 번도 못해보지 않았냐’면서 사람의 입장에서 이에게 핀잔을 주고 있는 이 민요와는 달리, 이의 입장에서 사람을 원망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어서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옛날에는 명절이 가까워오면 집안 대청소를 했다고 하는데, 빨래만 하더라도 몇 날 며칠을 두고 했다고 한다. 이럴 때면 사람들 옷에 사는 이들도 바싹 긴장을 했다. 누가 빨래를 하는지가 그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아이고, 시어머니가 씻는다.” 하면 이들은 한숨을 푹 쉬면서 푸념을 해댔다.
“에이고, 이젠 우리 씨도 못 건지겠다.”
반면에 “며느리가 씻는다.”하면 자기들끼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다.
“그래도 씨는 건지겠구나.”


사람 몸에 기생하는 이는 사람에게서 떨어지면 얼마 살지 못한다. 특히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이가 기생하지 못하게 하려면 뜨거운 물로 목욕을 자주 하고 벗은 옷을 삶아서 빨면 된다. 하지만 한창 바쁜 농사철에는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특별한 날이 되어야만 이런 일을 하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이때가 가문이 끊기느냐 이어지느냐의 고비였다.

사실 얼토당토않게 이의 입장에서 가문의 씨를 건지느냐 건지지 못하느냐를 따지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입장 차이를 여기에 녹여서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점이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언제나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빨래 방식은 차이가 많았을 것이다. 시어머니가 보고 있지 않으면 며느리는 굳이 힘들여 빨래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대를 이어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이들에게는 그것이 안도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모습을 이의 생태와 연결시켜 재미난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음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무더운 여름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 정자나무 아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위도 더위지만 온몸을 물어뜯는 벌레들 때문에 더욱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평상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무료함을 달래고자 한 사람씩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먼저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장에 갔다가 고개를 넘어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 살려, 사람.’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나. 그래서 놀라서 사방을 둘러보았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계속 ‘사람 살려, 사람.’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자세히 들어보니 내 몸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지 않나. 그래서 내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옷 시침실에 이 한 놈이 목이 끼여서 사람 살려달라고 하고 있지 않겠나. 하하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영감이 자기도 한마디 하겠다며 나섰다.

“내가 밭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이상하게도 어디서 쉬쉬쉬 하는 소리가 나는 거야. 주위를 둘러보아도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 알 수가 없는 거야. 가만히 멈춰 서서 소리 나는 곳을 찾아보니 뜻밖에는 내 수염이었지. 이란 놈 한 마리가 수염에 그네를 매고 그네를 뛰느라고 쉬쉬쉬 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하하.”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자기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 나섰다.

“내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디서 ‘떴다, 떴다.’ 하는 소리가 들려서, 어디 씨름판이 섰는가 보다 하고 둘러보니 사방이 조용한 거야. 또 조금 이따 ‘떴다, 떴다.’ 하는 소리가 들려서 소리 나는 곳을 찬찬히 찾아보니 내 허리춤이야. 허리춤을 들치고 보니까 이하고 벼룩하고 씨름을 하면서 ‘떴다, 떴다.’ 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하하.”


이쯤 되면 이는 더 이상 사람을 괴롭히는 귀찮은 존재, 그래서 멀리하거나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미물이지만 사람과 더불어,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옷 시침실에 목이 끼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이는 ‘이 살려!’가 아니라 ‘사람 살려!’라고 외친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람의 수염으로 그네를 타는 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광한루의 춘향이였을 것이다. 이와 벼룩의 씨름 대결은 또 어떤가? 설날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방불케 했을 것이다. 비록 상상의 세계이지만 황홀하고 신비한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세계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는 이런 유의 이야기에 좀 적응이 되었을 것 같으니 등장 동물의 폭을 좀 넓혀보기로 하자. 다음은 이뿐만 아니라 벼룩, 모기, 빈대 등 사람을 괴롭히는 벌레들이 총출동하는 이야기이다. 또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된다.

옛날에 벼룩하고 이하고 모기가 모여 앉아서 서로 양반 자랑을 하였다. 자기가 더 훌륭한 양반이고, 자기를 당할 양반은 여기에 없다면서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기자랑만 해댔다. 암만해도 누가 더 양반인지를 가리기 어려워, 저기에 있는 빈대한테 가서 말을 들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벼룩, 이, 모기는 빈대에게로 달려가기 시작했는데, 성미가 급한 벼룩이 먼저 뛰어갔다.

“여보 남 생원, 저 슬(O, 이)가 놈하고 문(蚊, 모기)가란 놈이 자기가 양반이라고 자랑을 합니다. 좀 나무래주시지요.”

한참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하고 모기가 뒤쫓아와서는 이 소리를 듣고 화를 냈다.

“아니 조(蚤, 벼룩)가 네놈이 뭐라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결국 싸움이 붙었다. 화를 참지 못한 이가 먼저 벼룩한테 달려들다가 가슴을 채여서 그만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빈대는 싸움을 말리다가 그만 이와 벼룩 밑에 깔려서 납작하게 되었고, 모기는 입을 앞으로 쑥 내밀고 앵앵 소리를 지르느라 입이 삐쭉해졌다.

싸움은 간신히 정리되었다. 그러자 빈대가 사태를 수습하려 말을 꺼냈다.

“양반은 글을 지을 줄 알아야 하느니. 그렇게 싸울 것이 아니라 모두 글을 지어서 결판을 내는 것이 좋겠소.”

그러면서 운자로는 ‘사이 간(間)’자와 ‘사람 인(人)’자를 내놨다. 벼룩, 이, 모기는 글을 짓느라고 한참을 낑낑거리더니, 벼룩이 먼저 지었다면서 읊기 시작했다.

  용약천지간(勇躍天地間)            천지간을 날쌔게 뛰노라니,
  단견일지인(但見一指人)            손가락 하나 가진 사람만 보겠더라.

다음으로 이가 지었다.

  회행요대간(回行腰帶間)            허리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난견직구인(難見直口人)            바른 입을 한 사람을 보기 어렵구나.

마지막으로 모기가 글을 지어 내놓았다.

  비입주렴간(飛入珠簾間)            주렴 사이로 날아 들어가노라니,
  빈견타협인(頻見打頰人)            자기 뺨을 치는 사람을 흔히 보겠더라.

빈대가 이들이 지은 글을 다 보고 나서 누구의 글이 더 잘 지었고 누구의 글이 못 지었는지 판가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 잘 지었다고 하고 모두 양반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잡는 노승 조영석(趙榮O, 1686~1761)의 작품. 이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 때문에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여서, 옛 사람들은 쉴 때면 항상 이를 잡곤 했다.
이는 배가 시퍼렇고, 빈대는 몸통이 납작하고, 모기는 입이 가늘고 길게 뻗은 것이 특징이다. 저마다의 특징을 하나의 이야기에 모아서 그 유래를 말하고 있다는 점은 동물 유래담에서 익히 보아왔던 방식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지었다는 한시다. 그들의 생태를 시와 연결시켜 유쾌하게 풀어놓고 있는 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벼룩의 주 장기는 뛰기이다. 0.04~0.1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녀석이 20센티미터에서 30센티미터까지 뛴다고 하니 천지간 날쌔게 뛴다고 이야기할 만하다. 그 벼룩을 죽이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주는 것이다. 벼룩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는 손가락 하나 가진 사람만 있는 셈이다. 이는 바느질 땀이 많은 허리춤이 제일 좋은 서식지이다. 거기를 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가려움을 느껴 입을 삐쭉빼쭉하게 되는데, 이의 입장에서 보면 입이 바른 사람을 보기 어려울 수 있겠다. 모기는 주렴 사이를 날아 방으로 들어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 주특기이다. 웽웽 소리가 나면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손을 써서 모기를 잡으려고 하는데, 대개는 실패하고 제 뺨만 치게 된다. 모기의 입장에서 보면 참 한심한 인간들일 수 있겠다. 운자인 사이 간(間)자와 사람 인(人)자를 사용해서 이 미물들과 인간이 얽힌 해프닝을 멋진 한시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미물에 대한 관심의 수준이 좀 과도한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항상 가렵게만 만드는 벌레들에 대해서까지 이렇듯 지대한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었을까? 이규보는 <슬견설O犬說>에서 이나 개는 피와 기운이 있는 생명체이기에 구분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하였다. 사람의 죽음이 슬픈 것이라면, 개나 돼지의 죽음도 슬픈 것이고, 이나 벼룩의 죽음도 슬픈 것이란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이러한 거창한 철학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미물들을 대하는 선인들의 여유로운 시야를 엿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발이 여섯인 것을 보고서, 그렇게 다리가 많으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사람에게 딱 달라붙어 있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시침실을 오가면서 혹 머리가 끼여서 살려달라고 외치지는 않을지 걱정도 해보고, 가려움에 입을 삐죽거리는 사람들을 그들은 또 어찌 생각할지도 상상해보는 여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성가신 존재이지만, 이러한 여유로움 속에서 옛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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