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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독재국가냐, 부패한 민주국가냐 - 『은하영웅전설』

광활한 우주, 별과 별 사이를 누비는 인간의 궤적이 그려내는 새로운 역사에 관한 오래전 이야기를 오늘 한번 다시 끄집어냅니다. 다나카 요시키의 SF소설(이라고는 하지만 SF보다는 역사 소설에 가까울) 『은하영웅전설』이 그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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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이래저래 말 많던 행사가 끝났습니다. 이제는 우주의 시대라고 합니다. 관광객이든 우주인이든 한 사람이 선발되어 우주 공간에 다녀왔습니다. 좋든 싫든 사람들 사이에선 우주라는 주제가 꽤 회자되는 모양입니다.

이제 비록 도심에서 그 광활한 우주를 느끼기엔 힘든 상황이 되었지만, 칠흑 같은 밤하늘 곳곳에서 반짝이는 별들의 장관이 표현하는 무한함이란 인간에게 끝없는 꿈을 만들어주는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주, 우주인이라는 말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광활한 우주, 별과 별 사이를 누비는 인간의 궤적이 그려내는 새로운 역사에 관한 오래전 이야기를 오늘 한번 다시 끄집어냅니다. 다나카 요시키의 SF소설(이라고는 하지만 SF보다는 역사 소설에 가까울) 『은하영웅전설』이 그 주인공입니다.

SF라기보다는 역사소설이라는 이야기의 근거는 소설의 분량 할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SF, 즉 ‘Science Fiction’이라는 원래 의미에 걸맞은 부분은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습니다. 우주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군사작전에서 응당 나타나야 할 최신 기술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간혹 워프 드라이브(초광속 항행을 가능하게 하는 추진기술) 정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 정도가 곁들여질 뿐 그 이상의 기술에 대한 할애는 무척 인색합니다.

SF적 요소를 최대한 줄인 빈자리를 차지하는, 『은하영웅전설』의 메인 테마는 정치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정치 체제와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던지고 서로 논쟁하며, 그 이유로 전쟁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설의 서술 자체는 마치 역사 소설과 같이 후대의 역사가가 사건들을 재평가하는 듯한 형태로 진행되며, SF라기보다는 역사 소설에 좀 더 가까운 뉘앙스를 보여 줍니다.

소설의 배경 자체가 그렇습니다. 인간이 거주하는 우주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입니다. 전쟁과 기아로 황폐해진 지구를 벗어난 인류는 우주 곳곳에 거주지를 건설하고 은하연방이라는 조직을 구성하지만, 곧 등장하는 인물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연방의 수상 자리를 차지한 뒤, 인기와 권력을 몰아 은하제국이라는 황제 정치를 부활시키며 골덴바움 왕조를 창건합니다.

골덴바움 왕조라는, 민주정 역사에 거스르는 독재 체제에 항거하는 이들은 몰래 몇 척의 우주선으로 탈출하여 제국의 변방으로 도주,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공화제 국가 건설을 선포합니다. 은하제국은 이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자유행성동맹은 은하제국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며 싸우기 시작한 이래 150여 년이 흐른 시점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두 명의 천재입니다. 은하제국 우주군의 젊은 거물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금발의 미소년으로, 나이는 갓 스물을 넘긴 젊은 대장입니다. 평민 출신이지만 누나가 황제의 후궁으로 입궐하면서 귀족 반열에 오르는 라인하르트는 주변에서 후궁인 누나의 배경을 바탕으로 출세한다는 세간의 질투 어린 시선에 실력으로 화답해 가면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다져 나갑니다.

라인하르트와 맞서게 되는 자유행성동맹의 주인공은 양 웬리입니다. 애초에 군사에는 별 관심이 없고 역사 연구가 하고 싶었던 청년은 학비가 모자라 군사학교에서 전쟁사를 무료로 공부하기 위해 입학하고, 그에 따라 군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애초에 규율과 군기와 거리가 멀었던 그는 이래저래 군 내에서 왕따 처지로 살아가지만, 역사의 주요한 순간마다 발휘한 기지가 빛을 보면서 동맹군 주요 장성으로 떠오릅니다.

두 천재의 출현으로 150여 년간의 길고 길었던 제국 행성 간 전쟁은 서서히 그 종국으로 치닫습니다. 오랜 왕조제의 존속으로 인해 부패와 비리가 극도에 다다른 골덴바움 왕조를 끝내고, 새로운 제정을 펼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는 라인하르트와, 대중을 기만하며 개인의 이익 추구에 전념하는 부패한 민주정의 자유행성동맹을 싫어하면서도 지켜내야 하는 양 웬리의 대결은 묘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실제 소설 중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됩니다.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에서, 양 웬리의 재능을 높이 산 라인하르트는 그에게 영입 제의를 ?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지키고자 하는 민주주의라는 결과물을 한번 돌이켜 보라. 트류니히트처럼 부패한 인물들이 결국 정권을 잡고, 그들이 민중을 쥐어짜면서 세상은 더 혼탁해지지 않던가. 오히려 강력하고 올바른 제정 치하의 민중들이 더 편안한 삶을 누리는 걸 보고 있지 않은가?”

올바른 정치를 펴는 독재국가와 부패가 만연한 민주국가에 대한 가치 판단, 이 고전적 주제에 대해 던진 라인하르트의 질문에 양 웬리는 이렇게 답합니다.

“물론 지금의 현실은 그러합니다. 하지만 제정과 민주정의 가장 큰 차이는 책임 소재입니다. 적어도 민주정은 투표권을 가진 책임을 민중 스스로가 집니다. 올바른 선택은 좋은 정치를, 잘못된 선택은 최악의 정치를 만들고, 본인들이 그 책임을 받습니다. 하지만 제정은 그렇지 않지요. 누군지도 모르는 검증되지 않은 황제에 의해 지배 받는 일상은 억울합니다. 혹여 천재적인 황제가 선정을 편다 해도, 그 뒤의 황제가 망나니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두 사람의 논쟁이 보여주는 정치학의 오래된 주제가 소설 10권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사실 『은하영웅전설』은 이 주제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우주라는 배경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무대만 좀 넓다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3차원 공간인 우주에서 펼치는 함대 간의 전쟁이 2차원 평면으로만 일어나고, 광자포와 빔, 수소폭탄 미사일이 오고 가는 미래전에서 사용되는 전술들은 쐐기형 돌격진형, 장사진, 반추포위 등 중세 집단군의 전술이겠습니까.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등장하는 많은 개념들은 중세와 1차대전의 것들에 가까운 것이 『은하영웅전설』의 특징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등장하는 전술은 모두 집단군 규모의 야전 개념으로, 현대적 보병이 등장하기 이전의 보병 기병 편제를 따르고 있습니다. 함포 사격이 중심인 전투에서 돌격 대형이 나오는 것 자체가 SF로서는 크게 마이너스인 요소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등의 설정에서도 작가는 우주적이기보다는 과거의 역사를 재현하는 형태를 유지합니다. 은하제국군의 인물들은 모두 독일계입니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라는 이름은 라인하르트(이름), 폰(Von, 독일계에서 귀족을 부를 때 쓰는 접속어), 로엔그람(가문 이름)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브라운슈바이크, 키르히아이스 등 완전한 독일식 이름입니다. 왕궁은 신성로마제국 양식이고, 제국 군복은 독일 제3제국의 쥐색 스타일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으며, 일반 복식은 모두 바로크 양식입니다. 등장하는 전함이나 수도의 이름도 주로 북구 신화, 게르만 신화 계열로, 수도성 오딘의 이름과 작전명 라그나로크는 모두 북구 신화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동맹군은 아마도 미국과 소련을 염두에 둔 듯한 뉘앙스입니다. 군복은 2차대전기 러시아 복식과 유사한 형태이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게르만계인 제국과 달리 흑인과 아시아계 등이 모두 섞여 있습니다. 이름 또한 다민족이어서 양 웬리(중국), 쉔코프(러시아), 무라이(일본), 뷰코크(러시아) 등이 나타납니다.

이는 인류 역사가 가졌던 세계 대전을 무대만 옮겼다고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전제주의를 중심으로 한 게르만 계열의 조직적인 강대함과 다민족으로 구성된 자유주의 체제가 맞붙는 형태는 명백한 세계 대전의 모티브를 포함합니다.

이런 지점에서 『은하영웅전설』은 꽤나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작가의 묘사는 상당 부분 ‘훌륭한 전제정치’를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으며, 민주정치에 대해서는 주인공 양 웬리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형태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독자들은 『은하영웅전설』에 ‘전제정에 향수를 가진 반동적 산물’이라는 신랄한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소설이 함의하는 정치적인 불균형의 문제는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그런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한때 비공식 집계로 국내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돌파했던 소설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90년대에 ‘우주판 삼국지’로까지 불리며 대중 소설계를 장악했던 힘은 위와 같은 정치학적 주제 외에도 개성 넘치는 인물들에 실려 있습니다.

당장 대립하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는 판이합니다. 미소년에 완벽하고 냉철한 사고를 가진 리더로서의 라인하르트와 맞서는 양 웬리의 캐릭터는 게으르고 나른합니다. 심지어 적군 앞에서 동맹군 병사들에게 한다는 일장 연설이 ‘국가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모두 살아남자고.’ 수준에 머무르는 개인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상반되는 두 캐릭터의 대결은 단순한 정치적 입장의 대립을 넘는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냅니다.

작가는 주인공뿐 아니라 그 주변의 인물들에게도 강렬한 캐릭터를 부여합니다. 제국군 제독의 쌍두마차라 불리는 두 사람이 대표적인데, 질풍노도 미터마이어는 전장에서 가장 빠르고 저돌적이지만 무척 가정적인 인물이고, 금은요동 미터마이어는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르고 세상에 냉정한 남자로 서로 대립합니다. 두 눈이 모두 의안인 라인하르트의 참모 오벨슈타인은 음모와 계략으로 점철된 삶을 살며 라인하르트를 보좌합니다.

동맹군의 주요 인물들, 특히 양 웬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양 함대’ 사단의 인물들도 강렬한 개성을 자랑합니다. 독설가이자 백병전 전문인 제국군 망명자 출신의 쉔코프, 농담과 조소가 최고의 무기인 아텐보로와 포플런, 중구난방의 이런 무리를 그나마 가운데에서 조율하는 무라이와 같은 개성 넘치는 인물들은 두 진영의 상대성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며 독자에게 잊기 힘든 기억을 남겨 줍니다.

인류가 직접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곳은 드넓은 우주 중 아직 지구와 그 위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만든 피조물은 보이저 2호와 같이 이미 태양계 밖을 빠져 나간 경우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한국도 얼마 전 한 사람을 지구 밖 공간에 내보냈었고, 이를 계기로 우주 진출에 보다 박차를 가하겠다고 합니다.

우주는 영원한 꿈입니다. 심지어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우주도 등장인물들에겐 꿈으로 그려집니다. 라인하르트는 우주를 손에 넣고자 했고, 손에 넣은 뒤에도 끊임없이 꿈을 꾸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어떤 정치제제에서도 우주는 꿈이자 희망이자 미래로 남습니다. 먼 희망의 무한대로 수렴하는 우주의 존재, 그 불멸성이야말로 과거에서 미래까지를 관통하는 인류의 지향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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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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