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그렇게 하게 하는 힘

나를 지붕에서 내려오게 한 건 딸이었다. 먼 훗날, 나처럼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될 딸아이에게 든든한 친정이 되어주겠다는, 꼭 되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것이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그때 나를 지붕에서 내려오게 한 건 우울증이 감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자각이었다……. 우울증에 걸리면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낮아지지만 대개 자존심까지 잃지는 않는다. 자존심은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울증과의 싸움에 도움이 된다. 우울증이 깊어져서 사랑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질 때에도 허영심과 의무감이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 『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

나를 지붕에서 내려오게 한 건 딸이었다. 먼 훗날, 나처럼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될 딸아이에게 든든한 친정이 되어주겠다는, 꼭 되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것이었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다.

- 엄마. 국어샘이 무서운 얘기 하나씩 알아오라셔.
- 엥? 무서운 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하물며 해야 해? 큰일 났네.
- 그러니까. 뭐 적당한 거 없을까?
- 이게 좋겠다. 옛날 옛날에, 참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거든? 그걸 본 포수가 옳거니, 하고 총을 빵, 쐈지. 근데 참새는 살아서 날아가고, 나무 아래서 졸던 곰이 피를 철철 흘리며 죽었다?
- 왜?
- 콧구멍 후비다가 총 소리에 놀라서 그냥 팍, 쑤신 거지. 출혈과다로.
- 아, 그게 무슨 무서운 얘기야?
- 끝을 이렇게 맺어야지. 난 살아있는 짐승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이렇게.
- 아, 그런 얘길 어떻게 해?
- 음…… 그럼 이건 어때?
- 뭐?
- 학교 갔다 집에 왔는데, 엄마가 짐 싸서 도망간 거야. 제대로 무섭지 않냐?
- 아, 그게 뭐야. 내가 엄마 땜에 못 살아.

오래 전에 이 얘길 블로그에 올렸더니 덧글이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대부분 모녀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질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춘기 딸을 둔 엄마들은 안다. 저런 식의 개그적인 화기애애함이 얼마만큼 지속되다 마는지를.

사실 내가 누군가에게 가차 없을 수 있다면, 그건 바로 딸에게다. 공격의 주제는 성격, 지능, 식성,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외모처럼 민감한 주제도 결코 건너가는 법이 없는데, 특히나 쇼핑 때 두드러진다.

- 엄마, 이 옷 어때?
- 안목하고는. 꼭 골라도 벌레 터진 것 같은 색만 골라요. 황달 걸린 사람처럼 보여.
- 이건 잘 어울리지?
- 키도 작은 것이 꼭. 차라리 거적때기를 두르든가 푸대자루를 뒤집어쓰고 다녀. 어디로 봐서 그게 옷이야?

그럼 그렇게 퍼붓는 내 안목은 탁월한가. 아니다. 팔순을 넘기신 내 엄마의 눈에는 나 또한 매사에 지적받아 마땅한 딸일 뿐이다. 아마 엄마도 외할머니에겐 그런 딸이었을 거다.

한데 이러한 대물림이 우리들의 고금古今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동서東西 또한 망라한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으니, 유태계 미국인으로 프랑스에 시집간 수지 모르겐스턴이 그녀의 큰딸, 알리야 모르겐스턴과 주고받는 대화가 그러하다.

- 너 요새 살찐 거 아니?
- 일 그램도 안 늘었어!

강한 반발.

- 몸무게 재봤어?
- 아니!


그래놓고 그녀는 이렇게 푸념한다.

엄마들은 엄마라는 이름의 일을 지치지도 않고 계속하고 있다. 말하자면, 들볶고 조바심치고 기를 꺾어놓고 기운을 돋우어주고 잔소리하고 상처 입히고 부려먹고 가슴 뿌듯해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한마디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엄마와 딸이라는 한 쌍을 이루는 각각의 짝들은 그럭저럭 살아남는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엄마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건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다. 늘 그런 식이다. 엄마들도 그리고 딸들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르겐스턴·알리야 모르겐스턴

딸들의 치열한 역사다. 자극적이고 유치하여 효과적이지 못한, 그러므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랑의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삼형제 중의 장남인 내 남편의 눈에는 ‘외계인의 역사’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 한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딸의 역사는 상당히 진지하다.

‘딸들의 역사’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마 간단히 지난 시대에 딸들이 살아왔던 삶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모아서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마치 중세 유럽의 기사들이나 탐험가들의 일생을 기록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지만 과연 딸들의 역사,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들이나 탐험가들의 모험담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해요. 첫 번째 대답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딸들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이야기가 늘 한결같았으니까요. 딸들은 예부터 집 안에서만 생활했고, 집안일과 살림살이를 배우다가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했어요. 결혼 후에 남편의 집으로 옮겨 가도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죠. 중요한 건 오로지 결혼할 때 신랑 집에 가지고 가는 재산인 지참금의 액수와 신랑감의 인물 됨됨이, 그리고 화려한 결혼식뿐이었어요. 자식들에 대해서조차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어요. 자식들은 전적으로 남편의 집안에 속했기 때문이죠. 이런 모습을 따라서 지나온 모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딸들의 역사는 그것으로 이미 완성된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러나 두 번째 대답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과거의 문헌들 가운데 딸들에 대해 기록한 내용은 사실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고대와 중세의 모든 문헌들, 아니 그 당시에 문자로 기록된 모든 것을 샅샅이 훑어봐도 딸들, 즉 여성에 대한 기록은 고작 아름답거나 슬픈 몇몇 이야기와 객관적인 사실 몇 가지 정도가 전부죠. 어떤 소녀가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 예컨대 영주의 딸로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혼 관계를 맺었다거나 막대한 재산과 영토를 물려받았을 때에만 우리는 그 소녀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도 고작 이름이나 아름다운 외모, 고결한 품행 등 사소한 내용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외모가 그다지 빼어나지 않았다면, 품위와 지조가 있는 소녀였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거예요.

- 『딸은 아들이 아니다』, 비프케 폰 타덴

그러니 내 엄마나 나는 비록 그럭저럭 살아남았을 뿐이지만, 너는 대단하게 살아남아주기를 바란다는 기원이다. 하지만 정작 딸아이가 어떻게 살아남는 것이 대단한가를 물어온다면, 나는 말문이 막힐 것 같다. 어쩌면 “어떻게든 살아질 테니 지금은 그냥 최선을 다해!”라고 무책임하게 맺어버릴 수도 있겠다.

요하나 킨켈Johanna Kinkel은 1810년에 태어나 1858년에 죽은 독일의 음악가다. 조선으로 따지면 그 시기에 순조, 헌종, 철종, 이렇게 왕이 세 번이나 갈렸다. 정신 사납기로는 서양도 마찬가지인지라, 그 시절에 음악가로 기록이 남을 정도면 그녀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녀의 친구로 훗날 신학자가 된 빌리발트 베이슐라크라는 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혁명가, 작가였던 그녀는 그 모든 곳에 앞서 헌신적인 아내이자 네 아이의 엄마였다.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은 19세기 여성 작곡가로서 자리매김하는 데에 분명한 걸림돌이었다. 킨켈에 대한 요하나의 무조건적으로 헌신적인, 질투에 불타는 열렬한 사랑은 그녀의 예술과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동시에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삶에 걸림돌이었다.
- 『마주침』, 유정아

라고.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이 지상과제였던 그 시절을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고 쓸데없다. 어떤 면에서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때때로 겁이 난다. 딸아이가 겪을 시간들이 모질까봐서.

내가 몇 권의 교육 관련 도서를 섭렵한 후, 『딸은 아들이 아니다』까지 찾아 읽은 이유는 순전히 딸아이를 좀 더 ‘잘’ 키워보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별반 지혜롭지도, 교육에 열성적이지도 못한, 게다가 살갑기조차 않은 그저 그런 엄마로서의 갈급함 말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모범답안은 없었다. 답답한 내가 있고, 안쓰러운 내 딸이 있을 뿐. 고충이다.

나의 이성은 페미니즘이나 가부장제처럼 어떤 주의나 제도에 속하지 않는다. 생긴 대로, 성격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세상을 꿈꾸는 소심한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딸아이가 사랑을 하든, 일을 하든, 혁명을 하든, 그 영혼만큼은 평화롭기를 바란다.

많은 것들이 후회가 된다. 좀더 너그럽지 못했던 것, 많이 다정하지 못했던 것 등등.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혁신적으로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없다. 다만 딸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리하여 어떤 길을 가게 될 때, 등을 두덕여 지지할 뿐이다. 내 식대로 용기를 주고 응원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훗날을 위해 잘 늙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어떻게 늙어야 ‘잘’ 늙는 것이 되는 걸까? 이 생각 또한 딸아이로 인한 것이니, 진정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딸인가 보다.

가끔
엄마가 전화를 한다

“나다, 궁금해서”

나는 그 말을 ‘보고 싶어서’로 듣는다
또 가끔
엄마가 전화를 한다

“요새 바쁘지”

나는 그 말을 ‘한번 와라’로 듣는다

딸자식이 커서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이 이십여 년을 넘어
딸의 딸이 시집 보낼 때의 딸의 나이가 될 쯤이면
딸이 보고 싶어도 선뜻 오라는 말을 못한다

그것이 부모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자주 찾아 뵙지 못한다

그것이 또 자식이다


-「가끔 또 가끔」, 이수인

엄마도 그렇게 전화를 하신다, “엄마야. 궁금해서…….”
구걸도 아닌데 그예 내색하고 살아야 하는 엄마는 가끔씩 치사할까?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별일 없어요. 이번 달은 힘들고…….”
적선할 주제도 안 되면서 가네 마네 따지는 나는 야박한가?
훗날 내 딸이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읊는다면, 괘씸할까?
글 말미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