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의문의 죽음은 옛이야기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어느 부잣집에서는 아침이 되면 가족 한 명이 꼭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어느 관아에서는 새로 부임한 원님들이 부임 첫날 밤 모두 싸늘한 시체로 변하곤 한다. 어느 마을에서는 재앙을 없애기 위해서 뒷산의 작은 동굴에 해마다 처녀 하나를 손수 바치는 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물론 아침이 되면 그 처녀는 시체로 변해 있고, 그러고 나면 그 한 해는 별 탈이 없이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의 묘미는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사태를 꿰뚫어 알고 있는 신이한 사람, 예를 들면 도사나 고승이나, 담력이 센 사람을 등장시켜 문제 해결의 실마리만을 가르쳐줄 뿐이다. 문제가 다 해결되고 난 뒤, 그러니까 더 이상 사람들이 죽어나가지 않게 된 연후에야 죽음의 원인이 밝혀진다. 다음의 황룡사 이야기가 꼭 그렇다.
현재는 폐사가 되었지만 황해도 장연군에 황룡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만 자고 나면 중이 한 사람씩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떤 이유에서 한 사람씩 사라지는지를 모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절에 있는 중들은 모두가 불안해하면서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 모른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어느 고승이 지나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방책을 일러주었다.
“닭을 천 마리 키우십시오. 그러면 일이 해결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중들이 닭 천 마리를 구해 키우기 시작했다. 닭들은 굳이 먹이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먹이를 찾아 먹으면서 자유롭게 놀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닭을 키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이 없어지는 일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닭의 부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중이 하루는 닭이 가는 데로 쫓아가 보았다. 뜻밖에도 거기에는 한발이나 되는 큰 지네가 나자빠져 있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 사람씩 황룡사의 중들을 잡아먹은 것은 큰 지네였고, 닭 천 마리가 달려들어 그 큰 지네를 잡은 것이었다. 그런 뒤에 중이 없어지는 일이 사라졌고, 매일같이 닭들이 지네를 파먹었기 때문에 닭의 부리에 피가 묻게 된 것이다.
원한을 품고 죽은 귀신도 아니고, 장난이 심한 도깨비도 아닌, 지네가 바로 의문의 죽음을 일으킨 원인이었다. 옛이야기 속에서 지네는 대개 땅속이나 동굴, 오래된 절이나 사당 또는 대갓집의 대들보 속에 숨어 살면서 밤이면 슬그머니 나타나 독을 뿜어 사람들을 해치곤 한다. 지네가 이런 악역을 맡게 된 것은, 옛 선인들이 지네가 안개와 구름을 일으키고 농사와 기후를 조절하며 인간의 생명과 질병을 다스리는 지하계의 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지네를 물리치는 동물로 닭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까지 잡아먹는 덩치 큰 지네를 닭이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닭이 어둠을 쫓고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즉, 사악한 것을 쫓는 벽사의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어둠의 신으로 생각된 지네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닭의 생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닭은 지네와 같은 벌레류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끝까지 쫓아가 잡아먹는다고 한다.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것을 쫓아가 일단 발로 밟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부리로 쪼아서 죽인다는 것이다. 지네는 닭의 대표적인 먹이이니, 지네의 천적은 닭인 셈이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예전부터 지네 퇴치용으로 닭을 마당에 풀어서 키웠다고 한다.
여기서 더욱 재미있는 것은 닭의 천적 또한 지네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둘은 상호 천적 관계, 혹은 앙숙이라 하겠다. 물론 닭의 대표적인 천적은 오소리나 족제비로 알려져 있지만 육식성인 지네 역시 닭을 죽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닭이 지네를 쫓아가 발로 밟고 죽이려는 순간, 지네는 또 자기 나름대로 순발력을 발휘해서 닭에게 독을 뿜어 죽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지네를 잡기 위해서 항아리에 지네가 좋아한다는 닭의 뼈를 넣어두고 유인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면 항아리로 지네들이 모여들어 손쉽게 지네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닭은 지네의 ‘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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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밟기 남원의 괴양리에서는 닭의 형체인 계룡산을 보호하기 위해 매년 칠월 백중날(음력 7월 15일) 지네밟기 행사를 한다.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네 형상으로 엎드려 있는 것을 꼬마 아이가 밟고 지나가고 있다. | |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라는 곳에서는 칠월 백중날 연례행사로 지네밟기를 하는데, 그 사연에서도 닭이 지네에게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마을에서 보면 동으로 약산이 있고, 남북으로 계룡산이 길게 자리한다. 이것을 풍수지리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약산은 지네이고 닭 벼슬 모양의 계룡산은 닭으로, 지네가 닭을 해치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는 닭인 계룡산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지네밟기라는 세시풍속이다. 지네를 밟아 죽여 닭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다.
서로가 서로를 해칠 수 있는 상호 천적 관계에 있는 이 두 동물, 닭과 지네가 만약 정면으로 대결을 펼친다면 과연 어느 쪽이 이길까?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이 옛이야기에 있다. 천 년 묵은 닭과 천 년 묵은 지네가 사람이 되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옛날 한 선비가 몇 번이나 과거에 응시했지만 경비만 축내고 번번이 떨어져 크게 낙담하고 있었다. 또 과거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가산을 정리하여 과거를 보러갔다. 하지만 역시 낙방하여 더 이상 가족들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깊은 산속에 들어가 큰 바위에서 떨어져 죽는 것이었다. 결심을 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큰 바위 위에서 몸을 날렸다.
모든 것이 끝인 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여인 하나가 상처투성이인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식이 돌아오자 여인은 선비를 이끌어 으리으리한 기와집으로 안내했다.
‘이런 깊은 산속에 이다지 큰 기와집이 있을 리 없는데 어찌 된 일일까?’
의심은 되었지만 별다르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선비는 여인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널찍했으나 사람이 사는 흔적은 거의 없었다. 오직 이 여인뿐이었다. 이상하긴 했지만 딱히 뭘 어찌할 수 없었던 선비는 그냥 그곳에 꾹 눌러앉았고, 한참을 그렇게 살다가 결국 여인과 부부가 되었다.
생활은 풍족했고 더 없이 편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이 걱정됐다. 가재를 모두 정리하여 왔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도 어려울 판이었다. 하루는 선비가 여인에게 두고 온 식구가 걱정돼서 집에 다녀왔으면 한다는 뜻을 비쳤다. 여인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저의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반드시 밤이 이슥해서 길을 나서세요. 그리고 도중에 누가 말을 건네도 절대로 응하지 마세요. 그 사람과 말을 나누시면 안 됩니다."
선비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전에 살던 초가집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서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선비가 부인에게 어찌된 일인지 연유를 물었다.
"이것은 모두 당신이 보내준 돈으로 장만한 것입니다."
부인의 이 말에 일의 전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여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살려준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가족들까지 보살펴주었다니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선비는 여인의 부탁대로 밤이 이슥할 무렵 여인의 집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물론 여인의 당부를 되새기며 들은 체도 않고 발길을 재촉했다. 이윽고 또 사람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제법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 같았다. 세 번째 소리가 났을 때 선비는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또렷하게 들려온 그 음성은 틀림없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찾아가는 여인은 인간이 아니라 실은 지네다. 다시 돌아가 그 여인에게 잡히면 넌 죽을 수밖에 없어. 만일 살려거든 담뱃진을 입에 물고 있다가 여인의 얼굴을 향해 내뱉어라. 그렇지 않으면 넌 죽는다. 내 말을 꼭 명심해라."
이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선비가 여인의 집에 들어서자 여인은 창백한 얼굴로 머리를 푹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비는 가는 길에 잎담배를 많이 피워 진을 잔뜩 입에 물고 있었다. 아버지 말대로 여인의 얼굴을 향해 담뱃진을 뿜으려는 순간, 사경을 헤매던 자신을 구해주고 자기의 가족들까지 몰래 보살펴준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차마 그 여인을 향해 담뱃진을 뱉을 수가 없었다. 움찔움찔하기를 여러 번, 결국 선비는 담뱃진을 땅바닥에 내뱉고 말았다.
여인은 그제야 고개를 들며 미소를 띤 채 그에게 그간의 일을 고백했다.
"저는 사실 인간이 아니라 천 년 묵은 지네입니다. 당신은 오는 도중 틀림없이 돌아가신 아버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님이 아니라 천 년 묵은 닭입니다. 닭과 저는 천 년이 지날 때 한 인간과 만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쪽이 진실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당신을 만나자, 저를 죽이려고 닭이 당신의 아버님으로 둔갑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담뱃진을 저에게 뿜었다면 저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다시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마음을 고쳐 저의 진심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인간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남산 아래 큰 바위 밑을 보아주십시오. 그곳에 저의 허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지네는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선비가 누워 있던 곳은 예전의 그 큰 바위 위였다. 어젯밤까지 있었던 기와집도 여인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문득 여인의 말이 생각이 나서 여인이 알려준 남산 큰 바위를 찾아가보니 과연 지네의 허물이 있었다.지네와 닭이 사람이 되기 위해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은 다분히 둘 사이의 앙숙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승리를 위한 조건이 참 특이하다. 동굴 속에 들어가 쑥과 마늘만으로 몇 날 며칠을 지내야 한다고 하면 차라리 쉬울 텐데, 알 수 없기로 유명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니.
여기에서 닭과 지네의 선택이 갈린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자주 사용된다. 그 첫 번째가 이른바 인맥을 이용하는 것이다. 인맥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것이 친인척이고, 그중 최고는 직계 가족이다. 닭이 선택한 방식은 이쪽이었다. 이에 비하면 지네는 좀 우직한 방식을 택했다. 그 사람에게 시간과 공을 들이고 진심을 다하여 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본심이라 할 수 있는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인간으로서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들도록 했다.
맹자는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였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놀라 달려가서 그 아이를 보듬어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져 죽는 것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인지심이고, 인간 본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대개 닭이 선택한 방법이 승리하게 마련이다. 겉으로는 능력이나 인간성이 중요시되는 사회인 것처럼, 또는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인맥이나 학연이 훨씬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사람들이 모두 닭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황룡사를 구해냈던 그 고승에게 오늘의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네를 한 천 마리 정도 키워보십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