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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풍경한 뉴욕의 두 남자 <아메리칸 갱스터>
살풍경한 할렘의 거리에서 피로 물든 돈을 둘러싼, 꿈틀거리는 인간의 욕망을 영국 출신의 이방인 리들리 스콧은 원숙한 연출력으로 훌륭하게 표현해 낸다.
살풍경한 뉴욕의 두 남자 <아메리칸 갱스터>
오랜 세월 할렘의 밤을 지배한 범피 존스 밑에서 운전사 겸 비서 노릇을 해 온 프랭크 토마스(덴젤 워싱턴)는 범피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순도 높은 헤로인 중독이 되어 온 것을 잘 아는 그는 베트남과 태국 접경의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직접 헤로인을 들여오며 자신의 마약 사업을 점차 확장시켜 나간다. 한편, 뉴저지의 마약반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우)는 부패한 형사 세계에서 고고히 청렴함을 유지하며 자신이 발견한 거액 100만 불을 상부에 보고하는 의로운 행동을 한다. 그러나 부패한 동료들에게는 소외되어 버린다. 새롭게 특별 마약 단속반을 이끌게 된 리치 로버츠는 거리를 휩쓸고 있는 순도 높은 마약의 공급자를 추적해 나가고, 어느새 ‘마약왕’이 되어버린 프랭크 토마스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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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이 수록된 <아메리칸 갱스터> DVD의 첫 번째 음성 해설에서 이 영화의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리들리 스콧은 일찍이 <에이리언>이나 <블레이드 러너> 같은, 현란한 시각적 스타일의 영화를 통해 높은 평가를 받아온 감독이었고, 이런 경향은 이야기의 줄기가 강조된 <글래디에이터>나 <블랙 호크 다운> 같은 후기 영화에서도 여전한 편이다. 하지만 <아메리칸 갱스터>는 짧은 쇼트와 쇼트의 충돌이 일어나는 몽타주 편집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그간의 리들리 스콧 스타일과는 다소 거리가 먼, 호흡이 긴 전통적 드라마 중심 영화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스타일 변화에도 <아메리칸 갱스터>는 분명히 리들리 스콧이 만든 19편의 장편영화 중 충분히 상위 그룹에 낄 만한 완성도를 갖춘 영화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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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토마스와 리치 로버츠, 상반된 입장의 두 주인공 시점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아메리칸 갱스터>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근거로, 차분하지만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음성 해설에서 리들리 스콧과 각본가 스티븐 자일리언이 말하고 있듯, 마치 70년대 범죄영화의 고전 <프렌치 커넥션>과 <대부>가 한 편의 영화 안에 공존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다. 굳이 따진다면 범죄자 프랭크 토마스의 영화 속 장면은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다룬 갱스터 영화 <대부>와 같은 구성인 셈이고, 수사관 리치 로버츠의 부분은 거리의 현장감을 강조했던 윌리엄 프리드킨의 형사 영화 <프렌치 커넥션>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물론 노련한 연출가인 리들리 스콧은 영화의 거의 끝에서야 만나는 프랭크와 리치의 영화 속 이야기를 서로 교차하면서도 전체적인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과 흐름에 통일감을 부여해 두 부분간의 이질감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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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아메리칸 갱스터>는 이질적인 직업을 지닌 두 인물의 유사함과 도덕적인 모호함을 보여주며 독특한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직업적으로는 매우 깨끗한 인물이지만 가족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문란한 바람둥이 생활을 지키는 리치 로버츠와,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자신이 세운 비즈니스 윤리를 철저하게 지켜 나가는 프랭크 토마스의 아이러니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묘사는 두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또 이 영화에는 범죄자 집단인 토마스 가족 사이의 유대감이 잘 묘사되는 것과 달리, 형사들의 가정생활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점도 이런 연출자의 의도를 엿보게 할 수 있는 대목으로 마이클 만의 <히트>를 연상시키는 설정을 유지한다.
한편으로는 이 두 인물은 처음부터 기반이 없는 ‘마이너리티’라는 점이 유사한데 부패가 만연한 경찰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며 뚝심 있게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 리치 로버츠나, 기존의 마약 유통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직거래 방식을 선택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마약 유통업’의 세계를 열어가는 프랭크 토마스는, 기본적으로 하나는 잡고 또 다른 하나는 잡혀야 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비주류에서 주역으로 올라선다는 묘한 유대감을 주는 인물들이다. 이런 두 주인공의 동질적인 개성은 리치 로버츠와 대비되는 부패 수사관 트루포(조쉬 브롤린)나, 프랭크 토마스와 대립하는 갱스터 닉키 반즈(쿠바 구딩 주니어)나 마피아 보스 카타노(아망드 아산테) 같은 캐릭터들로 인해 더욱 더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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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에 근거를 둔 만큼 <아메리칸 갱스터>의 시선은 묵직하다. 이 영화에서 프랭크 토마스는 확실히 기존 범죄 영화의 경박한 마약 딜러와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적어도 <스카페이스>의 아드레날린 과다분비자인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나 <디파티드>의 사이코패스 폭력중독자 코스텔로(잭 니콜슨), 또 마틴 스콜세지 영화의 신경질적인 갱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며 차라리 <대부> 시리즈의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같은 인물을 연상케 하는 비즈니스맨 타입의 범죄자다. 그가 형제와 친척을 모아놓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 성실 그리고 가족’이라는 말을 뱉어 놓고는 할렘 거리로 나아가 라이벌의 얼굴에 총알을 날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에게 돌아오는 장면은 청교도적인 윤리관과 잔혹한 범죄자의 면모를 지닌 그의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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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부패로 젖어 있는 뉴욕/뉴저지의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해낸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갱스터 영화 플롯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프랭크 토마스는 아주 작은 실수 때문에 파멸한다. 하지만 <아메리칸 갱스터>는 그의 쇠락을 과잉된 감정으로, 극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의 후반부에서 프랭크 토마스와 리치 토마스는 미미한 유대감에서 일종의 우정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따지고 보면 프랭크 토마스는 ‘도덕’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본다면 자본주의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본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이들의 기묘한 관계 위에 6, 70년대 마약으로 물든 미국 동부 지역을 휘몰아쳤던 미국의 부패와 커넥션에 관한 영화다. 살풍경한 할렘의 거리에서 피로 물든 돈을 둘러싼, 꿈틀거리는 인간의 욕망을 영국 출신의 이방인 리들리 스콧은 원숙한 연출력으로 훌륭하게 표현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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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이 탁월한 테크니션임은 무척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 DVD가 최상의 영상을 선보인 것은 아닌데, 그건 그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갱스터> 역시 영화의 배경이 되는 6, 70년대의 분위기를 우선으로 하는 데다가 어두운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아주 깔끔한 영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분적으로 실내 장면의 배경 등에서 지글거림이 발견된다. 하지만 크게 거슬릴 수준은 아니고 영화 전체의 분위기는 전반적인 일체감을 잘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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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의 경우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 퀄리티는 흠잡을 데가 없다. 종종 등장하는 총격 장면에서의 임팩트가 뛰어나며 조 프레이저와 알리가 대결을 펼치던 경기 장면이나 파티 장면에서의 미세한 음향 효과가 서라운드 스피커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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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으로 구성된 <아메리칸 갱스터> DVD에는 극장에서 공개된 버전이 기본적으로 수록된 것 외에도 약 30분 분량 정도의 장면이 추가된 확장판(Extended Version)이 수록되어 있다. 좀 더 캐릭터 자체나 영화 속 장면에 대한 설명을 담은 장면들이 있어 반갑지만 극장판 버전이 좀 더 응축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 본편 디스크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각본가 스티븐 자일리언의 음성 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리들리 스콧은 끊임없이 영화를 준비하며 공부한다는 ‘연출 중독자’ 감독의 연출관을 들을 수 있어 흥미롭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1시간이 훌쩍 넘어서는 메이킹 필름 Fallen Empire: Making American Gangster(78분 17초)가 담겨 있는데 현재까지 생존하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을 비롯해서 영화 제작 과정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그 외에 본편의 오프닝으로 사용될 뻔한 대체 오프닝 장면과 프랭크 토마스의 결혼 장면이 담긴 삭제 장면(3분 46초), 리들리 스콧의 실제 회의 장면과 작업 장면을 담은 Case Files(24분 56초)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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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덴젤 워싱턴>,<러셀 크로우>9,900원(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