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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 - <클로져>

영화든 연극이든 <클로져>는 4명의 인물이 각자 사랑이라고 믿는, 또는 각자에게 필요하고 절실한, 단순히 이기적인 감정들을 거침없이 나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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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를 듣고 있다. 그래야만 무슨 얘기든 쓸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연극 <클로져>를 보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5년 초연 이후 벌써 여섯 번째 무대지만, 필자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연극보다는 영화로 친숙하다. 줄리아 로버츠, 주드 로, 나탈리 포트만, 클라이브 오웬. 이름만 들어도 걸출한 배우들이 나와 사랑의 다양한 빛깔과 적나라한 모습을, 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거침없는 행동과 알 수 없는 마음을 드러냈다.

<클로져>, 영화에 앞서 연극으로 무대 올라

<클로져>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영화에 앞서 무대에서 공연됐던 작품이다.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 1997년 초연 뒤 전 세계 100여 개 도시에서 상연됐으며, <스위니토드><헤어스프레이>처럼 ‘공연’이 먼저 성공해 ‘영화’로도 제작된 케이스다. 이렇게 한 작품이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무대 예술로 표현될 경우 가장 큰 이점은 전작의 흥행을 바탕으로 스토리에 대한 공감과 관객들의 호응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각 장르를 개별적으로 보지 못하고, 서로 비교하거나 감상에 영향을 받는 우(愚)를 범하기도 쉽다.

지현(엘리스)과 대현(댄)의 낯선 만남(사진 제공: 악어컴퍼니)

필자 또한 이 같은 어리석음을 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와 연극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렇게 <클로져>가 얘기하는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실제로 연극 <클로져>를 보고 돌아와 밤이 깊도록 영화 <클로져>를 다시 본 필자는 한 정신과 의사가 <클로져>에 등장하는 네 남녀에 대해 분석한 글까지 모조리 섭렵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명쾌하지는 않다. 다만 제목인 ‘closer’와, 제목과 달리 극 중에 자주 나왔던 ‘stranger’라는 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은 하나가 아닐까 하는 정도.

<클로져>, 영화 그리고 연극

<클로져>. 일단 영화나 연극이나 보고 나면 모두 찜찜하다. 국내에서는 영화가 먼저 개봉됐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해 풀어보자면, 영화 속 인물들의 캐릭터나 설정은 연극에서도 동일하다. 다만 무대를 서울로 바꿨고, 그래서 이름도 대현(영화에서 댄), 태희(안나), 운학(래리), 지현(엘리스)이다. 그런데 이게 또 좀 불편하다. 길거리에서 서로 입을 맞추고 껴안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라와 여전히 달갑게 보지 않는 나라의 차이라고 할까.

안나와 댄의 낯선 만남

물론 우리 배우들이 표현하는 무대지만 ‘댄과 안나’가 아닌 ‘대현과 태희’로 채워진 무대는 (어쩌면 이성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거침없는 사랑에 대한 거리감에 징검돌을 하나 더하는 장치로 느껴졌다. 설령 그 모든 것들이 은폐됐을 뿐 우리에게도 확산돼 있는 현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신데렐라’를 ‘수정’으로 바꿔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운학과 지현’보다는 ‘래리와 엘리스’가 극에 집중하는 데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나와 래리의 낯선 만남

배우들의 연기는 출중했다. 배성우와 박수민, 이영윤은 이미 <클로져>를 연기한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고, 이번에 데니안과 이신성, 홍은희가 새로 참여했는데, 필자는 데니안과 박수민 조합의 무대를 보았다. 데니안의 연기는 첫 작품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깊지는 않았지만 열정적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영화가 좀 더 강약이 있고, 여백의 미가 강하다. 무대는 감정의 역동이 더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반면, 영화는 여운이 길다고 할까. 또한 무대는 영화와 다소 다른 마무리로 뫼비우스 띠의 풀리지 않는 순환을 암시한다.

closer 또는 stranger

영화든 연극이든 <클로져>는 4명의 인물이 각자 사랑이라고 믿는, 또는 각자에게 필요하고 절실한, 단순히 이기적인 감정들을 거침없이 나열한다. 사랑의 빛깔과 방법이 달랐을 뿐 피해자나 가해자도 따로 없다. 어쩌면 closer와 stranger가 결국은 서로 분리되지 않은 모습이듯, 사랑의 아름답고 숭고한, 온갖 긍정적인 모습은 사랑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호감, 이끌림, 욕심, 소유와 안정, 동시에 싫증이나 아쉬움, 집착, 배신, 어쩔 수 없음…. 사랑은 애당초 이 모든 감정들의 집결체인데도, 특정 감정만을 보기 좋게 사랑이라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학(래리)과 지현(엘리스)의 낯선 만남(사진 제공: 악어컴퍼니)

물론 그것은 경험의 정도일 것이다. 어디까지 경험했느냐에 따라 사랑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마치 크레파스의 색이 8가지라고만 알았던 어린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12색, 24색, 36색의 크레파스를 접하게 되는 것과 같다. 나의 크레파스가 그렇게 다양해질 수도 있고, 내 것은 24색에서 멈췄지만 다른 친구의 크레파스를 보며 36색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색이란 36가지로 멈추지 않고, 결합에 따라 누구도 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대현과 태희, 운학과 지현의 사랑이 각양각색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보다 인어공주를 좋아했다. 그 비극적인 결말이 안타까워서, 나중에 애니메이션에서 행복하게 마무리를 해줬을 때는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라했다. 물론 그때는 왕자를 위해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사랑만이 진실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어공주를 제치고 왕자를 앗아간 마녀가 만들어낸 공주의 모습도, 말 못 하는 인어공주를 뒤로하고 다른 공주에게 홀딱 반해버린 왕자의 마음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도 왜 어른들은 반쪽짜리 동화를 만들어 반쪽짜리 사랑만 보여주는 것일까? 어쩌면 덧없이도 사랑의 이상향을 꿈꾸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내재된 ‘낯선 모습’을 감추고 싶은 게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얼마나 이기적이며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은 얼마나 낯선가? ‘Hello, Stranger!’ 물거품처럼…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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