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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맛있는 영화 <식객>
어쩌면 <식객>은 이제까지 도회적인 세련됨을 주로 추구했던 최근의 한국 상업 영화의 경향에서 ‘서민성’ 또는 ‘보여지지 않았던 화려함’을 이야기하는 드문 사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눈이 맛있는 영화 <식객>
유서 깊은 음식점 운암정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자리.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가 경쟁 중 성찬의 황복회를 시식하던 심사위원들이 쓰러져버리면서 경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로부터 5년, 성찬은 차(車) 장수를 하면서 식자재를 팔고 있는 와중 조선조 임금이 먹던 수라상을 책임지던 ‘대령숙수’가 남긴 칼을 놓고 음식 경연대회가 열리고 방송사 PD와 VJ 진수(이하니)는 재야의 음식 고수 성찬을 경연 대회에 참석시킨다. 경연 대회가 진행되면서 봉주는 성찬을 위기로 몰아가고 ‘대령숙수의 칼’이 지닌 비밀도 벗겨져 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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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은 발군의 연출력을 갖춘 허영만이라는 작가가 전국 각지를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면서 한국 만화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만한 작품이다. <식객>은 만화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국의 음식 문화를 바탕으로 허영만 화백의 친근한 그림과 연출력에 적절한 유머와 긴장감을 갖춘 스토리가 더해진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로 가득하여 최근에 발표된 국내 만화로는 가장 높은 호응을 이끌어 낸 바 있어, 이 글에서는 언급되는 영화뿐 아니라 TV 시리즈가 제작 중으로 5월 중에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만화에서 영화로 이식되면서 영화판 <식객>은 성찬과 봉주라는 두 요리사의 대립을 좀 더 부각시키는 이야기 구조를 선택했다. 호흡이 긴 연재만화인 <식객>의 방대한 내용을 스크린에 모두 옮겨 놓을 수는 없었고 원작의 내용 중 ‘대령숙수’와 ‘소고기 전쟁’ 부분을 근간으로 몇 가지 에피소드의 요소들을 더한 <식객>은 한국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멜로 라인이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이 영화가 소위 ‘전문가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영화 속에서 성찬과 진수는 연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신 이 영화는 ‘대령숙수의 칼’을 놓고 벌어지는 미스터리 구조를 영화의 후반부에 배치해 놓고 장편영화로서의 호흡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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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언론에 ‘반일 색채의 장면’으로 알려진 후반부 ‘대령숙수 에피소드’는 영화 <식객>의 후반부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는 서사구조로서는 적절하지만 영화 전체로 보자면 조금은 비약으로 느껴지기도 한데, 극중 논리의 개연성이 아주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설정에 동원되는 ‘국권 피탈’ 등의 문제들이 영화에 들어오면서 영화 <식객>이 지닌 ‘음식 영화’로서의 외연이 지나치게 무거운 방향으로 향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식객>의 오프닝은 황복회 요리 장면이다. 이 오프닝 장면을 통해 우리는 <식객>이 결국 ‘요리’에 관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실제로 이 영화의 음식에 대한 묘사는 ‘눈이 맛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탐스럽고, 된장찌개를 비롯한 육회, 육개장 등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음식들이 화면 위에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면들은 허기가 느껴질 만큼 풍요롭다. 아마도 관객들이 느낄 <식객> 최고의 미덕은 바로 이런 영화 속 음식들에 대한 묘사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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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안의 <음식남녀>가 가족들의 만찬에 사용되는 ‘슬로푸드’와 확산되는 '패스트푸드'의 대비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상과 삶의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으며 주성치의 <식신>이 무협물의 성격을 더해 과장되기는 했지만 ‘주성치 월드’에 속한 독창적인 코미디를 만들어낸 것에 비해 앞서 말한 <식객>의 민족주의적 접근은 때때로 우리 영화가 지닌 지나친 ‘거대 담론에의 집착’이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하긴 <식객>은 ‘음식’이라는 특별한 소재를 제외한다면 아버지(이 영화에서는 권위를 상징하는 대령숙수의 칼)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두 남자의 대결이라는 기본적인 플롯에서 그리 많이 나아가지는 못하는 편이고 스테레오타입화된 두 남자 주인공들의 개성도 평면적이고 숯장수 에피소드처럼 이야기가 분산되는 경향도 있다.
그럼에도 <식객>은 날로 진화하는 한국 대중영화 장르의 빈 곳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영화로 평가할 만하다. 이야기 자체야 익숙한 구도의 소재적 변형에 가깝지만 이는 대중영화로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귀에 감기는 배경음악과, 이야기의 큰 틀에 적절히 볼거리를 결합하는 연출력은 우수하다. 앞서 말했듯 <식객>은 영화에 등장하는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그 음식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라 친숙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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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식객>은 이제까지 도회적인 세련됨을 주로 추구했던 최근의 한국 상업 영화의 경향에서 ‘서민성’ 또는 ‘보여지지 않았던 화려함’을 이야기하는 드문 사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히 예측가능한 결말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성찬이 다시 평범한 장사치로 돌아온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성찬은 ‘남이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소시민이고 이 영화 속에서 진정으로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을 뿐이지 세속적인 권력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익숙하지만, 음식이라는 맛있는 요리가 첨가된 <식객>은 이런 과욕을 부리지 않는 세계관을 통해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대중영화로서의 미덕을 유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경연 장면에서 활용되는 만화식 화면 분할 기법 같은, 작지만 센스 있는 편집술, 정은표, 김상호 등의 서민적인 외모의 배우들이 친근한 조연으로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어 ‘눈이 맛있는 한국 영화’의 첫 번째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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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객>의 DVD 영상은 비교적 우수한 편이나 색감은 다소 엇나간 듯한 느낌을 준다. 화질에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황복회 요리 장면에서 화질이 다소 침침하다고 느낄 만한데 이는 음성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잔인함을 희석시키기 위해 색보정을 가한 제작진의 의도라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 전체에 표현되는 사물의 색들이 제 색깔을 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영화 전체가 비슷한 색을 내므로 감상 자체에는 큰 무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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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의 표현은 강력함을 내세울 만한 장면은 거의 없지만 조리 장면에서는 서라운드에서 음향 효과들이 들려오면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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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먼트로는 본편이 수록된 첫 번째 디스크에는 음성 해설과 음성 해설 후기가 수록되어 있다. 전윤수 감독과 주연 배우 김강우, 이하나가 진행하는 음성 해설은 연출의 포인트 등 영화적인 내용보다는 영화 제작 당시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해주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음성 해설 후기는 음성 해설을 진행한 후 네 사람이 각기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 형태의 메뉴 디자인을 취하고 있는 두 번째 디스크는 ‘에피타이저’ ‘데코레이션’ ‘후식’ 등의 제목을 통해 영화의 컨셉을 따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메인 메이킹 필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령숙수’는 영화 전체의 컨셉과 만화 속 인물들을 닮은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등의 영화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에피타이저’는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을 연기하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VJ활동을 준비하는 과정 등을 다루고 있으며 ‘데코레이션’은 영화의 배경이 된 공간들의 영상을 보여준다. ‘후식’은 7개의 삭제 장면을 담고 있다. 그 외 ‘특별 시식’은 NG 장면을 담고 있으며 ‘식욕’은 음식 영화답게 곳곳에 널린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스탭들과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외에는 예고편 등의 프로모션 서플먼트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이 참여해 추천을 받아 구성한 맛집 소개 메뉴 ‘최고의 맛’이라는 별도의 메뉴가 있다는 것. 철저하게 영화의 컨셉에 맞추어 구성한 서플먼트가 흥미롭다. 다만 ‘대령숙수’를 제외하고는 각종 서플먼트에 인터뷰를 하는 인물들이나 지명에 대한 설명이 담긴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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