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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위로가 될 수 없는 말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데빌 돌의 <The Sacrilege of Fatal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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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위로의 말을 건네야만 할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자신에게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든.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그 어떤 말들도 위로의 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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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글쓰기는 하나의 습관이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항상 무엇인가를 쓰곤 했다. 우리 집에서는 책이 항상 대단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작가가 된 나의 동생은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데 그는 많은 소설을 썼다. 나는 망명 후의 여공시절에도 공장에서 일하며 머리로는 시를 짓곤 했다. 기계의 리듬에 맞춰서. 작품을 끝냈을 때의 기분은 허탈하다. 완성된 작품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쓰는 행위를 정신분석과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 거기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하나의 속임수이다. 쓰면 쓸수록 병은 더 깊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살적인 행위이다. 나는 쓰는 것 이외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작품이 출판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쓸 것이다.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쓰지 않으면 따분하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공장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머릿속으로 시를 짓고 있는 한 망명자를 상상한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궁핍하고 비참한 유년시절을 거친 뒤, 1956년 소련의 탱크가 부다페스트로 밀고 들어오자 국경을 넘어 스위스에 정착했다. 거기는 친구도 친척도 없는 곳이었다. 생활은 궁핍했고 생계를 위해 하루 열 시간씩 시계공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모국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배운 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순서대로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 한국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부인하는 이 세 권의 소설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작가의 이름은 아고타 크리스토프다.

어제와 같은 일, 우리가 아이였을 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1996년, 하이텔 록음악동호회에서 음반을 판다는 게시물을 봤다. ‘Cocteau Twins’ ‘Cure’ 같은 밴드의 음반 여러 장이었다. 중고 시디로는 잘 나오지 않는 밴드들이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음반을 사겠다고 쪽지를 보냈다. 대학로에서 만난 여자는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시디를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음반이 대부분이었음에도 여자가 제시한 가격은 적당했기 때문에 거리에 서서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서로 돈과 시디를 교환했다. 집에 돌아와서 가방을 열고 시디를 하나하나 꺼내는데, 전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밴드의 시디가 한 장 있었다. 시디의 뒷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Warning: this music can alter your mental health.
(경고: 이 음악은 당신의 정신건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풋, 웃음이 나왔다. 나의 정신건강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데, 그렇다면 더 좋아진다는 말씀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이윽고 스피커에서는 음산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목을 긁어서 발성하는 듯한 한 남자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디의 정보창에는 곡은 하나이고, 길이는 79분 03초라고 나와 있었음에도 속지에는 전체 러닝타임이 ‘70 분’이라고 나와 있었다. 음악을 듣는데 그 ‘ ’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시디가 다 돌아간 뒤에도 이런 느낌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리라는 암시일까? 이런 느낌. 그러니까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뭔가가 목덜미쯤에 달라붙어서 서서히 내 몸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느낌. 한없이 우울하게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 그건 ‘데빌 돌(Devil Doll)’의 <The Sacrilege of Fatal Arms>라는 음반이었다.

속지에는 이 음반이 같은 제목, 그러니까 ‘치명적 무기의 신성모독’이라는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영화는 데빌 돌의 디렉터라고 할 수 있슴 정체불명의 사나이 ‘미스터 닥터’가 만든 언더그라운드 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 영화가 존재하기는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그런 영화가 존재한다면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모든 관객들에게 마치 관 속에 누워 있는 듯한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했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영화 검색 사이트인 IMDB에도 나오지 않으니까 이런 영화는 없는 게 더 좋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영화가 존재한다면 그 내용은 과연 어떨 것인가? 가사는 이런 식이다.

어제와 같은 일. 우리가 아이였을 때, 서로 쫓아다니며 놀고 있을 때, 너는 나를 어두운 지하실에 가둬두곤 했지. 내가 애원하기를, “제발 열어주세요!” 잔디밭을 뛰어다닐 때면 -잘려 나간- 작은 머리통들이 밟히곤 했지. 우리에겐 엄마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는 번갈아 엄마 노릇을 했지.

십수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이 음반을 몇 번 정도 들었을까?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나는 음악을 섣불리 멈추지 못한다. 음산하기 그지없는 챔버 오케스트라와 동구, 구체적으로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베니아의 민속음악을 연상시키는 악기들, 그리고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한 미스터 닥터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불러일으키는 폐쇄공포의 고통을 즐기게 된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만 한다

“우리에겐 엄마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는 번갈아 엄마 노릇을 했지.” 미스터 닥터의 그 목소리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만들어낸 악몽과도 같은 50년간의 이야기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첫 권, 『비밀노트』에 나오는 두 쌍둥이 루카스와 클라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Lucas와 Claus. 순서만 바꾸면 이 두 이름은 같은 이름이다. 전쟁 기간 동안 국경 마을 근처의 할머니 집에 맡겨진 이 두 꼬마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서로의 뺨을 후려치면서 신체를 단련한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건 정신적 고통이다. 그래서 쌍둥이는 이런 짓을 한다.

-더러운 놈! 똥 같은 놈!
다른 하나가 말한다.
-얼간이! 추잡한 놈!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게 될 때까지 계속했다.
우리는 매일 30분씩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나서 거리로 바람을 쐬러 나간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하도록 행동하고는, 우리가 정말 끄떡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같은 내 새끼들!
이런 말들을 떠올릴 적마다 우리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각자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낸 쌍둥이는 이제 이 세계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 속에서 움직이는지를 똑바로 보게 된다. 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계를 기록하기 위해서 쌍둥이는 작문공부를 한다. 작문공부의 기준은 간단하다.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 있는 그대로의 것들, 본 것들, 들은 것들, 한 일들만 적어야만 한다는 것.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예컨대 ‘호두를 좋아한다’는 되지만, ‘엄마를 좋아한다’는 글은 쓰지 않아야만 한다. 첫 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 문장 작성법으로 적어놓은 일들 중에 이런 게 있다. 몇 년 뒤, 할머니 집으로 찾아온 엄마의 품에는 갓난아기가 있다.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 집에 남겠다는 쌍둥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던 엄마와 아기는 폭발사고로 죽고, 쌍둥이는 구덩이를 파서 시체를 묻는다. 나중에 사촌 누이가 시내에서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니?”라고 묻자, 쌍둥이는 “응, 포탄이 터져서 뜰에 구덩이가 생겼어”라고 대답한다. 얼마 뒤에 찾아온 아빠가 엄마가 죽었다는 걸 믿지 못하자, 할머니는 뜰을 파보라고 말한다. 아내의 시체에 아기의 시체가 붙어 있는 걸 본 아빠는 실망해서 집을 떠나고, 쌍둥이는 자신들이 구덩이를 메우겠다고 말하고는 이런 일을 한다.

우리는 해골을 모포에 싸서 다락방으로 옮겼다. 우리는 뼈들을 말리기 위해서 볏짚 위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후, 몇 달 동안 우리는 엄마와 아기의 해골과 뼈를 갈고 닦고 니스칠까지 했다. 그리고 떨어져나간 부분을 가는 철사로 얽어매서 원상복구한 다음, 다락방의 대들보에 매달았다. 아기의 해골은 엄마의 목에 매달았다.


『비밀노트』는 쌍둥이 중 한 명이 국경을 넘어가면서 끝이 난다. 다시 쌍둥이를 찾아온 아빠는 그 나라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국경을 넘어갈 테니 도와달라고 말하고 쌍둥이는 길을 안내한다.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다.

-가세요, 아빠. 다음 번 순찰은 20분 후에 있어요.
아빠는 팔 아래 판자 두 개를 끼고 앞으로 나아가서 판자 하나를 바리케이드에 기대놓고 기어올라간다.
우리는 큰 나무 뒤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손으로 귀를 막고 입을 벌린다.
폭발음이 들린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다른 판자 두 개와 보석이 든 마대를 들고 철조망까지 달린다.
아빠는 두 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써놓았으니 읽기도 전에 내용을 모두 밝힌 것이라고 생각해서 화를 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맞다. 이게 3부작 중 제1권 『비밀노트』의 내용이다. 서로 속이고 때리고 물어뜯고 죽이고, 그러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악몽의 세계. 타국의 시계공장에서도 머릿속으로 모국어 시를 쓰던 여공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쓴, 끔찍한 꿈의 세계. 하지만 그저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계를 다루는 것일 뿐이라면 이 소설은 여기서 끝나게 될 테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 악몽의 의미를 알아내려면 나머지 두 권을 다 읽어야만 한다.

태양, 바람, 밤, 달, 별, 구름, 눈, 비

우리가 꾸는 악몽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단지 깨어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어떤 감정의 찌꺼기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악몽을 꾸는 것일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50년간의 고독』을 다 덮고 나면 이제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궁금해진다. 『50년간의 고독』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넷이 식탁에 앉았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 둘. 낮에는 내내,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부엌에서, 정원에서, 뜰에서. 어머니는 저녁마다 우리를 재우기 위해서 우리 방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는 노래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따금씩 아궁이에서 쓸 장작을 패며 휘파람을 불었고, 우리는 저녁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아버지가 치는 타자기 소리를 듣곤 했다.
어머니의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설거지 하는 소리, 정원의 티티새 노래 소리, 베란다의 포도넝쿨 잎사귀와 뜰에 있는 호두나무 가지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모두 음악처럼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했다.
태양, 바람, 밤, 달, 별, 구름, 눈, 비, 이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우리는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른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들은 우리 가족과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때, 우리는 네 살이었다.


이 세 권의 책에는 온갖 끔찍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장면만큼 인상적인 부분은 없다. 살아가다보면 위로의 말을 건네야만 할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자신에게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든.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그 어떤 말들도 위로의 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정연한 말들은 그런 순간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꾸게 되는 악몽들에게 위로받는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 말들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태양, 바람, 밤, 달, 별, 구름, 눈, 비, 경이로운 그 모든 것들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은 다 읽었고, 음악은 끝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질문은 계속된다. 그게 바로 70 분의 의미, 그래서 어쩌면 3 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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