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바닷가에 가면 사람들은 으레 회 센터를 찾는다. 싱싱한 횟감을 직접 고르는 맛이 일반 횟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숨이 꺼지지 않아 퍼덕거리고 있는 싱싱한 횟감들을 고르다보면 한편으로는 그네들이 좀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산 채로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그들의 운명도 그러하거니와 또한 그들의 생김새가 너무도 괴상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것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저렇게 못생긴 것일까? 특히 광어는 ‘비호감’ 생김새로 인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횟감이다. 몸뚱이는 크고 납작한 것이 유난스러운데다가 눈과 입은 왼쪽으로 한참 몰려 있고, 눈알은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으며, 입은 또 한쪽으로 비뚤어져 있어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기괴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런 광어의 생김새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던가 보다. 생김새에 대한 유래가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까지 꾸준히 전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옛이야기에서는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비뚤어진 광어를 두고 천벌을 받았다거나 병에 걸렸다는 식으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생김새가 이상하다고 해 천벌을 받았다고 하면 광어뿐만이 아니라 못생긴 사람들에게도 실례가 될 터이고, 병에 걸렸다고 하면 사람들이 먹는 것인데 기분이 찝찝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깜찍하게도 이야기에서는 덩치로는 광어의 상대가 되지도 않는 조그마한 멸치한테 얻어맞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해준다. 무엇에 얻어맞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지만, 때린 동물이 멸치라니. 이야기가 보여주는 엉뚱함은 항상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옛날 옛적에 바닷가에 멸치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 나이가 무려 삼천 살이나 되었다. 바다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멸치가 삼천 년을 살면서 바라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용이 되어 승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소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루는 멸치가 꿈을 꾸었다. 하늘로 올라갔다가 땅으로 내려왔다가 구름이 끼었다가 비가 오다가 눈이 오는 아주 괴상한 꿈이었다. 멸치는 한낮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꿈에서의 일이 마치 현실인 듯 생생하게 떠올라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삼천 년을 살았어도 이런 꿈은 꿔 본 적이 없는데. 참, 이거 희한하네!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해몽을 한번 해봐야겠다.’
멸치는 자신의 꿈을 해석해줄 만한 물고기가 없을까 곰곰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바다 속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가 없었다.
‘아, 맞다! 광어가 있었지.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올해 팔백 살이라던가? 그래도 꿈에 관해서는 나보다 아는 게 많다. 광어에게 물어보는 것이 낫겠다.’
멸치는 이웃에 사는 새우를 불렀다.
“얘, 새우야! 너 가서 광어 좀 데리고 오너라.”
“무슨 일인데요? 저 지금 바쁜데…….”
“바쁘긴 뭐가 바빠? 어른이 심부름 시키면 ‘네, 알았습니다.’ 하고 얼른 다녀와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내가 급히 볼 일이 있으니 얼른 가서 광어 좀 데려오너라.”
새우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멸치가 하도 성화여서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멸치 영감이 늘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승천 때문이겠거니 하고 짐작만 했다. 새우는 광어를 찾아 데리고 왔다.
광어는 멸치의 꿈 이야기를 듣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무나 좋지 않은 꿈이었던 것이다. 광어는 안색이 변한 것을 들킬까봐 일부러 에헴, 하고 크게 헛기침을 해 보였다. 멸치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광어를 쳐다보았다. 광어는 그 표정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고는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이를 어쩐담. 이렇게 흉한 꿈을 꾸다니. 멸치 영감 성깔에 흉몽이라고 말하면 나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 분명 영감은 혹 용 될 꿈은 아닐까 궁금해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겠지. 멸치 주제에 용은 무슨! 그나저나 멸치 영감 성질머리 한번 고약한데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저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뜨게 될 텐데, 으흠. 안 되겠다. 멸치 영감이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소리인데 한 번 못해주겠어? 그래도 자기가 용이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면 그게 또 얼마나 행복이겠어. 나도 괜히 미운 털 박힐 필요 없고.’
광어는 멸치를 보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과장되게 무릎을 탁 쳤다.
“어허, 영감. 그 꿈 참 좋수다! 하늘에 갔다가 땅에 왔다가 하는 것은 용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비가 왔다가 눈이 왔다가 구름이 끼었다가 하는 것은 용이 부리는 조화이니, 이제 곧 영감은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이외다.”
이 말을 듣고 멸치는 너무도 기뻐서 꼬리를 팔랑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는 온갖 맛난 음식을 장만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열었다. 특히나 해몽을 해준 광어에 대한 대접은 특별했다. 진수성찬은 모두 광어 앞에 차려놓았고,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특별히 배려해주었다.
이것을 본 새우는 심통이 났다. 힘겹게 멀리까지 가서 광어를 데리고 왔는데 멸치가 자신에게는 술은커녕 수고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어도 아니꼽기는 마찬가지였다. 새우가 생각하기에 이 꿈은 굉장한 흉몽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도 예전에 비슷한 꿈을 꾸고는 흉몽이라며 조심했는데도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광어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꼽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멸치도 한심했다. 화가 난 새우는 멸치 곁으로 가서 빈정거렸다.
“치. 흉몽을 꿔 놓고서는 잔치는 무슨 잔치람!”
“뭐,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그랬냐?”
멸치는 술을 들이켜다 말고 놀라서 새우에게 소리쳤다. 새우는 팔짱을 낀 채로 멸치에게 쏘아붙였다.
“그 꿈은 흉몽이라고요. 하늘에 갔다가 땅에 오는 것은 낚시에 걸려서 솟았다가 떨어지는 것이고, 구름이 낀 것은 숯불이 타서 연기가 나는 것이고, 눈이 오는 것은 소금을 뿌리는 거예요. 비가 오는 것은 냄비에 물이 부어지는 것이고!”
멸치는 입을 떡 벌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멸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새우는 쯧쯧쯧 혀를 차며 멸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멸치의 집을 나왔다.
요란하게 울리던 풍악소리도 멈추었다. 그리고 갑자기 멸치네 집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새우가 멸치 집으로 다시 돌아가 보니 잔치판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야, 이 나쁜 광어 놈아! 네가 감히 나를 속여?”
멸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광어를 때리고 있었다. 아니 말 그대로 두드려 패고 있었다. 술에 흥건히 취해있던 광어는 갑작스런 멸치의 공격에 미처 방어할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날아온 멸치의 꼬리에 호되게 얻어맞아 광어의 두 눈은 왼쪽으로 휙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눈이 빠질 듯 부어올랐고 입술 또한 벌겋게 부어올랐다.
광어의 엉망이 된 몰골을 본 새우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가 나 펄쩍펄쩍 뛰는 멸치 영감의 행태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였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너무도 많이 웃어서일까. 새우는 그날 이후로 허리가 바싹 꼬부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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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는 ‘책과함께’와 제휴하여 매주 월요일 총 10편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심우장>,<김경희> 등저/<문찬> 그림13,320원(10% + 5%)
'동물'을 주제로 삼고 있는 옛이야기로 구성된 『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책 속의 수많은 동물들은 자체로 동물이면서 또한 사람이기도 하다. 인간사와 꼭 닮은 동물들을 등장시켜 사람 사는 문제를 맛깔나게 풀어내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기회를 제공한다. 옛이야기 속 동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