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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존재, 마녀를 만나다 - 『마녀』

마녀는 여전히 세상에 존재한다. 아니 마녀가 알고, 느끼고 있는 무한의 세계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마녀가 모두 죽어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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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 개의 세계를 잇는 자. 언어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의… 당신들의 세계는 유한, 우리들 세계는 무한. 당신들의 언어는 온갖 가능성을 특정한 성질로 구분해버리는 나이프. 자기들 입맛대로 세상을 썰어대는 도구. 우리는 세계를 잇는 그대로 보지. 우리는 언어를 알면서도,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자들. 마녀는 항상 무한과 접해 있지. 하지만 유한한 당신들은 그 존재를 감지할 수조차 없어. 한때는 모든 존재가 무한했는데도 말야.’ (「페트라 게니탈릭스」 중에서)

백과사전에는 여전히 마녀가 ‘여자의 모습을 한 악마의 총칭’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미 마녀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중세의 마녀사냥은 진짜 사악한 마녀가 아니라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불만과 두려움을 돌리기 위한 희생양을 찾는 폭력이었다. 대상이 마법사가 아니라 주로 마녀였던 것도, 그들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소외된 여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모든 것의 어머니를 숭배했던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여성은 권력에서 소외당했고,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사물을 보는 여성의 특별한 재능과 힘은 ‘마법’으로 배척당하게 되었다. ‘넌 감성으로 사물을 직시할 줄 아는구나. 그래서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로부터 홀대를 받았던 거야. 비뚤어진 눈을 가진 자들로부터.’ ‘그런 놈들은 자기가 뭘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몰라. 그놈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줄도 몰라. 삶을 이루는 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그건 우리의 뿌리거든. 뿌리가 없다면 자기 힘으로 단단히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없겠지? 그래서 근거 없는 소문에도 마구 흔들리는 거야.’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단편집 『마녀』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마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핀들’의 유목민 소녀는 신의 전언을 받는다. 계시를 전하기 위해 도시로 간 소녀는 ‘마녀’ 니콜라를 만난다. 하지만 니콜라는 진정한 마녀가 아니었다. 니콜라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복수를 꿈꾸며 마법을 익혔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의 비의를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스몰 위치’(small witch)에 불과했다. ‘밖에야말로 진정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꼬마.’ 그런 니콜라에게 소녀는 말해준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도 커서 마음에 뚫린 구멍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아무리 커다란 것이라 해도, 잃어버린 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데.’

‘마법이란 단순히 갖고 싶은 것을 갖는 힘이 아니다.’ 마법이란, 세계와 우리를 이어주는 끈이며 통로다. 마녀는 두 개의 세계를 잇는 자이며, 저주를 내리는 자가 아니라 치유하는 자다. 『마녀』는 마녀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진하게 내비치고 있다. 원초적인 생명의 세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는 이성과 언어를 무기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남자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그것은 곧 잠들어 있는 것이고, 죽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언어로 생각하는 당신은 언어를 넘어서는 생각할 수 없어요. 당신보다 커다란 것을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당신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는 있겠지만 당신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요. 우리들의 손이 닿는 것은 우리들 세계의 안쪽뿐.’ 그들이 보는 것은, 단지 그들의 닫혀진 세계일뿐이다.

그러나 마녀는 바깥을 보고 있다. 유한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그녀들의 눈은 아니 몸은 무한의 세계를 보고 있다. 노래를 말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저마다의 리듬이 공명해서 세상의 형태가 이루어지는 거라면, 우리들이 보는 세상은 노래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내가 보기에 세상은 노래로 이루어져 있어. 세상은 노래에서 태어난 거야.’ ‘노래를 훔친 자’의 히나타는 우연히 배에서 만난 여자에게서 깨달음을 얻는다. ‘온몸을 기울이면 눈이나 팔, 내장 그 모든 것이, 상념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거야. 세상이 부르는 노래를. 히나타의 모든 것이 눈을 뜨면, 히나타의 모든 것이 노래를 느낄 거야.’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느끼고,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말로, 언어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페트라 게니탈릭스(생식의 돌)」에서 밀라는 꼬마 마녀인 알리시아에게 말한다. 아직 책을 읽지 말라고. ‘체험과 언어는 함께 쌓아나가야 마음의 균형이 맞는 법이야.’ 자신이 알고 있을 때, 비로소 언어는 탄생하는 것이다. 막연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을 언어로 형상화할 때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쿠아루푸’가 보여주듯, 아마존 밀림과 숲의 정령과 주술사까지 모두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현대 사회에서, 마녀가 설 자리는 많지 않다. 모든 것을 과학과 논리로 구획을 지어버리는 문명사회에서는 직감과 혜안이 오히려 탄압을 받는다. 그러나 ‘마녀는 생각하지 않아. 마녀는 그저 알고 있는 거야.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녀는 여전히 세상에 존재한다. 아니 마녀가 알고, 느끼고 있는 무한의 세계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마녀가 모두 죽어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죽어 가루가 된 밀이, 다른 형태의 생물로 태어나는 것 같아’라는 말처럼, 인간은, 생명은, 무한의 세계에 속한 존재인 것이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그런 진리를 능숙한 화법과 볼펜을 이용한 정교하면서도 감각적인 그림으로 들려준다. ‘언어가 아닌 행위를 보라’는 말은 『마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많은 잠언과 번뜩이는 전언이 아니라, 그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그려낸 그림들만으로도 ‘무한’이 느껴진다, 재생이 느껴진다. 『마녀』는 힘이 넘치는, 리듬이 풍만한 만화다.

마녀
이가라시 다이스케 저/김완 역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마녀』는 대상을 직관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온전하게 느끼고 알아가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마녀들은 무언가 찾아나가고, 깨우쳐간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 자아의 좁은 테두리를 발결하는 것이기도 하고, 세상을 거짓 없이 바라보는 시선을 익혀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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