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아리랑』, 안도현의 『연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최인훈의 『광장』, 그리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책들과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100쇄 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위업을 달성한 책이라는 것이죠.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인정한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라고 보면 되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한비야 님의 책을 저야말로 100쇄 출간기념 등 신문 방송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댈 때야 비로소 ‘어디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참 이상하지요?
아무래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내심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야? 나는 여행 한 번 가려면 돈도 돈이지만 애 둘 딸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그녀는 가뿐하게 이 나라 저 나라 심지어 지도 밖까지 넘나들면서 세계여행도 실컷 하고 또 게다가 긴급구호팀장이라는 직함으로 봉사활동까지 한단 말야?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로 이제까지 그녀의 책에 일부러 손도 안 대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번에 딸아이와 함께 그녀의 첫 책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을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답니다. 그러고 나서 저 자신에게 많이 후회를 했습니다. 세상은 모두 자기에게 주어진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왜 그녀의 삶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질투만 했을까 하는 생각 말이에요. ^^
특히나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새겨들어야 할 구절이 있었는데 바로 성공을 위해서는 높은 IQ가 아니라 높은 AQ(adversity quotient, 역경지수)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아마도 이 부분에서 그녀의 삶은 더할 수 없이 빛날 것 같아요.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치고 그 속에서 문제해결능력을 익히고 또 그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힘! 그래서 그녀의 역경지수는 더욱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이에게 인생의 허들을 넘는 요행을 가르치기보다는 어쩌면 가시밭길이라도 신발 없이 걸어보고 싶은 시행착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참 조금만 더 일찍 책을 읽어볼 것을…….’ 하며 책장을 덮었는데 때마침 100쇄 출간 기념으로 평화방송과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딸아이 손을 잡고 콘서트장으로 달려갔습니다.
| 바람의 딸 한비야와 함께하는 북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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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가 열린 곳은 KT아트홀이라는 곳입니다.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교보빌딩이 보이고 바로 그 옆에 KT빌딩이 보이는데요, 그곳 1층에 KT홀이 있습니다. 저녁 7시 20분부터 시작하는 콘서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앞자리에 운 좋게 앉게 되었지만 일어서서 뒤를 돌아본 순간 저는 깜짝 놀랐어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입석까지 빽빽이 채우고 곧 시작할 그녀의 북콘서트를 설렘으로 기다리고 있었어요.
몽환적인 로로스밴드의 멋진 연주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볼리비아 출신 임병수 씨의 노래는 유치원생 꼬맹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엄마를 모시고 온,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까지 세대 공감을 유도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어 무대에 올라온 한비야 님은 빨간 재킷을 입고 날아갈 듯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인상이었지요. “전 늘 조증이에요.” 하시며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웃음을 잊지 않으셨는데 다양한 세상,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나서야만 갖게 되는 그녀만의 넉넉한 내공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답니다.
하고 싶은 일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첫 책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의 서문을 읽으며 ‘질풍노도와 같았던 사춘기에 그리고 너무나 막막했던 20대 초반에 내 곁에는 늘 언니가 있었어요.’로 시작하는 어느 팬이 보내준 편지 사연을 읽는 대목에서는 울먹울먹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언제나 이 대목에서는 눈물이 난다며 “자기가 쓴 책 읽고 자기가 감동해서 우는 사람은 나뿐일 거에요.”라는 코멘트도 덧붙이며 좌중을 울다 웃게 만드는 그녀. 얼굴도 모르는 많은 이들의 멘토가 되어주고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 그녀의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녀가 말하더군요.
“문은 두드리라고 있는 거예요. 열릴 때까지 끝까지 두드리세요. 중간에 포기하면 안 돼요. 끝까지 두드리다 보면 문은 꼭 열립니다.”
어쩌면 그렇게 요즘 사춘기에 들어선 딸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만 콕콕 집어서 이야기해주는지 저는 그저 그 자리에 딸아이와 함께 온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감사할 뿐이었어요.
| 가수 박정현 씨가 게스트로 참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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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에 탄 남대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인도 사람들에게 타지마할은 경외의 대상이고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앙코르와트는 존경의 대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활 깊숙이부터 문화유산을 아끼고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국보 2호와 3호에 대한 깜짝 질문을 했어요.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가 그것이라고 하네요. ^^
정상을 오르는 사람은 강하고 빠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속도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보러 온 팬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친절하게 답변을 하며 자신만의 처방전까지 내리는 그녀는 강원도 정선에서 왔다는 한 남학생이
『중국견문록』을 보면서 자신도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하지만 어렵기만 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외국어 공부에는 정도가 없다는 이야기와 대신 하루 30분씩 꾸준히, 정말 쉬지 않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면서 교재 하나를 선택해서 무조건 외워버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여러 가지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한 그녀의 어학실력이 천재적인 그녀의 능력 덕분만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피나는 노력 덕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가 어느새 도달할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스타라기보다 내 주변의 평범하고 인자한, 그러나 삶에 진취적인 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내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살자
| 볼리비아 출신 가수 임병수 님과 함께 볼리비아에서 최근에 발생한 재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한비야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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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저만 보면 돈을 줘요.”
책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중간 중간 지금 세상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엘리뇨, 라니뇨가 한꺼번에 덮친 볼리비아의 재난과 우리 돈 80원이면 정수기약 한 알을 구입할 수 있지만 그 돈이 없어서 오염된 물을 마셔야만 하는 그곳 사람들의 비참한 이야기, 또 1,000원만 있으면 아프리카 아이들의 한 주일 급식비라며 월요일이면 배고픔에 교실에 모두 쓰러져 누워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 아팠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진정 지식인이 아니라고 했던가요? 세계 오지를 여행하고 배운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였어요.
해외여행을 가려는 딸아이가 너무 안심이 안 된다는 어떤 엄마의 질문에 딸아이의 문제는 딸아이에게 믿고 맡기면 된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하면서 “엄마는 엄마 걱정이나 하세요.”라고 마무리를 했는데 정말 그 말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맞아, 마흔이 되어서 여태 나는 딸아이의 문제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모라는 핑계로 정작 나의 문제는 슬쩍 밀어두고 말이죠.^^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자신을 만난 사람들은 과거에도, 또 앞으로도 한국 사람은 오직 한비야 밖에 본적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한국 사람은 다 말이 빠르고 늘 잘 웃고 거침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해외여행을 할 때 우리나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외교관이라는 생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부탁했습니다.
| 환하게 웃는 한비야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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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진행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아마 여태까지는 수도꼭지가 터져서 물이 흥건한 곳에서 물을 퍼내는 일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그 수도꼭지를 고치고 단단히 잠그는 일을 할 거에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또 다른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었어요. 오지 여행을 하고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하고 또 청소년들을 위해 세계시민학교를 만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녀의 다음 번 모습을 기대하며 2시간 동안의 만남의 자리는 아쉽지만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피맛골 생선구이집에서 아이들과 늦은 저녁을 먹으며 “어땠어?” 하고 물으니 큰 녀석이 “음, 밝고 자신감에 넘치고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당당하고…… 한마디로 내가 닮고 싶은 그런 언니였어.”라고 대답하네요. 어? 요 녀석 봐라? 엄마보다 나이 많은 분인데 언니라고? 하하하. 하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또 모르죠. 어느 날 우리 딸도 자기 인생의 고민이 가득한 편지를 한비야 언니에게 날릴지 말이에요. 아이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에 한비야 님의 책이 함께한다면 조금은 안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TIP]
KT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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