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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박정자, 웃기는 배해선, 뮤지컬 <19 그리고 80>

뮤지컬 <19 그리고 80>은 묵직한 배우들의 명품연기로 무대도 꽉 찼고,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 또한 벅찼다. 무엇보다 중년의 남녀가 절반 이상 들어찬 객석을 보며 배우와 관객 모두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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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전해볼 것 같은데요! 젊음을 바라본다는 건 유쾌하고 상쾌해요, 기분 좋아요. 그리고 에너지가 솟고 엔도르핀도 생기고. 그래서 모름지기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서 기를 훔치고 뺏어야 해요(웃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분장실에 들러 박정자 씨를 만나봤다. 현실에서 정말 19세의 청년이 사랑을 고백하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이토록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멋있다.

연극계의 살아 있는 전설, 박정자 씨가 뮤지컬 <19 그리고 80>으로 무대를 찾았다. <19 그리고 80>은 컬트영화 <해롤드와 모드>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의 흔하지 않은 러브스토리다. 국내에서는 1987년 연극으로 초연된 뒤 2003년 박정자 주연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특히 박정자 씨는 ‘80세까지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애착을 표현했다. 올해로 네 번째 공연되는 <19 그리고 80>은 그 약속대로 박정자 씨가 다시 무대에 올랐고, 처음으로 뮤지컬로 탈바꿈했다.

습관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19세 청년,
80세 할머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다


19살 해롤드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애정과 관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습관처럼 이어지는 자살 시도에 이제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지경이다. 그러던 해롤드는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모드라는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거리의 병든 나무를 뽑아 숲 속에 심어주고, 나무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그녀에게 해롤드는 우정과 애정을 느끼고, 그렇게 삶에 대한 희망까지 얻게 된다.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

급기야 모드의 80번째 생일에 사랑을 고백하는 해롤드. 그러나 모드는 조금 전에 약을 먹었고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역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죽음조차 평온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얘기한다. 해롤드는 그녀와 함께 하겠다며 절규하지만, 모드는 해롤드를 바라보며 그들이 함께 심은 나무처럼 ‘더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홀로 남아 상실감에 젖은 해롤드. 그러나 그는 모드가 남기고 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통해 서서히 치유되고, 삶의 환희를 받아들인다.

사랑스러운 할머니 박정자

박정자 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저음의 근사한 목소리와 그 목소리로 무대를 호령하는 카리스마다. 그러나 <19 그리고 80>의 박정자는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했다. 삶을 특별한 눈으로 희망차게 받아들이는 모드답게 그녀는 앙증맞은 옷과 소품을 갖춰 입고 웃음과 재미가 가득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뛰어다녔다. 특히, 이번 무대는 뮤지컬이었던 만큼 노래와 춤이 곁들여졌는데, 솔직히 돋보이는 가창력은 아니었지만 나비처럼 가벼운 몸놀림은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를 잊게 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박정자

“제가 노래 박자를 잘 못 맞춰요. 박치라고 할까. 그래서 공연 때마다 연주를 듣느라고 귀를 쫑긋 세우곤 하죠. 그리고 노래 자체가 어려워서 연습할 때도 애를 많이 썼어요.” 뮤지컬 무대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물었더니, 이내 진솔한 답변이 돌아왔다. 춤 동작을 연습하다 두 발목이 고장 나서 내내 침을 맞기도 했다고. 이 같은 박정자 씨의 열정은 물론 무대 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 하지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련과 아픔. 그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서 진정한 배우의 연륜을 읽는다.

배해선, 서지영, 이건명의 뜻밖의 코믹 연기

‘박정자’라는 워낙 큰 인물에 자칫 가릴 수 있는 조연들. 그러나 뮤지컬 <19 그리고 80>의 조연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독특한 캐릭터, 확실하게 망가지는 코믹연기로. 우선 뮤지컬 <아이다> <에비타> <시카고> 등에서 당차고 우아한, 섹시하고 아름다운 캐릭터만 연기했던 배해선은 성당 복사와 해롤드가 선보는 여자 등으로 출연해 관객들의 배꼽을 강탈한다. 배해선에게 이런 모습이! 변화무쌍한 표정과 숨도 쉬지 않고 내지르는 대사, 극에 완전히 몰입해 혼자 내달리고 넘어지고 울고 웃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허리를 앞뒤로 꺾어가며 웃어댄다.

관객들 배꼽 강탈한 배해선

<아이다>와 <미스사이공> 등에서 활약한 이건명도 신부에서 정신과의사, 경찰관에서 장교까지 수많은 역을 소화해내는데, 배역마다 갈아입는 옷처럼 순식간에 달라지는 표정과 말투, 몸짓에서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다. 또 해롤드의 엄마 역을 맡은 서지영도 방방 튀는 연기로 무대를 화사하게 만드는데, 특히 쿠키를 먹는 모습은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최고의 코믹연기다. 물론 4대 해롤드로 분투한 이신성 또한 <폴인러브>나 <순정만화> 등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한 단계 커진 연기내공을 보여줬다.

배해선과 이건명의 코믹 연기


<19 그리고 80>, 꽉 찬 무대 벅찬 객석

공연 시장이 커지다 보니 정말 많은 공연들이 우후죽순 무대에 오른다. 물론 대형 기획사가 거대 자본을 투자해 탄탄한 시나리오와 스타급 배우, 내로라할 무대로 관객을 부르는 것과 소규모 기획사가 창작 작품으로 신인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가끔은 덜 다듬어진 배우가 펼치는 시트콤 정도의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한껏 올라간 관객들의 눈높이는 좀 더 치밀한 무대를 바란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런 차원에서 뮤지컬 <19 그리고 80>은 묵직한 배우들의 명품연기로 무대도 꽉 찼고,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 또한 벅찼다. 무엇보다 중년의 남녀가 절반 이상 들어찬 객석을 보며 배우와 관객 모두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를 잊고 무대에서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배우와, 그 무대와 교감할 수 있는 중년의 마음… 나도 그렇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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