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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고전 - 『공산당 선언』
1800년대의 정치운동에 관한 길지 않은 팸플릿 한 권이었지만, 『공산당 선언』이 시대를 넘는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의 사상이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은 볼셰비키 집권 이래 최초로 다당제 선거를 실시했고, 다음해인 1990년 동, 서독으로 나누어져 있던 독일은 서독 중심으로의 흡수 통일을 선언합니다. 이른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불리는 이 일련의 흐름 속에 한국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마르크시즘의 현시였던 소비에트가 눈앞에서 자본주의에 패배를 선언하는 현실은 마르크스와 그를 위시한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을 현실 너머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간간이 많은 블로그와 신문기사들 속에서 사람들은 ‘마르크시즘은 아직도 유효하다.’라고 말합니다. 글쎄요, 이러한 발언들이 얼마나 유의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 중에 혁명적 실천이라는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을 지지하는 모습을 가진 이가 드물고, 발언과 행동, 지식과 자아가 갈수록 분리되는 시대에서 괜한 마르크스 이야기는 별 의미 없는 정치적 장식, 지식 액세서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마르크스의 대표작인 『자본』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 감히 이 자리에서 간단하게 짚어보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그의 유명한 저작 중에 짧고 간단명료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한눈에 알기 쉬운 문건이 있으니 바로 『공산당 선언』입니다.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로 시작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그 유명한 문구들, 『공산당 선언』이라는 제목이 뿜어내는 강렬한 색채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지만 정작 읽어본 이를 세어보면 또 다른 통계를 보이는 『공산당 선언』의 리뷰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그 안에서의 또 다른 흐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틀을 벗어나는 또 다른 사고를 제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산당 선언』의 서문을 넘어 등장하는 첫 장의 제목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장에서 새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한 위의 두 계급이 어떻게 지금의 시대를 만들어 왔는지를 설명합니다. 중세의 봉건제에서 나타난 시민층으로부터 발생한 부르주아는 봉건 시대에는 혁명적 역할을 수행하는 변혁적 계급이었습니다. 부르주아는 기존의 가치생산과 교환의 체계를 혁명적으로 바꾸었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시대 양식이 탄생합니다.
두 저자는 이러한 부르주아에 대해 그러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획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 관계를 파괴했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얽매어 놓고 있던 온갖 봉건적 속박을 가차없이 토막내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노골적인 이해 관계와 냉혹한 '현금 계산'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광신, 기사적(騎士的)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 가치로 해체했으며, 특허장으로 보장되거나 투쟁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즉 상거래의 자유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정치적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도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기존 시대에서 종교나 계급을 통해 보호받던 많은 가치들은 경제 중심의 ‘실리’라는 개념 앞에 낱낱이 해체됩니다. 부르주아는 모든 관계와 제도와 가치를 ‘교환 가능한’ 가치, 쉽게 말하면 화폐로 환산이 가능한 가치로 대체했으며, 그 결과 모든 것이 교환가치 중심으로 돌아가는 새 시대가 온 것이라고 저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부르주아의 혁명이 만든 새 체계는 또 다른 계급 체계를 만들어내는데, 바로 프롤레타리아입니다.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여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피지배 집단입니다.
프롤레타리아의 범위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넓어질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소자본가, 중소 상인들은 자본의 집적이 강해지고 그 영향력이 넓어질수록 얻을 수 있는 이윤이 줄어들어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게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방대해진 프롤레타리아는 결국 부르주아와 필연적으로 대립하게 되고, 이 대결의 끝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에 의한 승리가 될 것이라고 책은 주장합니다.
제2장은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비로소 저자들은 『공산당 선언』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킵니다. 앞 장이 당시 세계에 대한 진단이었다면 제 2장은 그 시대 속에서의 공산주의자를 규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2장의 내용은 주로 시사적인 내용들이 많습니다. ‘공산당은 모든 소유를 없애려는 집단이다!’라는 비판에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를 폐지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심지어 부인도 공유하려 든다!’는 비난에 ‘이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부르주아는 예전부터 여성을 단지 도구로만 대했다’고 맞받아칩니다.
3장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문헌」에서는 이른바 사회주의의 테두리 안에 포함되는 제반의 정치적 흐름들이 공산주의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합니다. 당시 초기 자본주의가 과다한 발전에 의해 많은 모순점을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나왔는데, 저자들은 이 다양한 흐름들 하나하나를 비판하고 따지고 들어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가장 유력한 대안임을 주장합니다.
부르주아에 반대하는 기존 귀족들의 봉건적 사회주의, 소멸해가는 소공업 중심의 소부르주아들이 외치는 사회주의, 관념론에 빠져 단지 정치적 소비에 그칠 뿐인 독일 사회주의, 부르주아 일부 계층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 보완을 위해 들고 나온 부르주아 사회주의, 평화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공상적 사회주의 등 각각의 대안들에 대해 저자들은 하나하나 모순점을 짚고 비판을 가하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의 장점을 부각시킵니다.
4장은 당시 유럽 각 지역의 공산당들이 실질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정치적 지지 입장을 보여줍니다. 아직까지 당세가 튼튼하지 못했던 유럽의 공산당 조직은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나서기 힘든 각각의 흐름들 속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과업을 수행해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를 통해 저자들은 공산주의 운동이 ‘현존하는 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라는 포괄적 범주로 묶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근본적인 공산주의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함으로써 각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일종의 강령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현재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짚고(1장), 그 속에서 피지배계급을 위해 일하는 공산당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2장), 반자본주의의 수많은 흐름 속에서 공산주의의 차별성을 설명하고(3장),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에 대한 지침을 말하는(4장) 흐름은 전형적인 정치 팸플릿입니다. 『공산당 선언』은 그 분량이나 구성, 엄밀성 등의 면에서 사실 책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위치이며 오히려 정치 팸플릿에 더 걸맞습니다. 애초에 작성 자체가 팸플릿으로 된 거니 오히려 그 팸플릿을 후대 사람들이 책으로 읽고 있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습니다.
『공산당 선언』은 2008년 벽두에 지금의 시사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무척 새롭고 재미있는 책으로 다가옵니다. 놀랍게도 1848년의 이 선언은 100여 년이 흐른 지금의 자본주의 상황에 상당히 부합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자본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자유를 추구하게 될 것이고, 이 자유는 인간의 자유가 아닌 자본과 상품 거래의 자유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자유는 박탈될 것이라는 예언들은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국제 경제체제의 흐름과 동일합니다. 또한 그 역풍으로 나타나는 비정규직 증가, 고용불안, 사회 양극화까지도 책과 지금의 현실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막 대선이 끝난 지금, 더더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로의 변화를 강력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새 정권의 흐름은 마르크스, 엥겔스의 자본주의 진단이 보여주는 암울한 문장들을 더욱 우리 삶의 현실로 당겨오게나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두텁게 만드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옳다 그르다’를 논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 적어도 『공산당 선언』이 예측했던 자본주의의 현실이 다시금 재현되는 움직임을 읽고 나면 이러한 걱정은 쉽사리 피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일개 정당의 정치 노선에 대한 설명이 인류의 고전으로 남을 정도로 명쾌한 통찰을 담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정치 현상을 돌이켜 볼 때 씁쓸하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정확히 짚어내고 해법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공산당 선언』쯤의 고전 하나는 나올 만하지 않겠습니까.
1800년대의 정치운동에 관한 길지 않은 팸플릿 한 권이었지만, 『공산당 선언』이 시대를 넘는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의 사상이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00년대의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했지만, 그 해법은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 변화에서부터 시작된 추적에 근거했고, 그랬기에 시대와 공간을 넘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근거와 방대한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한 엄밀한 논문이 아님에도 짧고 쉬운 문장 속에 강렬한 함의를 포함한 『공산당 선언』은 인간의 삶과 학문이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준 저작으로 남았으며, 바로 그 점이 독서를 삶과 떨어뜨리지 않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이자 기폭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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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