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만화이야기
힘을 가진 자의 욕망 - 『정크』
아사미야 키아가 『정크』에서 말하는 것은 힘을 가진 자의 욕망이다. 그들의 욕망에 따라 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다. 힘은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웅이라면 당연히 세상을 뒤흔들 만한 지략이나 ‘힘’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략이나 힘이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쓸 능력이 없다면 오히려 해악만 끼치게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히틀러 같은 인물. 그 역시 대중을 장악하고 선동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를 역사책에서 영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영웅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개는 그를 영웅이라 부르기를 주저한다. 그것은 히틀러가 자신의 힘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썼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서.
『사일런트 뫼비우스』의 아사미야 키아가 『정크』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점이라고 한다. “사람의 것이 아닌 힘을 얻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수많은 힘 중에서 익명성이라는 것이 가장 큰 힘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힘을 가진 누군가는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힘을 부여한 자를 제외하고는.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면, 아무도 그의 힘에 간섭할 수 없다. 국가기관에게 권력을 주는 것은, 그것이 국민에 의해 통제가 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힘을 받은 사람이 정의감이 없거나 그저 어린애 같은 인물이라면?
사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등 슈퍼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악당들이 대부분 그런 인물이다. 우연히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 힘을 타인을 위해 쓸 생각은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돈을 벌거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힘을 남용하게 되는 것이다. 스파이더맨도 그랬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 ‘거대한 힘에는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명심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 『정크』에서 초인이 된 소년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힘을 쓴다. ‘나는 신’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묻는다. 신에게도 두 타입이 있다. 하나는 자신만을 위한 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한 신. 그중에서 무엇이냐고. 자신을 위한 사람이라고 답하자 대답이 돌아온다. “그걸 사람들은 악마라고 부르는 거야.”
고등학생인 히로는 이지메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 학교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힌 은둔형 외톨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JUNK 프로젝트 모니터를 모집한다는 것을 보고는 응모를 한다. 그리고 택배로 날아온 것은 초인이 되는 슈트였다. 초인이 되어 처음으로 한 일은 동네 편의점 앞에 몰려 있던 불량배들을 때려눕힌 것. 힘을 확인한 후에는 자신을 괴롭혔던 동급생들을 찾아가 역시 폭행을 한다. 그런데 경찰에게서 도망치다가 집으로 돌아간 히로는 그만 자기 집을 폭파시켜 버린다. 부모님도 함께 죽어버리고. 혼자가 된 히로는 학교에 나가지도 않고, 보험금으로 유유자적하면서 ‘영웅 놀이’를 하게 된다.
아사미야 키아는 『정크』에서 ‘아무도 그리지 않았던 영역, 그때까지 누구나가 무시해온 환경’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곧 진짜 영웅이 아니라, 어린애 같은 영웅을 말한다. 이름은 ‘영웅’이지만, 히로는 그저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인간이다. 크게 사악하거나,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심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사소한 욕망을 해결하는 일에만 쓸 뿐이다. 자신을 괴롭힌 놈들에게 복수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나 여자애를 괴롭히는 악당을 처벌하고, 자신의 비밀을 폭로한 주간지에 찾아가 박살을 내버린다. 심지어 자신에게 악플을 남긴 어린애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른다. 분명한 악당이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이건 정말 민폐다. 오로지 자신만이 옳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무시해버리는 전형적인 소아병적인 인간인 것이다.
『정크』는 소아병적인 히로를 중심에 놓고 사건을 전개시킨다. 정크 슈트를 입은 사람은 히로뿐이 아니다. 히로의 슈트는 검은색이고, 히로와 달리 사람들을 돕는 여인은 흰색의 슈트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나쁜 놈들을 무차별적으로 뭉개버리는 붉은 정크가 등장하고, 다시 그들이 시작품이라며 일축하는 파란 정크도 나온다. 그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주어진 힘을 자기 방식대로 사용한다. 아사미야 키아가 『정크』에서 말하는 것은 힘을 가진 자의 욕망이다. 그들의 욕망에 따라 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다. 힘은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히로의 모습을 통해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결여된 것, 과잉된 것은 무엇인지를 말하려 한다. 히로의 카운슬러 역할을 하던 남자는 히로를 떠나면서 하나의 충고를 남긴다. “좀 더 밖에 나가. 외출하란 의미가 아니야. 마음으로 바깥세상과 접촉하라는 거다.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가라는 의미야.” 그건 세상과 만나고, 자신이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이야기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실하고, 자신만이 현명하다고 믿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말. 세상 속의 자기 자신을 깨달아야만, 힘이란 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이다. 아무리 작은 힘일지라도.
3,420원(10% + 1%)
3,420원(10% + 1%)
3,420원(10% + 1%)
3,420원(10% + 1%)
3,420원(10% + 1%)
3,420원(10% + 1%)
3,420원(1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