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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속의 영웅이 아닌 현실의 영웅을 기다리며

진정한 영웅의 전설은 과거 속의 영웅담을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라,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내일의 전망을 꿈꿀 수 있어야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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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의 출현에 열광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사는 시대에 영웅이 없다는 역설적 증명이다. 어려운 경제상황, 어지러운 정치현실, 우리 것과 남의 것이 뒤섞여 좀처럼 그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문화적 상실감에 놓여 있는 대중의 심리적 불안은 영웅(또는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희망 없고 고단한 현실은 종종 위대한 영웅의 시대를 갈망하게 하고 드라마는 그런 대중의 심리를 파고든다.

요즘 같은 대하사극의 열풍이나 <주몽> 같은 퓨전사극의 성공은 바로 그런 대중의 심리적 불안과 대리만족체험에 힘입은 바 크다. ‘사극은 대중이 꿈꾸는 역사를 만족시켜주기도 하지만 못난 오늘을 보상받으려는 측면을 가진다’는 어느 기자의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지리멸렬한 오늘의 일상이, 갑갑한 대중의 삶이 영웅을 소환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극열풍에 대하여 필자가 쓴 기사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위 칼럼에서 필자는 사극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과 매체의 영악스런 제작 현상을 우리 사회의 보수화와 관련지어 ‘반동의 미학’으로 풀이한 바 있다. 지난 23일, <주몽>과 <연개소문>에 이어 위 칼럼을 쓰게 했던 한 영웅(<대조영>)도 우리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역사에 위대한 영웅의 시대를 열었고 그 시대를 지탱하기 위해 피의 숙청을 서슴지 않았던 영웅에 이어, 비록 나라의 이름은 달리했을망정 그 시대를 다시 열었던 영웅마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의 새로운 영웅을 갈망하며 선거라는 의식을 치렀다.

비록 필자의 선택은 아니었으나 대한민국호의 내일을 책임질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으로 정해졌다. 그 많은 소문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실의 권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대가 그를 택했기 때문이다. 야당의 비난대로 국민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세계가 진보의 전망보다 보수의 안정 속에서 굳건한 골격을 키워온 탓도 있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는 열렸다.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영웅이 되고 아니 되고는 온전히 당선자의 몫이다.


역사란 것이 과거 속에만 파묻혀 있을 때, 그것은 화석이거나 세월 속에서 풍화된 희미한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란 그가 지나온 시대로부터 걸어 나와 현재와 만날 때 진정한 역사가 되는 법이다. 때문에 필자는 드라마 속의 시간과 드라마 속의 영웅들이 펼치는 무협의 세계에 대하여 언제나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다. 무협의 세상이란 늘 과거 속의 초인과 이상이 그려지는 닫힌 세상인 까닭이다. 무적의 신공은 늘 까마득한 상고의 비급으로부터 나오고 영웅은 언제나 온갖 기연 속에서 천인의 출현으로 나타나지 않던가.

그것은 신화의 세상이지 현실의 반영은 아닌 것이고, 따라서 그 안에 역사는 없다. 수백억 원의 제작비와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한 <태왕사신기>가 재미는 있을지언정 감동이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안에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국세(國勢)를 떨치며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던 시대의 영웅이 한갓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그려진 드라마 속에서 대왕은 하늘이 점지한 신물의 우연한 습득자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역사의 위대한 영웅은 보이지 않고 희화화된 ‘운 좋은’ 한 사람만이 거기에 있다. 다시 지난 칼럼의 결론을 보자.

드라마 속의 영웅이 신화 속의 인물과 꼭 같이 그려질 때, 우리처럼 웃고 울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러다 다시 일어서는 인간이 아니라 애초부터 특별한 권능을 가진 초인으로 그려질 때 우리는 현실의 멍에를 잠시 내려놓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벗어던질 힘을 가질 수는 없다. 한계를 미리 체념한 인간에게 내일의 전망은 없다.

열린 세계로의 진전을 가로막은 채 닫힌 과거에서 위안을 구하는 영웅의 도래를 우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부대끼는 일상을 잊게 해주는 대리인으로서의 영웅은 반갑지 않다. 힘겨운 일상에서 다시 일어설 기운을 차리게 해줄 영웅이 필요한 시대임에도 사극의 영웅들은 어쩐지 미덥지 못하다. 대중의 진정한 욕구는 판타지 속의 영웅이 아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영웅은 <하얀 거탑>의 장준혁처럼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 현실의 영웅이 아닐까.

그러나 사극에서는 영웅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말갈기를 휘날림에도 불구하고 열린 세상으로의 활시위는 당겨지지 않는다. 그들의 들판에는 닫힌 과거에서 날아온 돌멩이만 흩어져 있다. 신화는 있으나 역사는 없기 때문이다. 신화는 위안일 뿐 용기를 주지 못한다. 드라마는 보수와 앙시앵레짐으로 우중을 현혹하고 뉴스에서는 연일 그 아이콘들이 오르내린다. 반동의 바람은 세차고 깃발은 우측으로만 나부낀다.


이 칼럼을 쓰던 봄에 필자는 우리 시대의 선택이 누구인지 이미 알아차렸다. 그것은 필자가 뛰어난 안목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 시대의 대중이, 우리 시대의 갈증이 어디에 있는지를 안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이란 단순하다. 당장의 목마름을 참을 줄 모른다. 사막을 걸으며 그 갈급함을 해결해줄 한 모금의 물이면 족한 것이지 저 멀리 있는 오아시스를 위해 조금 남은 물을 아끼려는 대중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왜곡된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숱하게 당하고 속은 우리에게 미래의 가치란 현실의 고통을 참게해 줄 그 무엇도 아니다. 대중에게 정치란 신기루를 파는 약장수의 외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발 빠른 매체는 대중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누구보다 일찍 눈치 채었고 그것이 오늘날 사극 열풍을 불러온 하나의 이유다.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사극이 대중에게 남기는 것은 가장 비정치적, 몰정치적인 감상의 자투리뿐이다. 권력을 둘러싼 격한 당쟁과 음모 속에서 사극의 긴장은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우중은 어느새 어느 한 편의 지지자로 전락해있다. 옳고 그름의 냉정한 판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세되어 있고 (작가 혹은 제작자가 의도한) 어느 당사자의 편에 서서 슬퍼하고 분노하고 의기양양해하는 우중만이 TV 앞에 앉아 있다.

물론 극(劇)이란 상상력의 소산인 것이지 역사의 기록은 아닌 것이다. 《세조실록》에 등장하는 내시 김처선이 성종의 애첩과 사랑을 나눈 것 등이, 어차피 역사의 가공이란 극의 상상력을 인정한 마당에서 시빗거리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인용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사극 속의 시간 안에서 등장한 영웅이 불러오는 반동의 바람이다. 내일의 당찬 기상을 그렸음에도 과거이기 때문에 편안해지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기보다는 과거의 영화 속에 안주하고픈 마약 같은 일상의 중독성이 필자는 두려운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읽기를 겨우 끝마친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의 저자는 제목과 달리 조선이 결코 이 씨의 나라가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군약신강’으로 요약되는 조선의 정치에서 애초부터 왕권이란 허울뿐이었고 신권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맹자의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한 성리학의 조선은 결코 왕의 나라가 아니었다. 살벌한 피의 숙청에서 겨우 유지된 태종과 세종의 시대나 경제적 활성이 두드러졌던 외적 요인에 의해 겨우 안정을 유지했던 성종의 시대 등 몇몇 군주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조선은 신권이 통치하는 신하들의 나라였음을 위 책의 저자는 조목조목 밝힌다.

저자의 주장을 읽다 보면 500년을 지탱한 조선의 역사가 오히려 기이하게 느껴진다. 거꾸로 ‘그렇게 패망의 병인(病因)을 이미 몸속에 지니고 태어난 조선이란 나라가 어떻게 500년 사직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필자는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의 궁색한 결론은, 그럼에도 왕권의 존재다. 정도전이 뼈대를 잡고 조광조 이후 퇴계 율곡에 의해 정립된 신권통치의 이상은 오직 그것을 통해 입신양명을 꾀한 사대부들의 것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민초들의 가슴에는 늘 왕에 대한 충성심과 무한한 존경심이 살아 있었다. 백성들은 신하들의 가렴주구와 학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통치하는 영웅으로 왕을 모시고 살았기에 500년 사직은 건재할 수 있었다. 왜란(『불멸의 이순신』 등)과 호란(『남한산성』 등), 외침에 의해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피난하는 왕을 조소하며 돌멩이를 던졌을지언정 왕을 버리지 않았고, 왕의 나라가 패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많은 민란 속에서도 왕을 부정하거나 왕권을 참칭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혹여 새로운 건국의 깃발을 나부낀 역성혁명의 음모가 있었을지라도 그것이 곧 그 모의의 참담한 실패를 불러왔다.


현명한 군주이거나 유약한 우군(愚君)이었거나 백성들에게 왕은 그들 세상의 영웅이었고 그렇기에 백성들은 패악한 세월을 참아낼 수 있었다. 또한 간간히 등장하는 영명한 군주의 출현은 모진 세월 속에서 태평세를 꿈꿀 수 있는 위안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정조의 암울한 세손 수업기를 그리고 있는 <이산>의 사극적 가치는 초인의 일생을 그린 여타 다른 사극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아비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할아버지의 냉혹한 시험과,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노론 벽파의 암살 시도 속에서 제 목숨 하나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 전전긍긍해야 하는 인물인 것이다.

필자는 이산을 통해 과거 속의 영웅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게 될 영웅을 꿈꾼다. 모든 것을 갖춘 초인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서 살아남기에도 힘에 겨운 세월을 견디어야 하지만 그 험악한 세월 속에서 내일의 이상을 위해 자신을 단련해가는 살아 있는 영웅을 만난다. 범부와 다를 것이 없는 처지에서, 그러나 범부와는 다른 자신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기에 갈등하고 고뇌하고 웅자를 키우는 그를 사랑한다. 역사로 남은 그의 개혁 정치를 이미 알아서가 아니라, 저자거리의 백성만큼이나 어려운 시기를 견디어야 하기에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그와 함께 모략의 월요일과 화요일을 산다.

우측으로만 세차게 부는 반동의 바람은 좌편의 사람들이 스스로 쌓은 자만과 실정의 장벽 탓이다. 좌측으로 건너가려는 포구의 뱃길을 끊은 것도 이미 좌안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편협함 탓이다. 할 수 없이 남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폭은 적을 수밖에 없다. ‘바보’였기에 영웅이 되었던 현대의 온달은 바보 같은 정치로 실패자가 되었다. 적어도 선거의 결과만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위대한 패배자』란 책에서 보듯 실패하였으나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위대한 실패자도 있는 법이다.

다만 간절히 바라건대, 내일의 권력이 된 그 사람이 지난 과거의 짐을 벗어버리고 이 땅에 현실의 영웅이 될 날을 기원할 뿐이다. 진정한 영웅의 전설은 과거 속의 영웅담을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라,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내일의 전망을 꿈꿀 수 있어야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영악하여 언제 변심할지 모른다. 우리의 선택이 현실의 영웅이 될 때, 누구나 편안히 사극 속의 영웅과 만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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