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전국의 큰 공연장들은 유명 가수들로 꽉꽉 들어찬다. 그리고 그 유명세와 가창력, 공연장에서 흡인력의 정도는 다름 아닌 객석을 메운 관객의 수효와 반응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올 크리스마스에 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공연은 어떤 무대일까? 단연 몇 주째 티켓 예매율 1위를 차지했던 이소라와 성시경의 <센티멘탈 시티>가 아닐까.
지난 2003년, 발라드계를 대표하는 이소라와 박효신이 처음으로 하모니를 이루며 파란을 일으켰던 공연 <센티멘탈 시티>. 4년 만에 다시 마련된 올해 무대에는 뜻밖에 이소라와 성시경이 입을 맞췄다. 왜 뜻밖이냐고? 글쎄다. 일단 앨범에도 수록곡이 있을 정도로 이소라와 박효신 조합이 너무 각인된 탓도 있겠고, 이소라와 성시경은 장르는 같은 발라드지만 음색이나 분위기, 스타일까지 너무 다르다는 선입견도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팬들은 궁금해 했다. 이소라의 짙은 애절함과 성시경의 부드러운 감미로움이 만나면 과연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낼지 말이다.
무대가 마련된 체조경기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굉장히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무대 뒤편에는 이소라 공연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세션들과 현악 팀까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을 사로잡는 것은 LED로 접하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영상들. 마치 뉴욕의 밤거리를 옮겨 놓은 듯한 영상은 사랑, 낭만, 발라드, 캐럴, 눈, 도시 등의 단어를 마구 흩뿌리고 있다. 그리고 뮤지컬 무대처럼 마련된 두 개의 테라스를 통해 드디어 성시경과 이소라가 각각 모습을 드러낸다.
첫 곡은 이소라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성시경이 부르는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는 어찌나 감미로운지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다. 계속해서 성시경의 ‘희재’, 이소라의 ‘제발’이 이어진다. 오, 발라드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두 가수가 만들어내는 그 음색의 촉촉함에, 그리고 호소력에 몸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다. 분위기가 전환돼 무대에는 센티멘탈 바가 자리하고, 이소라는 ‘고백’과 ‘그대와 춤을’을 재지한 느낌을 살려 노래한다. 이어서 빨간 카디건을 걸치고 나온 성시경. ‘좋을 텐데’와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를 부르며 탭댄스까지 선사하자 객석은 폭발 직전이다.
이렇게 무대는 두 사람의 설레는 만남과 달콤한 사랑, 그리고 이별과 분노로 테마를 바꿔가며 꾸며진다. 죽을 듯한 아픔의 이별에서는 이소라의 ‘난 행복해’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성시경의 ‘넌 감동이었어’와 ‘차마’가 울리고, ‘blue sky'와 ‘운명’ 등으로 이어진 터질 듯한 분노에서는 이소라 식의 록이라고 할까? 그녀는 포효하는 듯한 격한 감성으로 객석을 그대로 장악해버렸다.
드디어 팔짱을 끼고 함께 무대에 나타난 이소라와 성시경. ‘청혼’을 부르며 어설픈 춤으로 몸치의 극치를 보여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들은 공연이 시작된 지 1시간 30분 만에 처음으로 노래가 아닌 말을 했다.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며. 더불어 ‘커플들이 많은데 이별노래가 들을 만하냐’는 우스갯소리도 건넨다.
이소라와 성시경은 각각의 빛깔이 다른 만큼 서로의 노래를 배워보는 시간도 마련했다. 대뜸 자신의 노래는 모두 자기 얘기라며, 만날 차기만 하는 성시경이 이런 자기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며 이소라가 시비를 건다. 입담으로는 뒤지지 않는 성시경. 자기 마음을 열면 자신을 밟고 지나간 많은 여성들의 발자국이 있단다.
그렇게 성시경이 이소라의 ‘믿음’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소절도 부르지 않아 이소라는 왜 이렇게 가볍냐며 꾸짖는다. 가사를 음미하라고, 사랑은 비극이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결국 성시경의 입에서 ‘오늘 공연이 센티멘탈 열반이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자, 이제 이소라가 성시경의 노래를 배워볼 차례. 이소라는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를 노래한다. 그녀는 자신은 이런 사랑의 감정이 익숙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누구보다 귀엽고 앙증맞게 노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인디 영화 <원스>의 ‘falling slowly’를 정말 근사한 하모니로 선사했다.
이제 관객과 하나 되는 시간. 성시경은 모두들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공연장의 열기를 전하라고 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눈을 부릅뜨면 성시경의 땀구멍까지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무대와 가까웠는데, 나의 동행인이 팔을 번쩍 쳐든 바람에 성시경의 눈에 띄었고, 급기야 성시경이 그 휴대전화를 들고 노래를 하지 않았겠는가. 가문에 길이 남을 일이다. 한편 무대 앞쪽으로 나온 이소라는 관객과 함께 ‘처음 느낌 그대로’를 불렀다. 모두들 느낌을 충분히 그러모아 정성스레 자신의 추억과 아픔을 더듬을 수 있도록.
무대는 급기야 달리기 시작해 성시경은 ‘미소천사’를 부르며 객석을 누볐고, 다시 이소라와 함께 선 무대에서는 ‘It's gonna be rolling’으로 화끈하게 마무리했다. 하늘에서는 화려한 폭죽이 터졌고, 조명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으며, 성시경의 눈에는 감동의 눈물이 그렁거렸다. 센티멘탈 시티.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는 무대였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두 사람이 ‘잊지 말기로 해’를 노래했는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전반적으로 이소라와 성시경의 음색이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이소라의 지적대로 그녀의 감성은 너무 짙고, 성시경의 음색은 너무 감미로웠다. 그래서 언뜻 들으면 멋지지만 계속해서 조금 겉도는 듯한, 서로 불편해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는 감출 수 없었다. 또 체육관에서 서로의 노래로 레퍼토리를 이어가다 보니, 단독 공연에서처럼 그들의 감성에 깊숙이 빠질 수 없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차라리 좀 더 낭만적인, 포근한 사랑의 노래가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이 이번 공연은 굉장히 멋졌다. 두 가수의 존재감과 멋진 노래, 화려하고 세련된 무대와 색다른 연출, 갖은 퍼포먼스와 특수효과는 모두의 감성을 풍성하게 어루만졌다. 조금은 심장이 딱딱한 사람도 사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연말이다. 어떤 빛깔의 사랑이든, 모두에게 사랑이 가득한 센티멘탈 시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