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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맞는 지도자를 선택하라"

탁월한 평전작가 게리 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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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학자 게리 윌스(Garry Wills, 1934- )는 매우 뛰어난 전기작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안인희 옮김, 푸른숲, 2005)는 그 좋은 보기다.

문화사학자 게리 윌스(Garry Wills, 1934- )는 매우 뛰어난 전기작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안인희 옮김, 푸른숲, 2005)는 그 좋은 보기다. 옮긴이가 지적한 대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따져보면 잘 모르는 유명한 사람의 하나”다.

나는 그에 대해 뭘 아는가? 다음 두 가지 정도다. 교부(敎父)철학자라는 것과 그의 『고백Confessiones』은 루소와 톨스토이의 그것과 함께 세계 3대 고백록이라는 거다. 또 가십(gossip)적으로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성모마리아, 맹모(孟母)와 더불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어진 어머니다.

『Confessiones』는 ‘증언’이다

게리 윌스는 나의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보잘것없는 사전지식에 교정을 가한다. 『Confessiones』는 ‘고백’이 아니라 ‘증언’이라는 거다. 『증언Confessiones』을 영어로 옮기면서 ‘고백(Confessions)’이라고 한 것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음역(音譯)이라는 얘기다. “이 영어 단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한마디 말로 하나의 신학 체계를 직관한 그 원래 의미의 복합성을 드러내주지 못 한다”라고 덧붙인다.

“‘콘피테리(confiteri)’란 동사는 어원으로 보면 ‘진술을 확인하다’ ‘증언을 확실하게 하다’ 등의 뜻이고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물건들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 증언된 것이 꼭 도덕적 진실일 필요는 없다. … ‘콘페시오(confessio)’라는 말의 의미 영역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용어는 ‘증언하다(testimony)’이다. 이 모든 것은 현대 영어의 ‘고백(confessions)’이란 말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여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회고록 『Confessiones』를 ‘증언(The Testimony)’이라고 번역한다. “내용을 잘못 안내하는 낡은 개념에 빠져드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의 충격을 견디는 편이 더 낫다.” 게리 윌스는 이렇게 말의 결을 세심하게 보듬지만, 정작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당시 지식인들의 국제공용어인 그리스어를 할 줄 몰랐다.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없을 때는, 부모와 당시의 보편적 관습이 지지하던 매질을 증오하였다. 채찍질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스어를 배우기를 거부하였다. 그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두들겨 맞으면서 공부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라틴어는 빨리 배웠다. 그의 “마음이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훗날 그리스어의 결핍은 그에게 심각한 제약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조차도 “자신에게 유리한 점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깊은 독창성은 부분적으로는 그가 다른 전통에 의존하지 않은 덕분에 나온 것이다.”

여기엔 그가 변방의 철학자라는 점도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인 누미디아(현재의 알제리)에 틀어박혀서 35년 동안 소박한 항구 도시인 히포 레기우스(Hippo Regius)의 주교 노릇을 하였다.” 당시 주교는 번듯한 직책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에만 700여 명의 주교가 있었고, 평균 일주일에 한 명씩 주교가 임명되었으니 말이다.

게리 윌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Varro)라는 지적인 속인을 일컬어 한 말은 그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지적한다. “그토록 책을 많이 읽는데도 그가 글을 쓸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게다가 글을 하도 많이 써서 그것을 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인문서적다운 리더십 책

나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에 관한 단순정보가 북아프리카 태생의 교부철학자보다 너덧 개 더 있을 뿐이다. 루스벨트는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고, 뉴딜 정책으로 경제대공황을 극복했으며, 네 가지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역설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나기 전, 연합국의 일원인 영국의 처칠 수상, 소련의 스탈린과 가진 회담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역시 게리 윌스의 교정을 받아야 할 처지다. “대공황은 뉴딜에 의해 실제로 극복된 것이 아니었다. 부담이 경감되고, 재건이 조금 이루어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뉴딜은 최소한 전쟁으로 세계가 완전히 변하기 전까지 국민들을 이끌고 가는 힘이 되었다.”

『시대를 움직인 16인의 리더』(곽동훈 옮김, 작가정신, 1999)는 나폴레옹에서 마사 그레이엄까지 16가지 유형을 통해 리더십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한 책이다. “리더십이란 (종종 목적을 위장한 채) 이끄는 사람과 (종종 저항하면서도) 따르는 사람간의 상호호혜적인 관계”다. 또한 “리더십은 항상 싸움과 분란을 포함”한다.

게리 윌스는 리더십을 떠받치는 세 기둥으로 지도자, 추종자, 목표를 꼽는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똑같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지도자란 자신과 추종자가 공유하는 목표를 향해 추종자들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리더십은 전적으로 당대 추종자들의 태도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

따라서 “추종자들이 지도자를 이해하는 것보다, 지도자가 추종자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법이다.” 존경, 모방심, 애정 등은 리더십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목표에 대한 동의”가 필수적이다. “추종자들은 지도자의 인격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따르는 것이다.”

이 책은 독특한 인물론이기도 하다. 게리 윌스는 “각각의 인물들과 대조되는 반대유형을 제시함으로써 그 인물을 정의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그를 선망한 자유주의자들이 그의 후계자로 여겼지만,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아들라이 스티븐슨과 짝을 이룬다.

“각 인물들의 전기(傳記)보다는 경력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지만, 내용은 의외로 풍부하다. 게다가 인문학의 향취를 물씬 풍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아들라이 스티븐슨을 조합한 ‘선거정치 지도자’ 편의 분량은 고작해야 20쪽 남짓이나 꽤 알차다. 서른아홉에 척수성 소아마비를 앓고 나서 루스벨트는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신체장애자는 고난과 전쟁에 맞서야 하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장애를 위안거리로 제공했다. “사람들은 그의 도드라진 이미와 그가 물고 있는 담배파이프, 마치 희망의 신호와도 같은 트레이드마크인 사람 좋은 미소를 보고 힘을 얻었던 것이다.” 반면, 민주당 진영 가톨릭 세력의 지지를 잃을까봐 스페인 내전은 수수방관한다.

“그에겐 자신만의 길이 있었고, 그 길은 남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길을 따랐다. 루스벨트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게 함으로써 스스로 이기는 사람이었다. 위대한 리더십이란 결코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지도자가 얻는 것은 추종자들로부터 빼앗은 것이 아니다. 지도자와 추종자는 모두 줌으로써 받는다.”

게리 윌스의 권고는 요즘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주문이다. “당신에게 맞는 지도자를 선택하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시대를 움직인 16인의 리더』가 역사를 이끈 리더들의 삶을 제대로 압축한다면, 『게티즈버그 연설, 272단어의 비밀』(권혁 옮김, 돋을새김, 2004)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전거가 되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의 연설을 보란 듯이 풀어낸다. “링컨의 연설문은 그것이 이루어낸 성과를 두고 비교하자면, 깜짝 놀랄 만큼 간략했다.”

사실, 링컨의 연설은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열린 ‘국립묘지 봉헌식’의 짧은 추도사였다. 메인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추도연설은 당대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맡았다. 그러나 에버렛은 링컨의 적수가 못되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문체의 혁명을 필두로 하여 여러 가지 혁명을 이끌어냈다. 에버렛의 강연은 그와 같은 연설이 무조건적으로 호응을 받던 시대의 가장 마지막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의 강연은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다.”

게리 윌스는 “링컨의 연설은 마크 트웨인이 20년 후에 완성하게 되는 모국어의 운율로 이동해가고 있음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묘지를 설계한 연방정부 관리를 불러 지형을 숙지하여 가장 적절한 연설 장소를 고르거나 봉헌식에 늦지 않게 하루를 앞당겨 출발한 링컨의 주도면밀함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게티즈버그 연설의 단순명쾌한 어귀들은 1850년대에 있었던 헌법개정과 관련한 토론에서 링컨이 완성시켰던 것으로 미국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토론을 통해 링컨은 가장 적확한 언어와 상상력과 신화를 찾아냈으며 게티즈버그에서 그것을 가장 간결한 형태로 구현해 냈던 것이다.

그의 ‘재정립’이라는 수수께끼를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그토록 매력적인 언어로 이룩한 대성공의 모든 요소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만 한다. 링컨 자신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수행되었던 문학적?지적 그리고 정치적 노력들이 그의 숙명적인 272단어들 속에 지적 혁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What Jesus Meant』(권혁 옮김, 돋을새김, 2007)와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What Paul Meant』(김창락 옮김, 돋을새김, 2007)에선 텍스트 해석을 통해 역사적 인물의 발언과 가르침의 진위를 가린다.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럼, ‘나쁜 소식 전달자’는 누구?

기만구조

내게 게리 윌스는 늦은 발견이다. 그는 매력적인 저자다.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감탄한다. 그의 풍부한 지성에, 번역문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눅진하고 차진 문체에, 무엇보다 진실과 정직함과 도덕성을 옹호하는 그에게. 그리고 그는 늘 내 무지를 일깨운다. 『교황의 죄Papal Sin』(박준영 옮김, 중심, 2005)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액턴의 유명한 공리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교황 절대주의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장상들이 강요하는 기만의 무게에 짓눌려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제들의 정직성에 보내는 존경의 표시이다. 그리고 또한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라는 호소이기도 하다. 나는 교황권이나 그 옹호자들 어느 쪽도 공격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 확실하게 드러나겠지만, 내가 받드는 영웅들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존 헨리 뉴먼 추기경, 액턴 경, 교황 요한 23세를 비롯하여 가톨릭 대열에서 진실을 이야기한 수많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흔히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한다. 이제는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평신도까지 포함하여 가톨릭인들 모두를 이 기만의 억압에서, 우리 시대에 은밀히 자행되고 있는 교황의 죄에서 해방시켜야 할 때이다. 이것은 오르카냐나 단테가 혹독하게 비판한 죄들에 비하면 눈에 잘 띄거나 포착되지 않고 극적이지 못하지만, 지성의 배신에서 비롯된 훨씬 은밀한 타락이다.”

2000년 6월 『교황의 죄』가 출간되자 게리 윌스에게는 교황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톨릭신자로 남아 있는 이유를 묻는 독자들의 질문이 쇄도한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게리 윌스는 2003년 8월 『내가 가톨릭인인 이유』(Why I am a Catholic)를 펴낸다. “이 책에서 그는 가톨릭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교회와 교황제도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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