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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탓하며 주저앉기엔 남은 인생의 기회가 너무 많다

위대한 뉴햄프셔 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양키’다. 1998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치적 인간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저항운동에 앞장서는 행동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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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해덕(정치행동주의자) - 도리스 ‘그래니 D' 해덕(Doris 'Granny D' Haddock)은 정치 행동주의자이자 연설가, 작가다. ’맥케인-파인골드‘ 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걸어서 5,100킬로미터에 이르는 국토 횡단을 하며 전국적으로 주목받았을 때 그녀 나이 89세였다. 당시 1,600킬로미터가 넘는 사막과 애팔래치아 산악지대를 지났으며 폭설이 앞을 가로막자 마지막 160킬로미터를 스키를 타고 이동해 워싱턴 DC로 진입했던 일화는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나이를 잊고 사는 그녀는 2004년엔 94세의 나이로 미 상원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아직도 아침식사 전에 3.2킬로미터씩 걷는다고 한다.

*

위대한 뉴햄프셔 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양키’다. 1998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치적 인간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저항운동에 앞장서는 행동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이 내 앞에 떨어지면 열심히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1998년, 여든여덟 살 때 나는 진짜 행동주의자가 되어 내가 믿는 것을 촉진시키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주도했다. 일개 계획을 현실로 만들 용기를 준 것은 평화 순례자(Peace Pilgrim)라는 ‘선배’ 행동주의자의 글들이었다.

사실 내 안에 행동주의의 씨앗은 훨씬 더 이전에 뿌려졌다. 1960년에 남편 짐과 함께 알래스카에서의 핵 실험 반대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핵 실험이 이루어질 경우 에스키모 마을이 파괴될 수도 있었다. 우린 그 마을에 직접 가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을 가졌다. 우리의 변호사 친구는 “전국적인 탄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주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우린 각 주마다 친척이며 친구를 샅샅이 찾아내어 전화를 핵실험 반대운동에 동참해달라고 말하면서, 그들도 주변 사람들한테 이렇게 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람들 사이로 핵실험 반대운동이 퍼져나갔고 결국 핵실험 계획은 중단되었다.

남편은 1993년 알츠하이머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몇 년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마지막 10년간을 혼자서 돌보느라 심신이 완전히 지쳐 있었던 것이다. 1998년 어느 날 《보스턴 글로브》에서 미국 정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코먼코즈(Common Cause, ‘공동의 대의’라는 뜻)의 논평을 읽었다. 논평에 따르면 두 명의 하원의원이 클린턴 대통령의 사인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법안에 슬쩍 추가 사안을 끼워넣었다는 것이다. 이 추가 사안으로 인해 500억 달러나 되는 돈이 특정 담배회사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고 코먼코즈에 전화해 논평에 나온 얘기가 사실인지 물었다. “당신들은 그 돈이 담배회사로 흘러가지 않도록 막을 수 없습니까?”라는 질문도 덧붙였다.

그들은 그 얘기는 사실이며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는 모를 일이라고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부패잖아요?”

아마도 내 순진한 말에 그들은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여 맥케인-파인골드(McCain-Feingold) 법안이 통과되게 해주세요. 그럼 그런 돈의 흐름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발의한 상원의원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맥케인-파인골드 법안은 정당이 이익집단으로부터 받는 정치 후원금인 소프트머니를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현직에 있는 의원들이 돈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코먼코즈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개인들도 정치자금 개혁 법안의 필요성을 지지했다. 유권자의 이익이 힘센 기업들과 이익단체의 돈과 힘 앞에서 유린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 거라면 할 수 있어.’ 하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에스키모 마을을 위해 일했을 때처럼 전국적 탄원 운동에 동참할 친구들을 찾아보았다. 상원에서 최대한 빨리 맥케인-파인골드 법안을 통과시키게 하자는 탄원서를 전국 각지에 돌렸다. 수천 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100명의 상원의원 모두에게 보냈다.

상원의원들은 “걱정하지 마라. 유념하겠다. 다음 회기 내에 맥케인-파인골드 법이 통과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판에 박힌 답장을 보내왔다. 하지만 다음 회기가 와도 의사진행 방해로 통과되지 못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 정치자금 개혁 법안은 항상 이와 비슷한 운명에 처하곤 했다. 통과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원의원들은 법안이 절대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맥케인-파인골드 법안이 통과되지 않자 나는 극도로 우울해졌다. 이웃에 살던 아들은 그런 내가 걱정되어 플로리다로 낚시여행을 가는데 같이 가자고 졸랐다. 마침 여동생이 플로리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 나서기로 했다.

플로리다로 가는 길에 한 노인이 작은 가방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말했다. “도대체 저 노인은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들은 “글쎄요, 다시 방랑의 길(On the Road Again)에 오르셨나 보죠.”라고 말하며 윌리 넬슨(미국 컨트리 음악의 대가로 그의 노래 가운데 ‘On the Road Again’이라는 곡이 있다 ─ 옮긴이)이 부른 노래의 첫 소절을 흥얼거렸다.

물론 아들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영감을 얻었다. “얘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여든아홉 살 먹은 노인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하지만 내가 걸어서 미국을 횡단한다면 국민들을 깨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늘 걷는걸요, 어머니.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죠.”

“아니, 목적이 있단다. 정치자금법 개혁 말이다!”

내 말에 아들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어머니는 내일모레면 아흔 살이잖아요!”

그렇지만 내가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결국 이렇게 말했다. “꼭 하실 거라면 훈련부터 시작하셔야 해요.”

일단 걸어서 국토를 횡단할 것을 결심하고 나니 두려움이 생겼다.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그렇게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플로리다에서의 휴가를 흘려보냈다.

뉴햄프셔로 돌아온 뒤 스크래블 게임도 같이 하고 교회에도 함께 다니는 친구에게 국토 횡단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때 그녀가 읽어보라고 추천해준 책이 『평화 순례자Peace Pilgrim』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평화 순례자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 역시 젊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28년간 4만 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 나는 즉시 그녀 얘기에 혹해서 며칠 만에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체력을 단련했는지 국토 횡단에 관련한 그녀의 전략을 듣고 싶었다.

평화순례자Peace Pilgrim

평화 순례자는 조 매카시(1950년대 초반 미국 정가에 반공선풍을 일으킨 공화당 의원─옮긴이)의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1953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이름도 나이도 알리지 않고 자신을 그저 평화 순례자라고 칭하며 평화를 기원하며 걸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안식처가 나타날 때까지 걷고 음식이 주어질 때까지 굶었다. 하지만 결국 종파를 불문한 여러 교회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단순한 철학이었다. 선으로 악을, 진실로 거짓을, 사랑으로 증오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작은 팸플릿 등을 제외하곤 책을 쓴 적이 없었다. 1981년 그녀가 죽고 난 뒤 사람들이 그녀의 생각과 경험을 한 권의 책에 모았다. 그것이 『평화 순례자』였다. 친구가 나에게 권했던 바로 그 책이다.

내게 특별히 위안을 준 구절이 기억난다. 어느 추운 밤 평화 순례자는 예기치 못했던 눈보라를 만나게 됐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어야 했고 거리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 다리에 이르게 되어 아래로 내려갔더니 신문지가 가득 찬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 신문지로 온몸을 둘둘 감은 채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존재는 아마 나도 보살펴줄 것이었다.

『평화 순례자』를 읽는 일은 나의 신념을 추진하고 구체화시켜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작 4,800킬로미터 아닌가? 그녀는 4만 킬로미터를 걸었다. 교회나 기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슬리핑백과 물병,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5킬로그램가량의 트레일 믹스(시리얼 바의 일종 ─ 옮긴이)를 넣은 13킬로그램의 배낭을 짊어지고 체력을 단련했다. 천천히 시작해서 조금씩 걷는 거리를 늘려나가 마침내 한 번에 16킬로미터씩 걸을 수 있게 됐다.

목표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나는 주목을 끌 수 있을 터였다. 아흔을 앞둔 나이에 혼자 국토 횡단에 나선 이는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주목하게 되면 맥케인-파인골드 법안의 국회통과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할 수 있므 것이었다. 상정만 됐다 하면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로 통과가 지연되는 제스처 정치를 중단시키고 싶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나와 같은 시민의 노력이 필요했다.

오랜 여행을 시작할 순간이 마침내 찾아왔다. 로즈볼(미국 최고 전통의 대학 미식축구 대회─옮긴이) 퍼레이드를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1999년 1월 1일엔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를 벗어났다. 그 다음부터는 14개월간 하루에 16킬로미터씩 걸었다. 돈도 없고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순례자처럼 떠돌았다. 코먼코즈가 도보 여행의 길목에 있는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내 결의를 알리며 회원들의 지원을 호소했다. 행복하게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많은 이들이 물을 가져다주었고 어떤 이는 음식을, 어떤 이는 잠자리를 제공했다. 어떤 이들은 나와 함께 걸어주었다.

패서디나를 떠난 지 1주일 뒤 사막에 이르자 문제가 생겼다. 배낭 무게 때문에 사막을 벗어날 동안 버틸 수 있는 양의 물을 가져갈 수가 없었다. 코먼코즈 애리조나의 지부장이자 후에 내 책의 공저자가 된 데니스 버크(Dennis Burke)가 작은 트레일러를 몰고 캘리포니아 29팜스에 나타났다. 제정신이 아닌 할머니가 사막을 건너려고 하는데 그냥 두었다간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 달려온 참이었다. 누군가 있어야 졸도해도 그나마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착해서 내게 말했다. “제가 당신을 뒤쫓으며 물을 대겠습니다. 밤에도 뱀들이 우글거리는 사막 땅에서가 아니라 캠프용 자동차 안에서 주무실 수 있습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시든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혼자 사막에 들어가선 절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나는 차량의 지원을 받을 생각이 절대 없었다. 아마 그가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면 그 제의를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이렇게 12개 주를 걸어서 횡단했다. 때로는 야영을 하고 때로는 가정집에 머물렀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이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말이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랏일이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얘기했다. 나를 본 많은 사람들이 내가 평화 순례자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와 함께 걷는 듯했다. 지금도 내 인생에 그녀의 영향을 느낀다. 나는 우리가 ‘영적 자매’라고 진실로 믿고 있다.

2000년 2월 29일 마침내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일부 의회의원들을 포함한 2,000여 명의 사람들이 나를 맞이해 의회의사당 건물까지 에스코트해주었다.

내 걷기 여정으로 인해 맥케인-파인골드 법안이 유명해지면서 워싱턴 정가는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내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 후 2년간 법안 통과를 위한 로비를 계속했다. 드디어 2002년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상원에서 법안에 대한 투표가 이뤄진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제 공은 이를 발효시켜야 할 의회로 넘어왔다. 의회가 법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기 전날 나는 또 한 번 비록 짧은 거리지만 걸었다. 법안을 발의한 상원의원 존 맥케인과 러스 파인골드는 나와 함께 걸어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표를 만났다. 파인골드는 민주당, 맥케인은 공화당 소속이었다. 그것은 이 법안이 초당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날마다 의회의사당 건물 주위를 걸었다. 마지막 나흘간은 두 시간마다 10분씩 쉬어가며 밤낮없이 걷기를 계속했다. 의원들도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기 위해 나는 걸었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불행하게도 최종안은 끔찍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내가 갖은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 법안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내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겐 열여섯 명의 증손자가 있다. 내가 계속 이 일에 매달리는 것은 그 아이들을 위해서다. 우리 손으로 뽑은 의원들이 기업과 이익집단의 금권으로부터 독립하여 바른 행정을 펼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아이들을 살게 하고 싶어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미국을 향해 선거 자금의 공적 조달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해왔다. 내가 쓴 『그래니 D: 작은 지옥을 드러내기에 너무 많은 나이란 없다Granny D: You're Never Too Old to Raise a Little Hell』라는 책은 이 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를 확립하기 위해 시작한 국토 횡단과 투쟁의 기록이다. 이 책은 요즘 ‘파워 오브 원(한 사람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대학 교재로도 쓰인다고 한다. 강연을 할 때마다 나는 평화 순례자를 언급한다. 그녀는 ‘파워 오브 원’의 가장 훌륭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할 용기와 영감을 준 그녀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쳀상으로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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