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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다가오는데 대통령은 없다 - 영화 <불워스>
우리의 세상은 늘 그렇게 절망의 나락에서 오르려만 하다가 떨어지고 마는 것인가. 우리의 정치는 더욱 그래서인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자의 입에서는 영화의 주인공 불워스가 말하는 꼭 반대의 말들만이 들린다.
2002년은 우리 역사에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된다.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더불어 한국축구대표팀이 이룬 세계 4강의 기적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며 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이 내지른 함성에 반세기 내내 우리의 정신을 옥죄었던 붉은 공포는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그뿐인가. 이념의 허상이 무참히 깨어진 순간, 남도로부터 불어온 세찬 바람에 정국은 요동쳤다. 이른바 노풍(盧風)이다. 그해 월드컵을 차지한 브라질 대표팀의 상징색은 어느새 노무현 대선후보의 상징색이 되어, 때 아닌 노란 단풍잎으로 방방곡곡에서 물결쳤다.
얼마간의 변수에 불과하였던 ‘바보 노무현’은 가능성을 넘어 실제의 현실이 되었다. DJ의 적자를 자처했던 한화갑도, 한때의 회오리에서 태풍의 눈으로 변신했다 여겨졌던 이인제도 노란 바람의 위세에 나가 떨어졌다. 그해 12월 19일, 감히 넘볼 수조차 없으리라 여겨졌던 수구보수의 견고한 아성은 마침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회창의 대세론은 실종되었고 노무현의 눈물에 이회창은 처절한 분루를 삼켜야 했다. 그때의 한이 얼마나 컸으면, 오늘날 노구의 이회창은 제 집을 뛰쳐나온 탕아 소리를 들으면서도 꼴찌 기호 12번을 달았겠는가.
그렇게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에게 개혁이라는 것,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었다. 그리고 믿었다. 그가 그동안 우리네 서민들의 응어리진 울분과 소외로부터 통쾌한 해방감을 선사해주리라,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해주리라 기대하였다. 때문에 그가 한때 기득권과의 외로운 싸움 끝에 탄핵을 당했을 때, 너도나도 촛불을 들고 밤바람 차가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관행처럼 굳어진 여소야대의 정국을, 여대야소의 안정적인 국회의석으로 돌려주었다. 함량미달이 불을 보듯 뻔한 인사일지라도 그가 열린우리당의 후보라는 사실만으로 그를 국회로 보내주었다.
노무현 브랜드의 실패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작금의 현실은 참담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대는 무너졌고 신뢰는 뭉개졌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튼 참여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냉담하다 못해 싸늘하다.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라는 근거 없는 원망이 어떤 진실보다 설득력을 가지고 인구에 회자되고, 그것이 참인 것은 추호의 의심을 요하지 않는다. 괜히 따지자고 들기라도 하면 그자는 왕따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참여정부에 ‘참여’가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왜일까?
노무현은 그 이름이 곧 브랜드인 정치상품이었다. 유신과 5공의 암흑의 시대를 지나며, 문민과 국민정부의 예전과 별다를 것이 없는 부정의 양태를 목도한 국민들에게 노무현의 정치행적과 무모한 실패의 집념은 새로운 상품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그는 또한 선각자였다. 어디에 국민의 응축된 분노가 폭발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미리 내다본 선각자였다. 인터넷이라는 무형의 도화선에 불꽃을 지핀 이가 바로 그였다. 국민은 폭발했고 그것은 노풍이 되어 전국을 휩쓸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으나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자 또한 그대로 끝이었다.
정치란 종합예술이란 사실을 그는 몰랐거나 일부러 모른 척했다. 상품이란 것이 하나의 기능성만이 우수해서 훌륭한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소홀히 했다. 모름지기 명품이란 우수한 기능성에 빼어난 디자인과 소재의 견고성 등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해야 함은 물론, 시대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예술적 감각을 겸비해야 한다. 한때 그의 투박한 웃음과 정제되지 않은 달변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졌다 해서 언제까지 그 상품이 잘 팔린다는 보장이 없는 냉정한 시장의 법칙을 그는 깨달았어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은 그렇지 못 했다.
그는 예전의 노무현표만을 고집했다. 혹자는 참여정부를 좌파라고도 하고 혹자는 보수우경화한 배신의 정부라 혹평한다. 진보와 보수(과연 우리의 정치세력들이 이러한 가름에 합당하냐 하는 것에는 의문이 들지만) 양편 모두가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와 그가 꾸민 정부는 오로지 노무현식 정부요 정치였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과 연장, 한미FTA의 졸속 추진과 체결 등등 노무현의 우군이었던 진보진영에서는 날선 비판이 토해졌다. 북핵 실험의 여파로 다시 도마 위에 오른 퍼주기 지원 논란과 대북정책의 실효성 문제, 작전권 환수 등의 안이한 안보인식 등등 보수 진영 또한 전쟁이라도 난양 연일 성토를 멈추지 않았다.
비정규직의 양산과 KTX 승무원 문제에서 보듯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노동정책과 원칙, 분양원가 공개의 공약을 스스로 깨버리는 무책임한 통치행태와 그에 따른 자가당착의 변명논리, 한나라당과의 연정제안 등 예측불가능, 책임실종형 방임정부와 (변양균 실장 같은) 자기 사람에 대한 무모한 과신과 집착, 마지막 권부로 남은 언론의 폐해를 바로잡겠다며 그 언론 못지않은 폐해를 스스로 자초하는 막말 시리즈와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닫는 기자실 통폐합 조치…. 오직 노무현식 정치라 할 수밖에 없는 통치행태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정치의 소비자인 국민과 그 소비처인 세상이라는 시장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무연구로 행해진 노무현식 정치는, 유쾌한 정치반란에서 참담하게 망가진 정치마케팅의 실패 사례로 남게 되었다. 언젠가 이 땅에 암흑과 공포정치를 행했던 이들이 흔히 말했듯 ‘역사가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라는 그 불멸의 핑계를 노무현과 노무현의 아마추어들이 다시 어록으로 끄집어내놓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좌도 우도, 보수도 진보도 아닌 오직 노무현의 아마추어리즘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새롭지도 그렇다고 전통이 될 수도 없는 이상한 정치에서 실정범이 내일의 권력이 될 수상한 세월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브랜드의 가치 혼돈
‘비비켘’ 하는 김경준과 이명박 후보의 가래침 뱉는 소리는 무시한다 해도, 자신의 자녀만을 좋은 학교에 넣겠다고 위장전입을 십수 회 하고, 수백억 원의 재산가가 자신의 자녀를 자신의 회사에 위장취업시켜 꼬박꼬박 일하지 않은 급여를 챙겨주신 실정범이 이명박 후보 아닌가. 나중에 알고 자진하여 탈루한 세금을 내었다 해서 범법의 행위 자체가 무효인 것은 아니다. 범죄자가 자수했다 하여 그 범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닌 이치와 같다. 자진 혹은 자수란 판결의 고려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그 실정법의 피의자가 내일의 대통령이 될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얼마나 이 참여정부가, 노무현의 정치가, 그와 함께 여당으로 행세하며 국민들에게 온갖 미운 짓만을 골라 한 열린우리당(지금은 대통합민주신당)이 싫었으면, 지방선거에서부터 싹쓸이로 한나라당에게 몰아주었으며 이명박 후보의 과반 가까운 지지도가 요지부동이겠는가. 이는 세계적인 보수우경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라고 진단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한국적인 현상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만큼 개혁이니 실용이니 구호만 남발하다가 꼬리 감춘 선무당들이 국민들은 보기 싫은 것이다.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정경유착으로 덩치만 키웠다 IMF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현대건설에서 손쉬운 삽질만을 하던 이명박 후보가 경제를 살릴 것이기에 그를 지지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노무현표 정치에 기생하다 안 팔리니 등 돌린 DY가 미덥지 못하고, 계급정당이라도 제대로 좀 꾸려보라고 밀어줬더니 연일 계파투쟁이나 하는 민주노동당이 한심하고, 참신한 “문국현이면 뭘 해?” 사표일 것이 뻔하니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의 이명박인 것뿐이다.
영화 <불워스>가 전하는 정치의 허상과 좌절
할리우드의 대배우이자 감독 겸 제작자인 워렌 비티가 메가폰을 잡고 직접 주연을 맡은 <불워스>라는 영화가 있다. 1996년 3월경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는 로버트 돌 상원의원,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빌 클린턴이었다. 민주당 출신의 제이 빌링턴 불워스 상원의원은 재선을 위해 그의 선거참모들과 노심초사 선거 전략을 짜기에 바쁘다. 그의 선거 캠페인은 ‘새 천년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에 새로운 정책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유권자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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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아카데미 각본상 노미네이트 - 1999년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노미네이트 - 1998년 L.A 영화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 - 1999년 시카고 영화비평가협회 각본상 노미네이트 - 1998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노미네이트 - 1999년 미국 작가협회상 각본상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