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존스(국제 자선단체 ‘아이들에게 식량을’ 회장) - 래리 존스(Larry Jones)는 국제 자선단체인 ‘아이들에게 식량을(Feed the Children)’의 창설자이자 회장이다. 이 기관은 전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일 외에도 문맹퇴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봉사 활동에 헌신해온 공로를 인정해 아르메니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이란, 레바논 등 세계 각국이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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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5센트 동전 하나만 주실 수 있어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할 때였다. 그곳은 내가 가본 나라 가운데 가장 가난한 축에 속했다. 어느 날 거리에서 만난 그 소년은 키가 작고 비쩍 마른 아이였다. 소년은 자기 이름이 제리라며 5센트 동전 한 닢만 달라고 청했다. 그 돈을 가지고 뭘 할 건지를 묻자 소년은 “저쪽 가게에 가면 롤빵을 살 수 있어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잔돈을 찾아 주머니를 뒤지는데 아이는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저, 그런데 혹시 3센트만 더 주실 수 있어요? 3센트 더 내면 롤빵을 반 잘라 버터를 발라주는데….”
나는 아이에게 8센트를 건네주며 물었다. “뭔가 마실 것도 필요하지 않겠니? 콜라는 얼마니?”
“12센트요.” 아이가 대답했다.
12센트를 더 쥐어주고 난 뒤 나는 속으로 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굶주린 어린이 한 명을 먹이는 데 20센트면 족하다니. 비록 영양가 있는 음식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주린 배를 채우는 데 말이다.
오클라호마의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소년의 모습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아는 바였지만 제리로 인해 비로소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했다. 미국에선 음식이 남아돌아서 탈이었다. 곡물창고가 넘쳐났고 수백만 톤의 밀이 소비되지 못하고 그대로 쌓여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남아도는 밀을 320킬로미터 떨어진 나라에 사는 제리 같은 아이들을 먹일 방법은 없을까?
당시 목사였던 나는 TV와 라디오를 통해 가난한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며 말했다.
“미국에는 밀이 남아도는데 왜 아이들이 굶어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다음에 일어난 일은 기적인 동시에 신앙의 시험대에 오른 결과라 부를 만했다. 뭔가 행동을 취해달라고 호소한 것도 아니었는데 농촌에서 내 얘기를 듣고 밀을 보내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밀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두 달도 안 돼 그 양이 90만 킬로그램을 훌쩍 넘었다. 나는 아내 프랜시스와 함께 ‘아이들에게 식량을’ 재단을 창설했다.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영리재단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90만 킬로그램의 밀 더미 앞에 선다면 그저 뛰어드는 수밖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느끼고 압도당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결혼 초기에 나와 아내는 오클라호마의 교회를 떠나 가시적인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곳으로 옮겨갔다. 우리가 가진 돈을 죄다 교회 일에 쏟아붓고 나니 수중엔 달랑 90센트만 남았다. 그땐 정말 신이 우리를 잊으신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에겐 아이 하나가 있었고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집세도 내야 했고 차도 굴려야 했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으며 용기를 주는 책들을 수없이 읽었다. 그 중 하나가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Hudson Taylor's Spiritual Secret』였다. 젊은 시절이었던 1960년에 내가 먼저 읽고 아내에게 권했던 책이다. 허드슨 테일러의 아들 부부가 쓴 것으로 신심이 깊었던 한 남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허드슨 테일러는 1800년대 중국 선교를 개척한 사람이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견지했던 그의 삶은 기적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는 선교 임무를 띠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지구상 어디에 떨어뜨려도 더 이상 나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곳이었다. 게다가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그를 두 팔 벌려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몇 달도 안 돼 고국으로부터 청천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자금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돈도, 고국으로 돌아갈 차표도 없이 홀로 남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신앙심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고난의 정점에서도 신이 돌보신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최악의 환경에서 차근차근 선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가 세상을 뜰 무렵엔 수천 명의 선교사들이 중국이라는 땅에 기독교 복음을 전하게 됐다. 그들은 월급도 받지 않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신의 섭리에 자신을 맡겼다. 테일러는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았지만 한 번도 빚을 지지 않았다.
테일러의 책을 읽다 보니 다시금 용기가 솟구쳤다. 다음 날 우린 예기치 않은 곳에서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로 인해 재정 상황이 반전될 때까지 주어진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믿음도 더욱 깊어갔다.
지금도 역경에 처할 때마다 테일러의 책은 우리가 더 높은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며, 신이 우리를 돌봐주시리라는 사실을 늘 일깨워준다. 그리고 복잡한 일들이 하나하나 풀려가는 것을 보며 놀라곤 했다. 지난 몇 년간 테일러의 책을 수없이 읽었으며 수많은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곡물을 도정하고 포장하고 선적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가에 내보내야 할 중대한 순간에도 프랜시스와 나는 테일러의 책을 다시 읽었다. 언제나 그랬듯 책은 나에게 모든 일이 아귀가 잘 맞아 돌아갈 거라는 강한 믿음을 주었다. 밀과 함께 원조의 손길도 쏟아졌다. 플로리다에 사는 한 청년은 전화로 물었다. “트럭을 가지고 마이애미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려고 합니다. 돌아올 땐 빈 트럭이 돼요. 밀은 어디 있죠?”
밀은 텍사스 고속도로에서 2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청년은 중간에 이곳에 들러 밀을 싣고 마이애미로 되돌아가선 배에 실어주었다. 또 어떤 남자는 내가 상업용 제분기를 아이티로 싣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섬으로 들어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지켜봐주었다.
신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어찌 그가 이 모든 것들을 이토록 완벽하게 이뤄지도록 하시는지 알고 싶었지만 부질없는 생각이기에 오래전에 버렸다. 그것은 우리의 길이 아니었다. 그의 길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곳에 있었다. 아내와 나는 모든 것이 예정한 대로 되리라는 것을 믿는 법을 배웠다. 이런 믿음은 깊은 평온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때때로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관계없이 놀랄 만큼 침착함을 유지하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몇 년 전 테레사 수녀와 함께 이틀 동안 보낼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지진이 발생한 아르메니아에서 같은 수도원에 머물렀다. 테레사 수녀는 수천 가지 프로젝트와 이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완전한 평화 속에 계셨다.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아침 미사에 참석하는 테레사 수녀와 동행했다. 사제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우리는 밖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양말에 샌들을 신고 있을 뿐이었지만 아무런 불평도, 미사가 늦어지는 데 대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지 눈발 속에서 지극히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허드슨 테일러도 그런 식이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돈을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적힌 전보 한 장 달랑 들고 낯선 중국에 남겨졌을 때도 곧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허드슨 테일러의 영적 비결이다. 모든 문제를 즉시 신에게 일임함으로써 풀어나가려 하는 것. 허드슨은 신에게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선교 단체에서 보내서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당신이 지명하셨기에 온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의 책임입니다. 모든 것을 살펴주소서.”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갑자기 실직과 죽음, 이혼 등 폭풍이 몰아쳐 우리를 강타한다. 우리는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린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강력한 영적 토대 위에 세운다면 고난의 시간이 닥칠 때조차 신의 마스터플랜이 펼쳐져 성경의 한 구절처럼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식량을’이라는 재단을 설립하고 활동을 시작하자 일거리가 끊임없이 생겨났다. 누군가 내게 “식량을 지원해야 할 곳을 어떻게 결정합니까?”라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도를 꺼내 불을 끈 뒤 다트를 던집니다. 다트가 꽂힌 곳, 그곳이 바로 지원이 필요한 곳이죠.”
우리는 미국 50개 주를 비롯하여 100여 개 나라에 식량을 보냈다. 우리의 일은 기아 종식을 위한 캠페인에 머무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나이로비 슬럼가의 7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도시의 교육?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동기가 생겨났고 어떤 지역에서는 등록 학생 수가 두 배로 늘어나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두 명의 비전문가가 시작한 국제식량지원 프로그램은 어느덧 대대적인 국제 문맹퇴치 및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선교사건 보험 영업사원이건 거리의 청소부건 기아구제단체의 지도자건 믿음과 신뢰로 남을 위해 일한다면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허드슨 테일러의 인생에서 얻은 교훈은 신이 우리에게 사명을 맡길 때는 어느 누구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열어두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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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은 ‘리더스북’과 제휴하여 매주 화요일 2개월간 총 8편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