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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보면 ‘안다’고요

『블링크』와 『티핑 포인트』의 말콤 글래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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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블링크』는 “일상생활의 아주 작은 요소들, 즉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복잡한 사정에 직면하거나 긴급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자연스레 발동하는 순간적인 인상과 결론의 내막과 기원을 다룬 책이다.

나는 평론가 직함에 꿀린다. 문학, 음악, 미술 같은 분야를 주종목으로 삼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다. 나의 비평방식은 좀 눌리는 것 같아서다. 사실, 평론가라는 직함이 약간 버겁기도 하다. 다만, “비평가만이 작가의 면전에서 판결을 내린다.”라는 발터 베냐민의 권고에서 힘을 얻는다.

이선영 편 『문학비평의 이론과 실제』(삼지원)는 초판(1983)에서 대표적인 문학비평의 유형을 여섯으로 나눈다. 역사?전기비평, 사회?문화적 비평, 형식주의비평, 구조주의비평, 신화형성비평, 심리주의비평 등이 그것이다. 개정판(1987)은 독자중심비평을 추가하고, 제3판(1990)에선 탈구조주의비평과 페미니즘비평을 더한다.

나는 문학비평의 대표적인 아홉 가지 유형 가운데 어느 것도 원용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보다 낮은 차원인 인상비평을 선호한다. 직감에 크게 의존한다. 그렇다고 책을 판별하는 능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꾸준히 구입하면서 그런 감각을 익힌 것 같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어느 순간 책에 대한 분별력이 생겼다. 물론 엄정한 잣대라고 하긴 어렵다. 그래도 출판매체에서 일할 때나 지금이나 쓸모가 있다. 앞뒤표지와 본문 판면을 대충 훑어봐도 어떤 책의 ‘상태’를 70퍼센트는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눈썰미가 있는 독자가 책을, 특히 신간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사소한 오류라도 발견하면 출판사로선 이보다 더한 낭패가 없다.

내겐 얼마 전 출간된 『핀란드 역으로』가 그랬다.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까지』(실천문학사, 1987)를 좋게 읽은 나로선, 기존의 한국어판은 한참 전에 절판된 상황에서 새로운 번역서의 출현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질투’가 났는지 새 책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우선, 책이 꽤 두꺼웠다. 예전 번역서의 1.5배는 돼보였다.

이리저리 책장을 넘겨보다 거의 같은 중간제목이 눈에 띄었다. 「트로츠키, 역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다」와 「레닌, 역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다」가 그것.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차례를 펼쳤다. 거긴 “트로츠키, 역사를 자신과 동일시하다”와 “레닌, 자신을 역사와 동일시하다”라고 돼 있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블링크-첫 2초의 힘』(이무열 옮김, 21세기북스, 2005)은 “일상생활의 아주 작은 요소들, 즉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복잡한 사정에 직면하거나 긴급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자연스레 발동하는 순간적인 인상과 결론의 내막과 기원을 다룬 책이다.”

블링크(blink)란 무엇인가?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다. 깜박거림, 반짝임.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나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첫 2초 동안 우리의 무의식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뜻한다.”(앞표지 날개 하단)

이 책의 첫째 임무는 신속한 결정이, 일면에서는 신중한 결정만큼 좋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본능을 믿을 때와 경계할 때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순간적 판단과 첫인상을 교육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거다.

야구에서 타자는 공을 정확히 보고 공을 친다기보다는 타격감에 더 의존한다. “선수를 향해 날아오는 테니스공은 최종 1.5미터를 비행하는 동안 너무 가깝고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그 순간 선수는 사실상 장님이 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방망이를 향해 날아오는 공을 볼 수 없다.”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인터뷰에서 글래드웰은 “동양문화권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서양문화권 사람들보다 이러한 생각을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라고 말한다. 맞다. 순간의 선택은 평생을 좌우하고, 바둑에선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가 나오곤 하지 않는가.

티핑 포인트의 3가지 규칙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제품의 판매고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까닭을 풀어서 밝힌 『티핑 포인트』(임옥희 옮김, 21세기북스, 2004)는 2000년에 나왔던 ‘번역 초판’(임옥희 옮김, 이끌리오)의 개정판이다. 이 ‘번역 개정판’은 “마케터의 관점에서 전면 수정한 것으로, 작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시장을 움직이는 큰 트렌드로 바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한다.

‘번역 개정판’은 ‘번역 초판’에서 50쪽을 다이어트 하는 등 경제경영 실용서의 티가 뚜렷하다. 하지만 나는 글래드웰의 장기인 풍부한 예화를 담은 ‘사회학적’ 해석이 돋보였던 ‘번역 초판’ 『티핑 포인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읽을거리로는 그게 더 낫지 않나 싶다.

『티핑 포인트』는 “대단히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생하고 극점에 도달해 소멸했는지를 보여준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순식간에 갑자기 폭발하는 국면을 일컫는다. 티핑 포인트의 세 가지 법칙은 어떤 것의 ‘번짐’(전염)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소수의 법칙 - 80 대 20의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대개 ‘작업’의 80퍼센트는 참여자의 20퍼센트에 의해 수행된다는 개념이다. 전염에서는 이러한 불균형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고착성 요소 - 고착성 요소는 전염되는 메시지를 기억하도록 만드는 특수한 방식이다. 정보를 제시하거나 구조화할 때, 작지만 고착성이 강한 변화만 주어도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상황의 힘 - 상황과 조건과 이런 것들이 작용하는 특수한 상황에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이 전염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인간 행동이 훨씬 더 암시에 걸리기 쉽다는 점을 말해준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게임’은 ‘여섯 단계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속설의 응용이다. “이 게임의 발상은 어떤 배우든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6단계를 거치기 전에 케빈 베이컨을 만난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게임 이름에 케빈 베이컨의 이름을 붙인 게 이채롭다.

어째서 <어퓨굿맨>에선 군법무관을 깔끔하게 소화했지만, <할로우맨>에선 까칠한 배역을 더 종잡을 수 없게 만든 배우로 기억되는 그를.

사람이 실험용 쥐?

『블링크』『티핑 포인트』가 읽을 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나, 심리실험과 그 결과에 대한 말콤 글래드웰의 약간 과한 의존은 꽤 아쉽다. 상황적 요인을 부추기는 것 또한 그렇다. ‘키티 제노비즈의 비극’을 ‘방관자 문제’로 돌리는 일부 사회심리학자들의 주장은 온당치 못하다.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가 목격자가 단 한 명 있는 외진 거리에서 공격을 당했더라면 살았을지도 모른다.”라는 글래드웰의 추측은 전혀 동의하지 않으나, “사람들은 직접 맞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가장 작은 일들을 함께 나눌 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다.”라는 그의 짐작은 그런대로 수긍한다.

그렇다면 우리네 생활에서 직접 겪는 ‘방관자 문제’의 정도는? 자못 심각하다. 평일 오후, 젊은 엄마가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아이를 안고 시외버스에 오른다. 좌석은 이미 다 차 있고, 아이를 안은 엄마는 버스 중간에서 손잡이를 잡고 불안하게 서 있다. 이를 보다 못한 운전기사가 한마디 한다. “누구 한 사람 일어나지.”

하지만 아무도 꿈쩍하지 않는다. 정적만이 감돈다. 갈등이 시작된다. 일어설까, 말까. 결국 맨 앞에 앉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엄마에게 말한다. “여기 앉으세요.” 젊은 것들 들으라고 목소리를 안 낮춘다. 오십 전후의 운전기사가 평어를 쓸 정도로 버스 승객은 대부분 젊었다. 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연장자였다.

20초 남짓 갈등하며 내 머리는 ‘계산’을 하느라 엄청 바빴다. ‘오늘 컨디션은 나쁘지 않잖아. 다행히 길도 안 막히는군. 그럼, 오래 서 있지 않아도 되겠네. 동승한 딸아이에게 본을 보여야지.’ 내 행동이 굼떴을 뿐, 나는 아이와 아이 엄마를 보자마자 그날의 상황은 내가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럴 거면 약간 일찍 자리를 박차도 되지 않았을까? ‘생색내는 것 같아 계면쩍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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