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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뷰티풀 게임>에 대한 불만

얼마 전에 <뷰티풀 게임>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왔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벤 엘튼의 축구 소재 뮤지컬이에요. <뷰티풀 게임>을 보면서 제가 가장 불만이었던 건 그 작품이 제공해주는 정보가 심각할 정도로 모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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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뷰티풀 게임>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왔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벤 엘튼의 축구 소재 뮤지컬이에요. 조금 조사해 봤는데, 이 뮤지컬은 1969년 이후 어느 벨파스트 축구팀 단원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다룬 라디오 다큐멘터리인 <The Belfast Game>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한 번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본 뮤지컬로는 그 호기심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죠.

뮤지컬 <뷰티풀 게임>

<뷰티풀 게임>을 보면서 제가 가장 불만이었던 건 그 작품이 제공해주는 정보가 심각할 정도로 모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뮤지컬은 허구니까 원작 라디오 다큐멘터리가 갖추고 있었던 실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직접 제공해줄 수는 없지요. 그런 건 기대도 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전 적어도 1968년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폭력적인 사건들 속에서 당시 평범한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줄 줄 알았습니다.

모르겠어요. 아마 로이드 웨버와 엘튼의 원작은 그걸 보여주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그걸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요. 제가 본 건 한국인 관객들을 위해 번역되고 각색된 버전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버전에서는 뭔가 아주 심각한 것들이 빠져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서부터 70년대 사이의 시대상황이요. 한국판에서는 단 한 번도 날짜나 연도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배경에서는 80년대 이후에나 의미가 있었을 Video Club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캐릭터들은 휴 그랜트와 같은 현대의 배우들을 언급합니다. 전 나중에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으면서 두 여성 캐릭터들 중 한 명이 신교도이고 다른 한 명이 구교도라는 걸 알아냈는데, 아직도 전 제가 본 공연에서 어느 쪽이 신교도이고 어느 쪽이 구교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척 봐도 이들이 다루고 있는 건 1970년대 중반까지의 이야기인데, 왜 이들은 그걸 쏙 빼놓고 있는 걸까? 이건 한국전쟁이 시대 배경인 영화에서 주인공 병사들이 지갑에 이나영 사진을 넣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전 이걸 그냥 역사 왜곡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휴 그랜트가 인기를 끌던 시절의 북아일랜드는 1970년대의 북아일랜드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고 메시지가 그 시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이런 왜곡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고 넘어갔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벤 엘튼은 북아일랜드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 이야기를 한국 관객들을 위해 한국 극장에 이식한 사람들은 그 믿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들이 관심을 쏟았던 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멜로드라마와 축구뿐이었지요. 그게 유일한 답 같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아마 그들은 뮤지컬이 진지한 현실을 담을 만한 매체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물론 이걸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예외로 언급할 작품들은 넘쳐나니까요. 앤드루 로이드 웨버만 해도 20세기 남아메리카의 역사를 지적으로 해석한 <에비타>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뷰티풀 게임>만 따로 보면 확신이 안 섭니다. 극적인 순간마다 주인공들이 관객들을 향해 드라마틱한 노래를 질러대고 다시 멜로드라마의 연기로 돌아가는 이 형식에서는 무대 뮤지컬의 관습이 스토리와 주제를 억누를 정도로 강합니다. 이 장면들만 따로 본다면 역사배경은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과 노래를 과시하기 위한 도구 이상은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한국판을 만들면서 1970년대라는 구체적인 시대를 지워버린 사람들도 은근히 그걸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제가 이 이야기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 건지? <뷰티풀 게임>을 제대로 비평하려면 아무래도 원작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CD를 사서 들었지만 노래는 이 뮤지컬의 절반 정도밖에 안되거든요. 전체 각본을 봐야 로이드 웨버와 엘튼의 진짜 의도를 알 수 있겠죠. 지금의 저로서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직접 접할 수 없는 오리지널 텍스트의 원래 모습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유추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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