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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산과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뿐 - 『산』

이시즈카 신이치의 『산』은 제목에서 모든 것을 말한다. 산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산의 무엇을 주장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산에 대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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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무리하게 지리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길을 아는 친구는 단 한 사람이었고, 일행 대부분이 장비는커녕 등산화도 신지 않고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오른 산행이었다. 무리해서 정상에 오르고 바로 하산을 했다. 하산하던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사람은 10여 명이었지만 라이트는 단 3개뿐. 한심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젊은 혈기에 그냥 하산을 감행했다. 무릎까지 물이 찬 계곡도 건너고,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겨우 천신만고 끝에 부상자도 없이 무사히 하산을 했다. 그 이야기를 대학 산악부에 있는 친구에게 했더니, 대번에 미쳤다는 말이 돌아왔다. 해가 지고 비가 오는 상황이라면, 그것도 지리산이라면 절대로 하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의 계곡물은 금방이라도 넘친다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살아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다시 지리산에 갔을 때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젊은 혈기 때문이었을까, 산의 무서움을 몰랐던 것일까.

이시즈카 신이치의 『산』은 제목에서 모든 것을 말한다. 산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산의 무엇을 주장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산에 대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누군가는 벼랑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눈사태에 휘말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산』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려준다. 나가노의 험한 산 속에서 살아가는 시마자키 산포라는 청년이 있다. 이름은 ‘산책’이지만, 산포는 누구보다도 산을 잘 알고 잘 타는 산악인, 산사람이다. 산포의 마이 홈은 석양이 너무나 아름다운 산기슭이고, 밤이면 로프 하나로 벼랑에 매달려 달을 보며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언제나 산에 있기 때문에, 경찰의 요청을 받아 조난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산』은 산포와 조난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들려준다.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젊은 시절의 객기로 험한 산에 오르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 오르기도 한다. 누군가는 산을 정복한다는 기분으로 오르기도 할 것이다. 저들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다. 산 역시 그들에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는 산에서 천하의 절경을 만나고, 누구는 어떤 악마보다도 잔인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따뜻하다가도 매몰차고, 완강하면서도 부드럽다. 산포는 그런 산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산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간간히 산포의 과거가 배어난다. 산포는 왜 산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는 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산 아래의 경찰서에 근무하는 시이나 쿠미의 눈을 통해서, 우리는 산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산포는 사람을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조난당해 죽은 사람들을 찾는 일도 한다. 산포는 수많은 죽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때로는 데리고 내려오는 도중 죽기도 한다. 그러면 산포는 이렇게 말해준다. “정말로 잘 버텼어. 나는 시마자키 산포라고 해요. 산을 타러 온 당신을 잊지 않을게. 약속해.” 그리고 죽은 이들에게 커피를 끓여주고, 꽃을 바치며 이제 봄이라고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산은 잔인하다. 수많은 산을 너무나 잘 알고, 산에서 살아가는 산포 역시 산이 무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섭지만 그것과 맞서지 않는 것은 더욱 무섭다’고 말하는 것처럼, 산포는 무서운 산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

『산』은 허튼 영웅주의를 허락하지 않는다. 폭설 속에 조난당한 두 사람을 구하러 간 산포는, 한 친구가 폐수종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자 나머지 한 친구만 데리고 온다. 두 사람을 산포가 데리고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했고, 하나만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요세미티의 벼랑을 오르다가, 산포는 친구 데이먼이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다. 하지만 산포는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그저 벼랑에 몸을 딱 붙이고, 로프를 꽉 잡고 있을 뿐. 아무리 산을 잘 알아도,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눈사태나 벼랑에 배달려 있을 때 떨어지는 돌을 피할 수는 없다. 산이 그를 공격한다면, 그 역시 당해야만 한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하냐고 말한다 해도,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는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산포는 믿고 있다. “산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보고 싶어서 올라올 뿐.”이라고.

『산』은 지나치게 장엄하지도, 감상적이지도 않다. 산의 모습 그대로, 사람과 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산포의 사상에서도 드러난다. 함께 높은 산을 많이 올랐던 산포의 친구가 언제부턴가 고산병에 시달린다. 되도록 높은 산을 어려운 루트로 올랐던 그는 ‘낮은 산도 즐거웠다’고, ‘좀 더 많은 사람이 산에 오면 좋을 텐데.’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산포의 생각이다. 모두가 산에 왔으면 좋겠고, 어떤 이유로든 산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이 바로 산포의 임무다. 정상을 보고 싶다면 오르면 되고, 산이 그것을 허락해주면 오르지 않아도 좋다.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에도, 산포는 정상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 베이스캠프도 에베레스트잖아요? 정상까지 전부 에베레스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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