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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아, 정신 차려!" 외치는 우리들의 신부님
요즘 세인들의 관심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출마와 삼성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부정과 비리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요동치는 정국이요, 하수상한 세상이다.
요즘 세인들의 관심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출마와 삼성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부정과 비리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요동치는 정국이요, 하수상한 세상이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들이 곁에 있다. 모처럼 나선 신부님들의 외출을 그저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은 그들의 외출에서는 늘 우리 역사의 암울한 상흔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폭압적인 유신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던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이 그랬고, 민간인 대량학살이라는 초유의 광주만행을 저지른 전두환 일당의 5공화국을 끝장냈던 6월 항쟁의 불씨를 지핀 것도 김승훈 신부님을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신부님들이었다. 오욕과 상처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한복판에는 이렇듯 자신들의 신앙에 따른 양심을 지키며 하나님의 사도로써 약자를 위해 자신들의 안위를 초개와 같이 던졌던 위대한 사목들이 있었고,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의해 만신창이 된 역사나마 한걸음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세상이 좋아져 사법살인의 희생양이었음이 밝혀진 인혁당사건의 현장이거나, 진리와 자유를 외친 순수한 젊은이들을 한순간에 몹쓸 빨갱이로 조작하여 수인을 만든 민청학련사건이거나, 시인은 모름지기 시대의 진실을 알려야 함을 깨우쳐 준 김지하의 필화사건이거나 언제나 그들은 약자의 편이었고 박해받는 민중의 곁을 지켰다. 지학순 주교(『정의가 강물처럼』)의 양심선언에서 비롯된 신부님들의 현실 참여는 암흑의 동굴을 밝히는 한 줄기 진실의 등불이었다. 80년대의 광주가 인간 자유의 해방구였다면, 70년대의 해방구는 원주였다.
해방구 원주를 생각하면 지학순 주교와 함께 절대 잊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무위당(無爲堂- 하는 일 없이 안 하는 일 없는 사람) 장일순이다. 그는 지학순 주교, 김지하, 박재일 등과 함께 강원도 일대의 농촌과 탄광 지역의 농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협동조합운동을 지도하면서 '원주해방구'를 일구어 낸 장본인이다. '걷는 동학'이라 불리던 장일순은 '밥이 곧 하늘'이고 '모든 생명은 하나'임을 일깨우며,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이 땅에 체현해낸 실천가였다.
최성현이 쓴 『좁쌀 한 알』이란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책의 제목이 ‘좁쌀 한 알’인 것은 그가 말년에 아호를 일속자(一粟子)로 고쳐 스스로를 한 알의 작은 좁쌀로 낮춘 까닭이다. 이 아호에는 모심(밑으로 기어라)과 살림(‘한살림운동’ 등의 생명운동)이라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투사에서 생명운동가로 변한 김지하의 오늘이 장일순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이 단 한 번 보고 홀딱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소설가 김성동과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고, 판화가 이철수가 진정한 뜻에서 이 시대의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 꼽는 사람. 그의 장례식에 조문객이 3천명이나 모였다는 사람.”
70년대 유신의 공포가 어이없게도 궁정동 안가의 술판에서 끝장이 났을 때만 해도 “이제야 민주의 세상이 도래하는구나.” 누구나 환희하며 믿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서울의 봄’은 단지 우리들의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12월의 겨울날 용산에서는 심야의 총성이 그칠 줄 몰랐고, 국권수호라는 군인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전두환 일당의 탱크가 서울의 시가지에서 귀신의 호곡성 같은 굉음을 토해냈다. 그것으로 오지도 않은 ‘봄’은 끝났다. 광주는 피를 토했고 핏물은 그칠 줄 몰랐다. 극락천에 흐르는 핏물과 함께 단지 ‘사람 사는 세상’에 살고픈 그 작은 소망도 죽어갔다.
바뀐 것은 독재 권력의 육사 기수, 딱 그것 하나뿐이었다. 2년제 육사 출신에서 4년제 육사 출신으로, 가방끈이 조금 길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인권탄압, 정경유착, 부정부패, 권력남용, 용공조작, 사찰과 감시, 고문과 감금, 격리와 차단 등등 여전히 70년대의 삶 속에서 ‘사람다움’은 엿 바꾸어 먹을 고무신이 줄어든 만큼만 조금 자랐다. 강탈한 돈으로 ‘국풍’ 잔치는 벌어졌고 외상값 갚으려고 나간 노래자랑에서 이용은 스타가 되었다.
황송하게도 5공의 제복들은 국민들에게 마음껏 욕하고 소리치라고 운동장을 내어주고, 눈치 보며 좌불안석이던 기업들은 저마다 주머니 털어 야구모자와 방망이와 공을 사고 선수들을 뽑고 연봉이란 생소한 급여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른바 프로야구의 탄생이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범법의 사유였지만 고교생의 머리는 길어졌다. 대학의 문은 닫히고 도서관의 불은 꺼졌지만 통금은 해제되어 맘껏 놀 시간은 늘어났다. 소비와 향락, 어설픈 서정과 졸렬한 일상이 찬미되는 세상으로의 유혹에 국민들은 정신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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