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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보르도 취재 여행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은 많은 분이 사랑해 줘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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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프랑스어판도 출판된다. 프랑스 출판사 세 곳에서 출간 의사를 밝히며 경합을 벌여 현지에서는 책이 나오기 전부터 화제라고 한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은 많은 분이 사랑해 줘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곧 프랑스어판도 출판된다. 프랑스 출판사 세 곳에서 출간 의사를 밝히며 경합을 벌여 현지에서는 책이 나오기 전부터 화제라고 한다. 기분은 좋지만 와인 본고장에서 ‘동양의 와인 만화’가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 다소 불안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프랑스의 와인 생산자들은 모두 소박하고 너글너글하며, 포도와 포도밭을 더없이 사랑해서 와인을 얘기할 때면 다들 못 말리는 와인 예찬론자가 된다. 그들은 분명 이 만화를 즐겁고 재미나게 읽어줄 것이라 믿는다.

프랑스에서도 발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3년 전 프랑스 취재를 갔던 일이었다. 『신의 물방울』 연재가 결정되자 와인을 마시기만 할 게 아니라 와인 산지를 꼼꼼히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동생은 만화가인 오키모토 씨와 함께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샤토를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10월 초순이라 보르도의 메독 지방은 주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한창 수확하고 있었다. 어떤 샤토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찾아가는 곳마다 취재를 거절당해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취재에 응해주는 샤토가 몇 군데 나타나면서 오히려 이 시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현장을 충실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확 광경을 참관했던 게 좋았다. 포도밭에는 경작기계로 포도를 수확하는 곳과 손으로 공들여 수확하는 곳이 있다. 기계 수확은 사람이 트랙터에 올라타 막대로 포도를 쳐서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수작업은 가위로 불량 포도를 가려내면서 거둬들이는 방식이다. 보기에도 수고스러운 작업이고, 인건비가 꽤 든다. 기계 수확은 손쉽고 비용이 싸지만, 포도나무의 가지가 상하기 때문에 다음해 수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포도를 선별할 최초의 기회를 잃는 단점도 있다. 좋은 와인을 만들려면 역시 수작업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수확한 뒤에는 포도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고 상태가 좋지 않은 포도와 좋은 포도를 엄선하는 작업을 거친다. 어렵게 부탁해 샤토 몇 군데에서 이 작업을 견학했다. 이때 포도를 가려내는 사람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임시 아르바이트가 고르는 것과 숙련자가 고르는 것은 선별 기준부터 다르다. 예를 들어 ‘샤토 피숑 롱그빌 바롱’Chateau Pichon-Longueville Baron의 선별 작업은 실로 대단했다. 작업대 곳곳에서 숙련자가 눈을 번뜩이며 재빨리 불량 포도를 골라냈다. 그것도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았다. 과연 명문의 2등급 샤토다. ‘피숑 롱그빌 바롱’은 힘차고 진한 메독 지방의 와인다운 맛이 나서 원래부터 좋아하는 와인이었는데, ‘무대 뒤편’을 보고 더욱 반해버렸다.

포도의 수확과 선별 작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낀 점이 있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와인과 그렇지 못한 와인은 이미 첫 단계에서부터 확연하게 길이 갈린다는 사실이다. 당시 이 여행에서 얻은 경험은 이처럼 매우 값진 것들이었다. 우리는 와인의 심오함을 한층 더 잘 알게 됐다. 사실 일본에 앉아 있기만 해서는 와인에 대해 잘 알 수가 없다.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취재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와인을 마셔봤다. 그런데 현지에서 마시는 와인에는 가격과 상관없이 공통점이 있는 듯했다. 같은 와인이라도 일본에서 맛본 것에 비해 와인의 품질이 좋고 맑은 맛이 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현지에서 마시면 기후와 식사가 와인과 잘 맞아 떨어져서 그렇게 느껴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보르도 생테밀리옹의 한 비스트로에서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Blanc 1995’를 마셨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우리 남매는 우연하게도 똑같은 ‘샤토 슈발 블랑 1995’를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에 도쿄에서 마셨다. ‘백마’Cheval라는 뜻을 가진 이 생테밀리옹의 명주는 우리 남매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랑스 와인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의 대부분 와인들은 메를로Merlot를 주품종으로 만드는 대신 이 와인은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이 3분의 2, 메를로가 3분의 1이라는 독특한 블렌딩 비율로 만든다. 화려한 향과 잘 익은 검은 과일의 맛 속에 생크림과 같은 부드러운 단맛이 있다(이 맛이 못 견디게 좋다). 스케일이 큰 장기 숙성형의 힘찬 와인이라 1995년은 마시기엔 아직 단단하고 젊다. 그럼에도 도쿄에서 마신 와인은 ‘의외로 마실 만하네.’라고 입을 모았을 정도로 숙성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생테밀리옹의 비스트로에서 마신 1995년산은 전혀 다른 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젊었다. 숙성감은 눈곱만큼도 없었고, 갓난아기의 살결처럼 보드랍고 지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어찌나 와인의 맛이 단단한지 디캔팅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짐작해 보건대 와인은 진동에 약하다. 그 때문에 배 안에서 시달리며 해외로 옮겨지는 동안 피폐해진 와인은 부쩍 나이를 먹게 되는 것이다. 특히 홍콩에서 미국?일본 등 세계를 전전해온 와인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반대로 샤토에서 만들어진 뒤 거의 이동을 하지 않은 와인은 젊고 아름답다. 오래된 술이라도 고상한 노부인처럼 곱게 나이를 먹는다.

항공편은 배편보다 비용은 비싸지만, 흔들림이 적어서 와인의 피로는 훨씬 적다. 이 취재 여행에서 산 와인을 우리는 항공편으로 일본에 보냈는데, 이런 와인은 현지에서 마신 것과 상당히 근접한 매우 젊고 아름다운 맛이 났다.

와인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치는가 하면 나이도 먹는다. 나이를 먹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항공편으로 옮긴 것과 ‘창고에서 갓 꺼낸’ 생산자의 스톡 와인은 우아하게 나이를 먹은 것이 많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이 ‘아름다운 와인’의 근사함을 느껴보기 바란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와인의 기쁨>은 ‘중앙books’와의 제휴에 의해 연재되는 것이며, 매주 수요일 2개월간(총 8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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