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랜드(해양 아티스트) - 위랜드(Wyland)는 세계 최고의 해양 아티스트로, 1981년 이후 마린 아트 운동을 이끌어온 이 분야의 선구자다. 화가, 조각가, 벽화가로 활동하며 해양 생태계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해양 생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는데, 미국은 물론 캐나다, 일본 , 호주, 멕시코, 프랑스, 뉴질랜드 등에서 93편의 고래 벽화 연작을 그려온 것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10억 명 이상의 인구가 그의 작품을 접한 것으로 추산되며, 전세계 30여 개국 50만 명에 달하는 작품 수집가를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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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시간 주의 자동차 도시로 유명한 디트로이트 인근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해양 아티스트의 한길을 걸어온 것을 생각하면 내 출생지는 하나의 오점인 셈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고래나 해양 생물이 가까이에 있는 웨스트코스트쯤에서 태어났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해양에 대한 사랑은 한 권의 책에서부터 비롯됐으니 한낱 출생지가 무슨 소용이랴. 그 책이 바로 자크 쿠스토(Jacques Cousteau)의
『더 싸일런트 월드The Silent World』다.
나는 화가를 꿈꾸는 열세 살의 소년이었다. 세 살 때 벌써 부모님 침대의 헤드보드 뒷면에다 첫 벽화를 그렸다. 물감과 붓을 가지고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꽤 정교한 공룡 세계의 풍경을 그려놓았던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가 지하실에 미술실을 꾸며주셨는데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거기서 보내곤 했다.
한 친구가
『더 싸일런트 월드』를 건네줬을 때만 해도 그 책이 그토록 나를 사로잡을 줄은 몰랐다. 1953년 초판이 나온 이래 21개 언어로 번역돼 5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책이다. 쿠스토는 영화로 더 유명하지만 그의 책도 환상적이었다(기록 영화 <침묵의 세계>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태양이 미치지 않은 세계>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옮긴이). 그가 언어를 사용해 바다 밑 세상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 세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바다와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는 그의 연인이었다. 바다 생물과의 조우를 묘사하는 그의 글에는 박진감이 넘쳤다. 상어, 쥐가오리와 함께 수영한 얘기도 있었다. 사람들이 해저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을 때 그는 바다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이 상어나 고래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나는 매일 밤 쿠스토가 안내하는 해저세계로 깊이 빠져들어갔다. 새벽 두세 시까지 책을 읽었다. 마침내 책장을 덮었을 때 자크 쿠스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소년은 속으로 결심했다. “언젠간 꼭 해양 탐험가나 다이버가 될 테야.”
방학이 되면 린다 이모 집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놀러가자고 엄마를 졸랐다. 1년간 끈덕지게 조른 끝에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라구나 비치에서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쿠스토의 책을 읽고 싹트기 시작한 관심은 열정으로 바뀌었다. 파도가 모래사장과 바위에 철썩대는 해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해안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엔 따개비들로 다닥다닥 뒤덮인 검은 가방처럼 생긴 바위 두 개가 엄청난 물보라를 뒤집어쓰며 떠 있었다. 난생처음 살아 있는 고래도 보았다. 물을 뿜으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고래 등만 보았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황홀한 경험이었다. 고래 떼가 내 눈앞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그 순간의 감동을 온전히 글로 표현할 재간이 내게는 없다. 언젠간 이곳에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10년 뒤 정말 라구나 비치로 이사를 왔고, 처음 그 쇠고래들을 봤던 데서 100미터도 채 안 되는 지점에서 첫 고래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의 집으로 돌아온 뒤 바다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해양 생물을 그리면서 그들의 해부학적 구조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멸종된 공룡들을 떠올리며, 비슷한 일이 고래들에게도 일어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곧 해양과 바다 생물을 보호해야겠다는 열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냈다. 당시 그린피스 운동가들은 작은 조디악 보트를 타고 나가 고래잡이 작살을 던지는 어부들과 고래들 사이에 끼어들곤 했다. 내 방법은 달랐다. 그림을 통해 섬세하고도 예민한 이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겙고 했다. 사람들이 바다 속 세상의 황홀경을 눈으로 본다면 그것을 지키는 데 나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싸일런트 월드』가 내 인생을 변화시킨 것은 또 있다. 나는 다이버 세계에도 입문했다. 쿠스토는 프랑스인 엔지니어 가냥과 함께 아쿠아렁 또는 스쿠버라 불리는 휴대용 수중 호흡기를 발명했다. 이로 인해 원거리 산소통에 에어 튜브를 매달지 않고도 제한 없이 수영할 수 있는 최초의 한 사람이 됐다. 그는 1943년 6월 지중해에서 가졌던 첫 스쿠버 다이빙을 아름다운 글로 묘사해 멋진 바다 속 자유 체험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밤엔 종종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하늘을 나는 꿈에 잠기곤 했다. 이제 나는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롭고 평탄하게, 물고기들이 비늘로 느끼는 것을 우리의 살로 똑같이 느끼며 지금껏 인류가 알지 못했던 영토를 가로질러 헤엄쳐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더 싸일런트 월드』에는 자크 쿠스토의 잠수 모습을 담은 멋진 사진이 한 장 실려 있다. 이 사진과 쿠스토의 생생한 묘사가 잠수를 배우고픈 욕망을 자극했다. 몇 년 후 마침내 다이버 세계에 입문했을 때 모든 것이 쿠스토가 말한 그대로였다. 아니 더 멋졌다. 다이빙은 하나의 영적인 체험이었다. 쿠스토처럼 나도 수중세계를 날아다녔다. 다이빙은 하나하나가 마술적 순간을 품고 있었다.
아마 타고난 신체적 제약 때문에 다이빙의 힘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내반족(발목 관절 이상으로 발목 밑이 굽어 발바닥이 안쪽으로 향하게 된 발─옮긴이)이 심각해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열한 차례나 수술을 받았고, 교정용 깁스를 한 채 절뚝이며 다녔다. 안타깝게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로지 꿈꾸고 상상만 해볼 수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깁스를 풀고 가족을 따라 카스 호수에 첫 여행을 갔을 때 물에 들어가지 않곤 배길 수 없었다. 수영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물 속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꼈다. 바다의 포유동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이 누군가의 인생에 미치는 힘은 놀라울 정도다. 쿠스토의 책을 읽기 전 내 독서 취향은 온통 미술에 관한 것뿐이었다. 살바도르 달리나 로버트 베이트먼 같은 화가가 나의 우상이었다. 물을 좋아하게 된 뒤에도 바다와는 아무 연관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더 싸일런트 월드』를 읽고 난 뒤 미술과 자연이 혼연일체로 다가왔다. “고래의 등에 상처를 내는 따개비”는 내 인생의 진로마저 바꿔놓았다. 쿠스토의 연금술 같은 글이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와 바다 속 생물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게 만들었다. 오늘 나는 그 일을 붓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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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은 ‘리더스북’과의 제휴에 의해 연재되는 것이며, 매주 화요일 2개월간(총 8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