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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법칙이 통하지 않는 경이로운 세계 - 『탐정의식』
반칙으로 일관하는 『탐정의식』은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이료인 류스이라는 작가만이 아니라 라이트 노벨 자체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소설 혹은 이야기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일단 『탐정의식』의 설정부터 시작하자. 2290년의 일본에는 JDC(일본 탐정 클럽)라는 조직이 존재한다. 일종의 특수한 국가조직인 JDC는 초월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경찰에서는 살인 범죄가 일어나면 반드시 JDC의 탐정을 입회시켜야만 하고, 탐정들의 수사기록은 미스터리 소설로 만들어져 인기를 누린다. 탐정들의 피규어도 불티나듯 팔린다. 탐정들이 고양이 찾기나 불륜 조사 같은 하찮은 업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립한 JDC였지만, 이제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나태해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탐정 개조(開祖)란 인물에게서 탐정의식의 초대장이 JDC의 탐정들에게 전달된다.
탐정이 등장한다면 으레 추리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탐정의식』의 설정은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이 발생하면 탐정은 추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의외의 범인을 밝혀낸다. 『탐정의식』의 시작도 그런 추리물의 서두를 따르긴 한다. 일가족 살해사건이 일어나고, JDC의 탐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것을, BDC(볼런티어 탐정 클럽)라는 단체의 탐정들이 등장하여 밝혀낸다. 그런데 이 탐정들의 추리를 도대체 추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메챠 즈루코는 언제나 들고 다니는 예언서에 적힌 범인을 이미 알고 있고, 마니야 유타카는 시체와 키스를 하면서 죽은 자의 소리를 듣는다. 가란도 앗페레는 목을 매달고 가사 상태가 된 순간 하늘의 의지를 전해 받아 범인을 찾아낸다. 이건 추리물이 아니라, 슈퍼히어로물 혹은 심령물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탐정의식』은 추리물의 기본적인 공식을 모두 해체한다. 『탐정의식』의 1권 말미에 실린 후기에는 “『탐정의식』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반칙입니다. 즉 특기가 반칙인 작가의 캐릭터를 인생 자체가 반칙인 작가가 멋대로 주무르면 어떻게 되겠냐면서 편집자가 제발 그만두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그래도 강행된 시도가 이 『탐정의식』”이란 말이 들어 있다. 즉, 『탐정의식』이란 작품은 우리가 잘 아는 어떤 법칙이나 상식 등을 완전히 초월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시작한 작품인 것이다.
『탐정의식』의 창조자들 이름을 보면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원작자인 세이료인 류스이는 『코즈믹:세기말 탐정 신화』로 2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한 작가고, 각본을 쓴 오오츠카 에이지는 『다중인격탐정 사이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림을 그린 하시이 치즈는 『블러드 플러스』의 캐릭터 디자이너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자다. 세이료인 류스이는 국내에 거의 지명도가 없는 작가지만, 일본에서는 라이트 노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힌다. 1994년에 나온 『코즈믹:세기말 탐정 신화』는 라이트 노벨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된다. 지금 한국에서 인지도를 얻고 있는 니시오 이신이나 사토 유야의 흐름을 미리 선보인 작가인 것이다. 1년간 밀실에서 1,200명을 살해하겠다는 황당한 범죄예고가 등장하고, JDC에 속한 350명의 탐정이 범인의 뒤를 쫓는다. 이 한 문장의 설명만으로도 『코즈믹:세기말 탐정 신화』가 얼마나 상식을 초월한 작품인지 예감할 수 있다. 오오츠카 에이지의 『다중인격탐정 사이코』 역시 엽기성과 일탈이라는 점에서는 탁월하다. 반칙의 이력을 지닌 그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탐정의식』이 어떤 만화일지는 대강 예감할 수 있다. 스토리가 아니라, 그 상상력이 얼마나 기발하고 황당무계할 것인지를. 얼마나 반칙으로 모든 것을 때려눕힐지를.
『탐정의식』 1권 마지막에는 무인도의 탐정의식에 참가한 JDC의 탐정 97명이 한꺼번에 목이 잘려 죽는다. 그리고 2권부터는 다시 『백밀실』이라는 책의 내용대로 100개의 밀실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탐정의식』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과거의 사건들과 겹쳐진다. 1995년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을 때, 건물의 지하 밀실에서 죽은 탐정들의 이야기. 그리고 JDC의 탐정인 구류는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회의한다. 대체 탐정 개조란 누구인가? 아니, JDC란 조직 자체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적어도 수수께끼란 점에서 『탐정의식』은 탁월한 작품이다. 하지만 『탐정의식』은 작가의 말대로 반칙으로 일관하는 작품이다. 기존의 추리물에 익숙한 독자라면 결코 『탐정의식』의 세계에 쉽게 빠져들 수가 없다. 『탐정의식』은 노골적으로 ‘정통’ 추리물에 ‘딴지’를 거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투정이나 반발이 아니다. 세이료인 류스이는 이미 『코즈믹:세기말 탐정 신화』로 시작된 JDC 시리즈를 통해서 새로운 영역의 추리물을 완성했다. 『탐정의식』은 이미 완성된 세계를, 다른 작가와 만나 흥미롭게 변주한 세계다. 이미 세이료인 류스이의 세계에 익숙한 독자를 위한 사소한 재미도 많이 있다. 세이료인 류스이의 JDC 시리즈에 나오는 류구와 아지로 소우지 등과 오오츠카 에이지의 『다중인격탐정 사이코』에 등장하는 사사야마 토오루가 모두 출연하고 현존하는 작가인 노리츠키 린타로에 대한 오마주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미스터리 작가 N츠키 R타로가 나오는 등 마니아만이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을 곳곳에 숨겨 놓았다.
반칙으로 일관하는 『탐정의식』은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이료인 류스이라는 작가만이 아니라 라이트 노벨 자체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소설 혹은 이야기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식과 법칙이라는 벽을 일단 뛰어넘기만 하면 무궁무진한 세계가 열린다. 『탐정의식』은 우리가 알던 세계와는 다르지만, 그 자체로 또한 경이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