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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시대를 바꾸는 것은, 검이 아닌 검을 잡고 있는 인간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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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만화책을 읽었고, 기억에 남는 것들도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바로 『바람의 검심』이다. 거기에는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그야말로 황금의 시절이다. 요즘도 변한 거 하나 없지만 그때도 컴퓨터 게임, 정말 좋아했었다. 뭐, 요즘은 컴퓨터 게임 싫어하는 사람 찾는 게 오히려 어려울 정도니…. 친구들 서넛이서 밤새 게임을 하다 해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던 날도 부지기수다. 요즘도 가끔 그때 친구들끼리 모여서 게임을 한다.

그렇게 질리도록 게임을 했지만, 남아도는 시간도 어디 쌓아뒀다가 다시 쓰고 싶을 만큼 많았다. 요즘같이 바쁜 날엔 늘어지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손에 잡기 시작한 게 만화책이었다. 요즘도 만화책을 즐겨 보지만, 그때처럼 지독하게 읽었던 시기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정말 엄청나게 읽었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서 몇십 권이고 읽었고, 언젠가 대전 외삼촌 댁에 놀러갔을 때는 셋이서 100권을 빌려서 읽기도 했다. 사촌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에도 혼자 졸면서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많은 만화책을 읽었고, 기억에 남는 것들도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바로 『바람의 검심』이다. 인물도 매력적이고 스토리 구성도 역동적이다. 그림체도 깔끔한 편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 것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만화는 메이지 유신 전후를 무대로 한다. 도쿠가와 막부 말, 에도에 미국의 흑선이 나타나 개항을 요구했다. 근대화 이전까지 양이, 즉 왕정복고와 함께 외세를 배격하자는 사상이 일본 내에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무사들 사이에서는 타성에 젖어 나라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는 막부를 타도한 뒤, 천황을 정치의 중심에 놓고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이른바 근왕도막을 내세운다. 여기에서 활약했던 무사들을 유신지사라 한다. 떠받칠 유維, 새로울 신新, 뜻 지志, 선비 사士. 새로움을 받들었던 뜻있는 선비들, 혹은 무사들.

주인공은 유신지사의 한 사람이다.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베었던, 칼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사람. 가장 뛰어난 칼잡이로 생을 살았던 그는 새 시대를 위해 구시대를 베었지만, 단지 그것만 벤 것은 아니었다. 구시대의 멍에를 쓰고 죽어간 사람들에게도 꿈이 있고,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단지 검 한 자루 가지고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그 어떤 입에 발린 미사여구나 대의명분으로 치장하더라도 그것은 진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벤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것이 검술의 진정한 가르침. 나는 너를 살렸을 때와 같이 몇백 명의 악당들을 죽여왔다. 허나 그들도 역시 인간, 험악한 시대에 힘껏 살아온 것뿐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하며 사람을 위해 사람을 베겠다는 주인공을 말렸다. 그러나 어린 제자는 산을 떠나 칼을 휘둘렀고, 그것은 무거운 무게로 그를 짓눌러온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사람을 베었던 그, 그리고 그를 짓눌렀던 죄책감과 허무감.

소중한 사람을 업보에 의해 잃은 후, 그는 검을 놓는다. 단 한 사람도 앞으로는 베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는 원래의 검을 버리고, 역날검을 쓴다. 일본도는 베는 면에만 날이 서 있고, 뒷면에는 날이 없다. 역날검은 베는 면엔 날이 없고, 벨 수 없는 뒷면에만 날이 서 있는 칼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의 미소부터, 그는 역날의 검으로 지켜가기 시작한다. 그의 스승은 그에게 역날의 검을 벼려주면서 이런 말을 한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검이 아니다. 그것은 검을 잡은, 인간의 손이다.” 무작정 베고 죽이기만 해서는 무엇도 이룰 수 없음을, 그의 스승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역날검을 든 이후, 그는 그날의 맹세를 지킨다. 단 한 명도 베지 않고, 속죄로 여생을 보낸다. 무엇도 베지 않으면서, 자기 주변의 웃음을 지키면서 말이다.

꽤나 유명한 작품이기에,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만화를 많이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꼭 한 번쯤은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만화, 『바람의 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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