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쿼바디스>에서 고대 로마제국의 폭군 네로 황제 역을 맡았던 피터 유스티노브가 교양 다큐멘터리의 진행자 겸 내레이터로도 역량을 발휘한 것은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 아니다.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소양을 갖춰서다. 여배우로는 엠마 톰슨이 적임자다. 꽤 오래 전, 외신이 전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있다는 그녀의 근황이 인상적이었다.
거꾸로 끼가 넘치는 학자도 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방송인 뺨쳤다. 하지만 “주류 과학계에서는 과학 발전에 기여한 세이건의 업적보다는 이미지와 행운에 근거해 그를 공명심에 빠진 뻔뻔한 사람이자 부랑자로 간주했다.”(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칼 세이건』(안인희 옮김, 동녘사이언스, 2007) 뒤표지 글에서)
역사학자 피터 게이(Peter Gay)는 방송에 얼굴을 내밀어도 ‘탤런트 교수’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 것 같다. 우선, 그가 진행하는 서양고전음악 프로그램이나 역사인물 다큐멘터리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반응을 얻기 어렵다. 또 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피터 게이의 책은 인물이 중심에 놓인다.
천재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천재 음악가다. 피터 게이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단순한 조숙(早熟)과는 달랐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18세기의 다른 신동들과는 달리 평범한 사춘기 소년으로 희미하게 사그라지지 않고, 자신의 작곡과 연주 솜씨를 숨 막힐 듯이 아름답게 다듬어갔다. 언제나 많은 신동을 괴롭혀온 그 운명을 피해간 것이다.”
모차르트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위대한 작곡가의 전당에 우뚝 선다.
“젊은 시절 이 일곱 살짜리 꼬마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연주하는 것을 들었던 괴테는 나중에 그를 음악에서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존재라고 평했다. 그림의 라파엘로나 문학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수준이라고 본 것이다. 괴테는 천재를 ‘의미 있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고 활동하는 ‘생산력’으로 규정하면서, ‘모차르트의 모든 작품이 그런 활동의 산물’이라고 했다.”
요제프 하이든 또한 모차르트를 극찬한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에게 자신이 직접 “만나거나 이름을 들어” 아는 “작곡가들 가운데” 그의 아들이 “가장 위대하다” 했다. “모차르트의 모방할 수 없는 위대한 작품들, 그 심오하고 음악적 이해로 넘치는 작품들”에 주목하라고도 했다.
피터 게이도 한마디 거든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수십 년 동안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잘츠부르크 궁에서도 디베르티멘토(嬉遊曲-인용자)가 즐거운 행사에 따라붙어 분위기를 흥겹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런 유희적 음악에도 깊이를 부여하여, 대관식이나 축일이 음악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모차르트의 선율을 떠올리는 피터 게이의 ‘곡조(曲調)’는 옮긴이 정영목의 유려한 ‘해석(解釋)’으로 더욱 빛이 난다.
『모차르트』(푸른숲, 2006)는 “연대기 순이 아니라 천재, 아들, 종, 자유 음악가, 거지, 거장, 극작가, 고전 등 테마별로 각 장을 구성하여 모차르트의 삶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차르트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압축적이면서도 충실한 최적의 입문서이다.”(책날개 소개 글)
아르투어 슈니츨러 혹은 19세기 서양의 중간계급『부르주아 전(傳)』(고유경 옮김, 서해문집, 2005) 한국어판의 부제목은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본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다. 원래 제목은 『Schnitzler’s Century: The Making of MiddleClass Culture 1815~1914(슈니츨러의 세기-1815~1914 중간계급문화의 형성)』이다.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의 작품은 여러 권 번역돼 있다.
이 책은 슈니츨러를 다룬 전기이기 전에 “1815년부터 1914년에 이르는 19세기 중간계급의 ‘전기’다.” 그러면, 피터 게이가 슈니츨러를 길잡이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슈니츨러는 19세기 부르주아의 전형이라 하기 어렵다. “만일 ‘대표하기에 적합하다’는 표현이 ‘평범하다’는 뜻이라면 슈니츨러는 이 책의 목적에 부합되는 존재는 아니다.” 그를 ‘보통 사람’으로 보는 건 부적절하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묘사하는 중간계급의 세계에 대해 그가 누구보다도 확실하고 재치 있는 관찰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그는 호감을 주지는 않아도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하지만 그게 연출자 피터 게이가 “이 책에서 상연하려 하는 포괄적인 연극의 진행자로” 슈니츨러를 캐스팅한 까닭의 다는 아니다.
그는 좀 더 타당하고 객관적인 이유로 슈니츨러의 완벽성을 든다. 완벽한 빈(Wien) 사람이었던 슈니츨러는 다양한 생활양식, 사상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통해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부르주아지의 정신에, 내부로부터 편견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의 문화는 한마디로 국경을 초월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슈니츨러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진 않는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을 전기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한 계급’의 전기이기 때문이다.”
또 피터 게이는 “이 책은 요약본이 아니라 종합적인 저서”라고 말한다. 그의 역사연구방법론은 정신분석에 바탕을 둔다. “기초를 두는 것이지 지배당하는 것은 아니다.” 피터 게이는 다섯 권짜리 방대한 연구서 『Bourgeois Experience: Victoria to Freud(부르주아의 경험-빅토리아에서 프로이트까지)』(1984-1998)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나는 『부르주아의 경험』에서 대략 묘사한 바 있는 빅토리아 시대 부르주아지에 대한 일반론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며, 특히 섹슈얼리티, 공격성, 취향, 사생활에 대한 중간계급의 태도를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이는 묵은 술을 단지 깔끔한 새 병에 담은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문제들을 다시금 성찰했으며, 좀 더 심화시켰다.”
베른슈타인의 도전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1850-1932)은 마르크스에게 도전한다. 원제목을 그대로 옮긴
『민주사회주의의 딜레마-베른슈타인의 맑스에 대한 도전』(김용권 옮김, 한울, 1994)은 사회주의 사상사에서 곧잘 무시되어온 독일의 합법적 사회주의의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다. 독일의 수정주의적 사회주의의 기원과 의미, 영향에 대한 연구다.
수정주의는 “합법적 수단을 통해 혁명을 시도하는 정당은 적어도 헌법이라는 수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해롤드 라스키)는 권력 장악의 딜레마에 직접 맞선다. 수정주의의 기원과 논리는 베른슈타인의 저작에 가장 잘 표현돼 있기에,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이론적?역사적 분석과 베른슈타인의 지적 전기를 포함한다.
“베른슈타인은 아직까지는 특별한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전기를 써볼 만한 가치가 있는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생애는 바로 독일 사회민주당이 걸어 나온 역정이었다. 가차 없는 솔직함과 양심에 따라 그는 진리가 원할 때는 편의주의와 당에 대한 충성을 과감히 내던졌다. 진실에 대한 그의 집착은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헌신만큼이나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피터 게이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시대의 산물로 본다. 수단과 목적 간의 정치적 딜레마는 난제 중의 난제이나, 베른슈타인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수단이자 장차 사회주의가 취하게 될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저자 서문과 한국어판 추천사 내용 일부는 세월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의 원서는 1952년에 나왔다. 하여 독일 사회민주당의 실패가 “영국 노동당의 승승장구와 비교해보게 되면 더욱더 충격적인 실패”라는 피터 게이의 판단은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앞날을 내다보길 바라는 건 무리다. 20년 후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독일 통일의 주춧돌을 놓길 누가 알았으랴!
이 책은 처음 번역된 피터 게이의 책이다.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그의 삶의 이력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번역서 추천자가 추천사에 이런 표현을 썼을 리 만무하다. “내가 아는 한 이 저서는 가장 대중화된 최초의 체계적인 베른슈타인 연구서다. 그것도 그의 고향 사람이 아닌 미국인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유럽인이 아니라 미국 국적의 학자가 쓴 책이라는 점을 환기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피터 게이와 베른슈타인이 같은 고향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베른슈타인은 1850년 1월 6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피터 “게이는 1923년 6월 20일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나, 1941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계몽주의의 기원』 역자 해제)
계몽사상가 집단을 그린 초상화『계몽주의의 기원』(주명철 옮김, 민음사, 1998)에는 숱한 인물이 등장한다. 권말 ‘이름 찾아보기’가 79쪽에 이른다. 다들 대체로 18세기 계몽사상가 일가(一家)의 구성원이고, 일부는 서양 고대사상가다.
두 권짜리 『The Enlightenment: An Interpretation(계몽주의에 대한 하나의 해석)』의 첫째 권 ‘The Rise of Modern Paganism(근대 이교 정신의 부흥)’을 우리말로 옮겼다. 대우학술총서로 나왔는데, 책값은 45,500원이다. 둘째 권 ‘The Science of Freedom(자유의 과학)’은 “대우재단의 번역과제에서 빠졌기 때문에”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
“계몽사상가들이 일가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풍파가 많은 일가였다. 그들은 연합군이었고 종종 친구였지만, 공동의 이해관계를 증진시키는 일 못지않게 전우를 비판하는 일도 즐겁게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토론을 벌였고, 때로는 결코 정중하지 않은 토론을 주고받았다.”
전형적인 계몽사상가는 교양인이자 학자이며 과학애호가였다. 또한 “계몽주의는 고전주의, 무신앙, 과학이 변덕스럽게 혼합된 것이었고, 계몽사상가들은 한마디로 근대의 이교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경험의 격렬함에 차이는 있었지만, 한결같이 고전 고대에 대한 호소, 기독교와의 긴장관계, 그리고 근대성의 추구 등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겪었다.
“이 변증법은 계몽사상가들을 규정하는 요소이며, 당시의 다른 계몽된 사람들과 그들을 구별하는 요소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리스도교 유산에서 자유롭게 되기 위하여 고전에 대한 지식을 이용했고, 그리고 고대인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근대적인 세계관에 눈을 돌렸다.”
한편,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계몽주의를 특징짓는 ‘비판’ 정신이 고대 다신교 시대의 번영과 중세 천년의 깊은 잠을 뒤로 하고,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부활하게 되는, 이른바 ‘비판’ 정신의 운명이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지성사 연구를 사회사와 접목시킨 저자의 오랜 노력으로, 이제 우리는 ‘계몽사상가 일가’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뒤표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