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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특성에서 인류의 근원을 읽다 - 『다섯째 아이』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다섯째 아이』는 작가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입니다. 인간 사회의 계급과 차별 문제, 진화와 문명의 역사, 인류의 미래 등 인류라는 종 전체에 걸친 폭넓은 관심과 사고를 주제로 글을 풀어내는 도리스 레싱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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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개에 가까운 전 세계 각국의 문학계, 그리고 그 숫자를 한참 넘어서는 수많은 언어와, 각각의 언어권이 가지고 있는 소설가들의 숫자를 어림잡아 보면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 또한 생소하기 그지없습니다. 인터넷서점들에 달린 리뷰를 보니 아주 인지도가 없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대한 대중의 인지를 받고 있는 작가는 절대 아닙니다. 당장 리뷰를 풀어가는 제 입장에서도 분명히 처음 들어본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사전에 말씀드리고 들어가야 조금이나마 그 부담감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다섯째 아이』는 작가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입니다. 인간 사회의 계급과 차별 문제, 진화와 문명의 역사, 인류의 미래 등 인류라는 종 전체에 걸친 폭넓은 관심과 사고를 주제로 글을 풀어내는 도리스 레싱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소설이며, 특히 작가의 주제의식이 의도하는 서사로 풀려나갔기에 걸작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평을 듣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해리엇과 데이비드 부부는 동시대의 젊은이들과는 조금 다른 부류입니다. 회사 연말파티장에서 처음 마주친 두 사람은 60년대의 영국 런던에 만연해 있던 일탈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고, 단란한 가정이라는 자신들만의 왕국 건설을 꿈꾸는 당시 보기 드물었던 보수적 가치관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 두 사람은 서로를 금방 알아보았고, 곧 결혼에 다다릅니다.

두 사람의 오랜 꿈, 빅토리아풍의 거대한 저택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자 했던 소망은 머지않아 이루어집니다. 비록 출퇴근 거리 두 시간의 고통과 같은 면도 있지만, 런던 교외의 넓은 정원이 딸린 큰 저택에서 휴가철마다 지인들을 불러 모아 떠들썩하고 정겨운 파티를 여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행복은 눈앞에 있습니다. 게다가 원했던 아이들도 늘어납니다. 첫 아이를 시작으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아이는 둘, 셋, 넷으로 계속 늘어갑니다.

그러나 소설의 제목 ‘다섯째 아이’부터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뱃속의 아기가 남다르게 불안하고 강한 몸짓을 보였고, 엄마 해리엇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을 받습니다. 가장 순수하고 맑아야 할 태아로부터 풍겨 나오는 폭력과 음울함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그녀는 고민하고, 정말 ‘다섯째 아이’ 벤은 태어나면서부터 울기보다는 마치 고통의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데이비드 가정에 드리워질 새로운 먹구름을 예언합니다.

‘다섯째 아이’ 벤은 집안의 화목하고 단란했던 분위기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 줍니다. 해리엇의 뱃속에서부터 엄청난 힘으로 엄마 배를 차던 모습은 출산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일도 되지 않아서 제 힘으로 침대를 잡고 일어서는가 하면, 귀여운 동생을 만져보기 위해 아기침대 창살 사이로 손을 넣은 형의 손목을 창살에 대고 꺾어버리기도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러한 폭력의 행사가 있은 뒤에야 비로소 벤은 만족한 듯이 끅끅거리는 승리의 웃음소리를 낼 뿐, 그 외의 것에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벤이 클수록 그 힘과 공포는 더해 갑니다. 단순한 힘자랑을 넘어서 이제는 형을 협박하고, 옆집 개를 죽이는 등 야만적인 본능을 발산하는 이 아기의 공포는 마침내 온 집안을 집어삼키고, 결국 해리엇은 벤과 가정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고전적인 가족의 아름다움을 꿈꾸었던 영국의 한 가정에 드리운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 『다섯째 아이』는 공포의 핵심인물인 ‘벤’의 출생부터 청소년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중편이라는 짧은 형식 속에서 풀어내면서 독자에게 인간사회 전체에 대한 많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소설의 내용을 더 풀어가는 것은 읽는 재미를 빼앗는 행위고, 이쯤에서부터는 소설을 더욱 폭넓고 재미있게 읽기 위한 여러 가지 배경 요소들을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배경으로, 소설이 위치하고 있는 시공간적 배경은 전체 전개에서 매우 큰 의미를 차지합니다. 1960년대 중후반쯤에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만나 결혼에 이르렀고, 대략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납니다. 런던과 런던 교외라는 공간적 배경을 조합해 보면, ‘60년대 후반의 유럽, 특히 런던’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무렵의 유럽은 유명합니다. 68혁명과 히피 등으로 대표되는 반체제적인 문화의 흐름은 서방 세계라고 통칭될 수 있는 지역에 전체적으로 번져나갔습니다. 2차대전 이후의 전후 복구와 전쟁 이후의 체제가 유지되면서 숙성되어 온 사회의 관료성과 전제성에 젊은이들은 반기를 들었고, 전후의 빠른 복구와 성장에 따른 혜택의 배분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일어섰습니다. 전후 폭발적이었던 베이비붐이 성장곡선의 기울기 저하로 인해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내재된 모순들은 결국 외화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다섯째 아이』의 근간을 이룹니다.

60년대 중후반의 영국 젊은이들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반체제적 경향을 띠었으며, 전통적인 가치라고 명명될 수 있는 모든 것에 기본적으로 반발하는 것이 강령이자 스타일이자 멋스러움이기도 했습니다. 혼외정사, 마약 사용과 같은 개념들이 새로운 트렌드로 인정받았고, 그러한 일탈이 동경으로 자리 잡던 시대였습니다. 기존의 가치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젊음의 트렌드였던 그 시기에 『다섯째 아이』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당연히 소수고, 작은 목소리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며, 그랬기에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은 모두 두 사람의 결정을 걱정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등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체제가 대세인 사회 속에서 오히려 가장 전통적인 가치로의 회귀를 꿈꾸었고 시도했던 두 사람은 그러나 잠깐의 행복 이후에 생각지도 못했던 파국을 맞습니다. ‘다섯째 아이’ 벤의 등장은 그들이 일궈 왔던 전통적인 가치관의 가족 왕국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립니다. 납득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정말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벤이라는 공포의 아이는 느닷없는 재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이 가족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가정은 해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1919~ )
벤의 등장은 그러나 결코 우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작가가 언급했듯이, 『다섯째 아이』의 집필 동기 중에는 ‘최초의 인류가 가졌던 유전자는 모든 인류에게 끊임없이 전승된다’는 연구 논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데이비드-해리엇 부부가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공고하게 다져 나가더라도, 태초의 인간이 가졌던 야만성과 생존 본능은 인간의 유전자에 늘 잠재되어 있으며, 그것이 두 사람의 자녀 속에서 발현되더라도 그것은 일반적인 법칙상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그런 본능적 가치를 대척점에 둔 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집착한 두 사람이 그 시대에는 바보 취급을 받았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벤이 점차 자라나서 학교에 가고(실제로 가지는 않지만), 불량스러운 어린 히피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면서 거리를 질주하고, 나중에는 두 사람의 행복한 저택까지 벤과 그의 반항적인 친구들이 접수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인류의 유전자 안에 내재된 근원적 욕망과, 그 욕망이 걸러지지 않은 채 발현되면서 나오는 본능적인 위협 그리고 그렇게 생성되는 공포를 전체 서사 속에서 독자에게 드러냅니다.

태초 인류의 본능과 위협과 공포를 타고난 벤은 그렇기에 그 탄생 자체로 인류의 원죄를 증명하는 종교적 테제로서도 기능하며, 유전과 형질 존속, 돌연변이라는 개념에서 진화론과 유전학의 주제에도 다리를 걸칩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60년대 말의 혼란스러운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가는 그 시대에 나타났던 거대한 저항이 결코 시대적 산물로만 볼 것은 아니며, 인류가 영원히 맞서거나 혹은 적응해야 할 근원적 본능임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다섯째 아이』에서 60년대의 혼돈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가치들을 미시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서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채 관찰자적 중립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단지 그러한 가치들이 난무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신이 관찰한 인류의 생태를 자신의 그릇, 소설이라는 구조 속에서 효과적인 형태로 재배치하며 재배치된 서사를 통해 오히려 인류가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들 - 욕망, 공포, 본능 - 을 보여 줍니다.

시대를 시대로 보지 않고, 오히려 시대의 특성에서 인류의 근원을 읽는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독창성에 기반을 두며, 이러한 독창성이야말로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를 노벨상이라는 유명세에 들게 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몇몇 한국 언론에서는 고은의 노벨상 수상 실패를 아쉬워하며 “놓쳤다”라는 표현을 쓰기까지도 했습니다만, 문학이라는 장르가 굳이 그렇게 1등, 2등을 매겨가며 지내야 할 장르인지도 불분명하고, 게다가 서로 이해의 구조부터가 다른 각 언어의 예술이 한자리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 “한국이 못 탔다”라는 민족주의적 아쉬움보다는, 다른 언어권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새로운 관심 촉발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더 현명한 독자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이 정도의 소설을 접해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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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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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저/<정덕애> 역9,000원(10% + 5%)

20세기 후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도리스 레싱이 예언하는 섬뜩한 인류의 미래 호러 기법으로 그린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세기말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 “벤을 보면 생각하게 돼요. 이 지상에서 살았던 모든 다른 사람들, 그들이 어딘가 우리 내부에도 틀림없이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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