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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의 세상에서 진짜로 사는 법
‘스캔들’이란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 좋지 못한 소문, 추문.’이라고 나와 있다.
가짜의 세상에서 진짜로 사는 법
‘스캔들’이란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 좋지 못한 소문, 추문.’이라고 나와 있다. 사전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낱말이 ‘아름답지 않은’ 부정성과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성을 가지고 있는 낱말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또한 이 낱말은 개인의 문제가 ‘떠들썩하게’ 인구에 회자되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에 종영된 <경성스캔들>이란 드라마에서 필자는 스캔들이라는 낱말이 가진 부정성을 일거에 뒤집는 건강성을 발견하고는 혼자서 좋아라! 했었다. ‘위대한 혁명 전술, 연애’라는 카피를 보면서 그 의뭉스러움에 실소하면서도 암울한 식민 역사를 걷어낼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이만큼 자랐구나 생각하면 절로 신이 났다. 조선시대 체면과 도덕을 내세운 양반님네들의 허위를 ‘성’을 통해 들추어내고 비틀어 희롱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보면서는 야릇한 흥분과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지 않은가.
아무튼 스캔들이 그 시대, 그 사회의 건강성을 진단할 수 있는 충격적인 바로미터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스캔들은 아마도 신정아의 가짜 학위 사건에서 비롯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리가 신정아 사건에서 사문서 위조니 횡령이니 하는 범법의 냄새 폴폴 나는 낱말에만 집중하면 스캔들이 던져주는 이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의문과는 진정으로 마주할 수 없다.
‘관계’에도 계급은 있다
부적절한 관계의 원조 격인 린다 김-이양호가 아날로그 세대에 어울리게 종이 위에 열렬한 사모의 정을 써내려갔다면, 신과 변은 디지털 신호로 자신들의 철없는 불장난을 기록하면서 맺지 말아야 할 관계를 맺고 말았고, 그 편지로 세간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편지라는 낱말이 가진 아름다움과 그리움은 사라지고 스캔들만이 남았으니 부적절하다고 할 수밖에.
그들의 관계에는 정당하지 못한 거래와 알선이 있었을 뿐,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랑이 없었다. 인간애가 없는 가짜의 세상에서는 출세와 치부의 크기가 ‘가치’의 척도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신정아는 다니지도 않은 예일대 박사학위가 필요했고 변양균과 관계를 맺어야만 했던 것이다. 필자가 슬픈 것은 가짜의 것들이, 거짓의 말들이 세상의 가치로 둔갑하여 우대받는 오늘의 현실이다. 이 대목에서 『오늘의 거짓말』의 작가 정이현이 하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세상에서 진실은 무엇이며, 거짓은 무엇일까.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는 조그만 틈새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문학의 역할은 진실과 거짓말 사이의 작은 틈새에 대해 주목하는 것, 그 틈새를 찾아내고 보여주는 것이 문학하는 사람의 책임이 아닌가 생각해요.” (채널예스 <지식人터뷰> 중에서)
정이현의 말처럼 문학이, 혹은 문학하는 이의 역할이 그와 같다면, 예술의 역할이나 예술 하는 이의 책임도 ‘진실과 거짓의 틈새를 찾아내고 그 틈새의 간극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술의 역할은 잠시 후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이 세상이 가짜의 가치와 그것을 신봉하는 자본의 노예들에 의해 지독한 골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인간 평등의 허울 속에서 여전한 차별이 존재함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간통죄 폐지가 논해지는 오늘의 세상에서 그 간통죄 성립의 범법사유는 흔한 말로 ‘불륜’이다. 곧 도덕적으로 이 사회가 용인하지 못하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하고 형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소시민의 일탈이, 또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의 행위가 될 수도 있는 일에 세상은 ‘윤리’ 또는 ‘도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전과자를 만들고 부도덕한 파렴치한이라 비난하기 일쑤다. 졸지에 한 개인은 그 행위의 진정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인륜을 저버린 몹쓸 놈 혹은 몹쓸 년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 몹쓸 짓에도 가짜 세상이 감추어 둔 계급은 있어서, 신정아-변양균처럼, 소위 사회적으로 꽤 알려졌거나 저지른 죄악이 차라리 더 큰 경우에는 ‘불륜’은 사라지고 ‘부적절한 관계’만이 남는다. 이처럼 우리 사회 가치의 잣대는 기층 민중의 삶에는 윤리라는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면서도, 가짜의 세상에 맞추어 가짜 의복으로 갈아입고 멋을 부린 자본 귀족들에게는 인륜의 가시관은 벗겨주면서 관계 성립의 적절성만을 판단한다. 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장된 세상의 모습인가.
다시 정이현의 정의로 돌아가 말하면, 문학 혹은 예술은 바로 가짜 세상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일이자 가짜 가치와 진짜 가치를 구별하는 안목을 길러주는 작업이다. 정이현처럼 소박하게 그 가짜와 진짜의 틈새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많은 위대한 선구자들처럼 ‘이것은 가짜야!’ 하고 단호하게 지적하는 예술가도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혁명가도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밀림(『체 게바라 자서전』『위대한 패배자』)과 베트남 인민의 정글(『황색인』『무기의 그늘』『머나먼 쏭바강』 등)을 필자가 흠모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가짜를 가짜로 그린 위대한 혁명↔이미지와 아이콘의 허상
일상의 분주함으로 아직 서평을 쓰지 못하는 책 중에 『위험한 미술관』이란 책이 있다. 카라바조, 마네, 뭉크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그림이 당대에는 쓰레기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이 책은 그들의 예술이 당대에는 세상을 전복하려는 불온한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 스캔들이었음을 들려준다. ‘위험한’이란 곧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과 동의어를 이룬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것은 가짜다!” 하고 외치는 행위는 언제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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